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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19. 2022

우주에서 나(我)는

지구인이 지구를 떠난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이,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느끼는 이국적 감정과는 다를까? 여행이라는 개념은 같지만 공간이 다르면 차원이 다른 경외감을 느끼게 될까?


최근에 흥미로운 신문 기사가 하나 실렸다. 지난해 2021년 10월,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소유한 우주선 블루 오리진(Blue Origin)을 타고 고도 100km 우주와 지구를 돌아보고 오는 10분짜리 우주여행에 참여하고 책을 출간한 윌리엄 샤트너(William Shatner / 1931년 생)의 경험담에 관한 이야기다.


샤트너는 1966년부터 NBC에서 방영을 시작한 인기  SF TV 드라마였던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커크 선장 역으로 유명한 배우로, 지난해 90세의 나이로 우주여행에 동참했었다.


샤트너는 " 내 우주여행이 축하할 일이 되어야 하는데 장례식 같았다"라고 했다. "우주에서 본 것은 죽음이었다. 지구에서 볼 수 없는 춥고 어둡고 검은 공허함을 봤다. 지구에서 보거나 느낄 수 있는 어떤 어둠과도 달랐다. 내가 만난 가장 큰 슬픔 중 하나였다" "내가 우주를 바라봤을 때 어떤 신비도, 장엄한 경외심도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것이 틀렸고 보리라 기대했던 모든 것이 틀렸다"라고 전했다.

또한 샤트너는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굴곡, 푸른 하늘은 생명이었다. 아름다움은 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아래, 우리 모두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주여행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인간관계의 힘에 대한 나의 견해를 열 배로 강화했다며 그것은 내 마음에 희망의 감정을 돌려줬다"라고 했다. "우리는 보잘것없으며 우리를 하찮게 만드는 주변의 장엄함에 대해 알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행성과 생명을 위해 우리 자신을 다시 헌신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샤트너의 우주여행에 대한 소회를 읽으며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범위도 나이를 따라 발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 90세의 연륜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그대로 전하는 듯해서다. 물론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른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고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 드러내는지도 다를 수 있다. 


샤트너는 우주의 검은 공간을 죽음의 공간으로 봤고 반대로 푸른 지구의 모습에서 생명을 봤다. 우주의 공간을 돌아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니 결국 자기 자신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됨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나 자신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주변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곧 희망이고 사랑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가까이 있을 때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을 지구에서 100km나 떨어져 보니 그때서야 보였던 것이다. 인간이란 종은 참 묘해서 가까이 있을 때는 눈치채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렇게 멀리서 체험하고 온 사람의 경험담을 통해 간접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아는 것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알면 알수록 묘한 동물이 인간이다.


샤트너의 경험담을 반면교사로 삼아 주변을 돌아볼 일이다. 빅뱅 이후 우주의 본질은 암흑이다. 어둠이 우주의 본질이다. 중력 수축으로 물질이 모여 항성이 되고 중력의 힘이 빛으로 빠져나와 검은 공간에 반짝이는 별로 보인다. 지구는 태양이라는 항성이 내뿜는 빛이 대기에 반사되어 산란되는 모습을 보일뿐이다. 태양의 빛 에너지로 인하여 지구에 생명이 탄생하고 현존한다. 아주 이례적인 현상이고 아직까지 인간이 알고 있는 유일무이한 생명의 창고다.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 책에는 1990년 보이저 1호가 태양계 끝에서 촬영한 지구의 사진을 보고 기록한 명문이 있다. 언제나 읽어도 가슴 먹먹한 글이다. 다시 한번 읽어보며 대지 위에 발을 디디고 서서 뺨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푸르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이 순간이 얼마나 경이롭고 가슴 벅찬 일인지, 그리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이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 느껴볼 일이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는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에게는 다릅니다. 저 점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 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인류 역사 속의 무수한 장군과 황제들이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죽였던 사람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저 작은 픽셀의 한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는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를 할 수 있는 행성은 없습니다. 잠깐 방문을 할 수 있는 행성은 있겠지만,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좋든 싫든 인류는 당분간 지구에서 버텨야 합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류가 느끼는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여주는 이 사진입니다. 제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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