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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26. 2022

말하는 축복과 말하는 저주

인간은 '말하는 축복'과 '말하는 저주'를 동시에 갖고 있다. 말로 흥할 수 있고 말로 망할 수 있다.


당연하다. 말이라는 소통 행위를 통해 관계가 규정되고 사회가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유아독존으로 혼자 살 수 없다. 타인과의 관계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라 그 관계의 기본이 소통이고 대화다. 말이 기본이다.


말은 단어다. 단어 하나에는 행동과 의미와 관계, 3가지가 동시에 작동하고 사회적 정서까지 포함되어 있다. 어떤 단어가 사회를 지배하느냐를 살펴보면 그 사회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단어 하나하나에 대한 의미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개인을 지배해온 환경이 다르고 공부하고 축적한 배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근본이다. 하지만 의미의 다양성에는 전제가 있다.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단어의 개념은 같아야 한다는 거다. 


같은 공동체에서 만들어진 단어는 모든 구성원이 그렇다고 인정을 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글을 읽거나 쓸 때 이용하기 위한 물건을 '책상'이라는 단어로 이름을 붙였다면 공동체에서는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물건을 '책상'이라고 하자고 합의를 해야 단어로서의 자격을 갖게 된다. 같은 물건을 두고 누구는 책상이라고 하고 누구는 의자라고 한다면 소통을 할 수 없다.


단어들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또래 사이에서 통용되는 단어들이 있고 분야별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이 있다. 양아치 조폭 사이에서 사용되는 비속어, 은어들도 있다. 이들 단어들은 그 부류에서만 생명력을 갖고 사회 전체 언어나 단어로 확산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정하는 단어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90% 정도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공물에 붙여진 이름이다. 일정한 모양을 갖고 있으므로 특히 시각적으로 고정된 형태를 갖게 된다. 자동차, 휴대폰, 신용카드, 책, 컵, 신문, TV, 시계 등등 지금 눈에 보이는 대부분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에 이름 붙여진 것이다. 


고정된 형태에 이름 붙여진 단어.


이 단어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 브레인이 소리의 음가나 시각적 움직임을 저장할 때 학습된 운동을 단어 사전 형태(Learned movement lexicon)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저장된 단어들을 끄집어내어 상황에 맞게 나열하는 역할은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 PFC)이 담당한다. 그래서 우리는 브레인 안에 좋은 단어 사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 좋고 많은 단어를 알아야 훌륭한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감동적인 말을 할 수 있다.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예쁘고 좋은 단어보다는 시기와 질투, 암투와 험담, 비판과 조롱의 단어가 판을 치고 있다. 사람들을 자극하고 흥분시키기 위한 단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벌어진 현상으로 보인다. 선동 정치의 산물이기에 어떻게든 사람들을 자극하고자 하는 단어들이 득세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연산군 때처럼 신언패(愼言牌 ; 말을 삼가는 패)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며 경계를 하도록 해야 할 것 같다.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 안신처처뢰(安身處處牢)라 했다. "입은 재앙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다"라는 뜻이다.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것이 아니라 저주 섞인 독설이 득세하지는 않게 하자는 것이다. 단어가 행동을 만들기 때문이다. 


"입 속의 말은 내가 지배하지만 입 밖의 말은 나를 지배한다"라고 한다. 말을 신중하게 걸러서 하면 행동도 조심하게 된다. 불가의 묵언수행까지는 아닐지라도 말을 아끼고 참는 노력이 필요하다. 말의 저주보다는 말의 축복이 더욱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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