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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20. 2022

동시에 두 개를 할 수 있다는 착각

어둠의 정령 발걸음이 많이 느려졌죠? 매일 똑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는 출근길에 바라보는 동녘 하늘의 붉은 기운이 어둠을 뚫고 나오는 시간이 점점 늦춰지고 있는 것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눈치도 내가 알아챌 때만 보입니다. 매일 조금씩 조금씩 변하기에 그 변화를 눈치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일 그 변화를 알아챈다는 것은 오히려 비정상일 수 있습니다. 다름을 눈치챈다는 것은 예민하게 매일 관찰하여 알 수 도 있지만 불현듯 다가왔을 때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변화는 변화량의 축적이 있어야 알 수 있습니다. 새벽 밝음의 농도 차이는 어둠의 축적으로 인한 길이를 걷어내는 속도의 변화량입니다. 그것을 시간이라는 틀에 끼워 넣으면 계절이 되고 출근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곗바늘의 움직임으로 환생을 합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 전철에 올라 창밖을 봅니다. 6시 25분. 서울의 오늘 일출시간은 6시 44분입니다. 아직 20분은 더 있어야 태양이 얼굴을 내밀 겁니다. 지금 이 시간에는 태양이 얼굴을 보이기 전에 예쁘게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하는 시간일 겁니다. 


전철 창밖으로는 인공조명 가로등 불빛과 아파트 중간중간 네모난 불빛들이 더 선명히 다가옵니다.


그러다 문득 창문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두 개 임을 불현듯 깨닫습니다. 유리창 건너편 풍경과 유리창에 비치는 전철안 모습입니다. 밖이 아직 어둠의 농도가 짙다 보니 상대적으로 밝은 전철안 풍경이 유리창에 오버랩되어 비치는 겁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보면 그것만 보인다는 겁니다. 가로등 줄지어 이어져 있는 바깥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깥 풍광만 보이고, 유리창에 보이는 내 모습을 보고자 한다면 유리창에 비친 모습만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바깥 풍경과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오버랩하여 동시에 볼 수 있을 것 같아 눈을 부라리고 시도해봅니다. 같이 보일 것 같은데 보이지 않습니다. 한순간에 하나만 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만 하면 도태된다고 가르치고 멀티플레이어가 되라고 종용합니다. 본케가 있고 부케도 있어야 능력자로 인정받는 시대입니다. 본업으로 종사하는 일이 있고 투 잡으로 하는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부를 늘리는 사람이 부러움을 삽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입니다.


투 잡을 뛰는 주변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경제적 풍족함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 고생하는데 꼭 경제적으로 나아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투 잡을 뛰는 만큼 시간적 경제적 에너지가 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돈으로 따지면 더 많이 벌었을 수 도 있겠지만 최종 결과물로 평가를 해보면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투 잡뿐만이 아닙니다. 기업에서는 이미 멀티태스킹의 관행이 실패한 업무 관리였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투입하여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하면 훨씬 효율적일 거라 생각이 들지만 실제적으로는 업무 속도도 나지 않음을 실험적으로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때 유행하던 직원들의 멀티태스킹이라는 용어는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인간은 어차피 한 번에 한 가지만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조차 숫자 0과 1로 표현할 수 있는 거와 같습니다. 선택을 하던지 안 하던지, 그리고 선택에 의해 행동을 하던지 안 하던지 결국은 하나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세상은 복잡할 것 같지만 이 단순한 0과 1의 순간 연속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베이지안 정리로 AI 기계에 끌어들인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많은 것을 성취해 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한 가지라도 충실히 수행해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경제활동에서는 'Only handle it once ; 손에 들어온 일은 즉시 처리한다'가 핵심입니다. 즉각 즉각 처리하고 다음 일을 기다리고 구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습니다. 알면서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단순해지는 게 세상사는 일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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