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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19. 2022

나의 '사람 분류 서랍'은 맞는 것일까?

사람을 처음 만나면 얼굴을 보자마자 5초 이내에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의 콩깍지뿐만 아니라 모든 대인관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적용됩니다. 만나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그 사람의 외모와 옷차림 그리고 말투, 사소한 행동, 심지어 악수할 때 손을 잡는 행위의 강도를 통해서도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리고 관계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상투적으로 대할 것인지, 그저 이번만 만나고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인지 결정해버립니다.


선입견일 수 있습니다. 수없이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사람들을 유형화하고 분류하여 자기만의 '사람 분류 서랍'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럴 것이다" "내가 경험해봐서 알아" "분명히 그는 그렇게 할 것이 틀림없어"라고 범주화해놓습니다. 에너지를 최소화화기 위한 자기 방편입니다. 자기를 이용만 해먹을 사람인지, 진솔하게 속마음이라도 터놓고 소주라도 한 잔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적어도 속이거나 거짓으로 일관할 사람인지 아닌지 정도를 한눈에 알아봐야 에너지를 배분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됨을 알려면 지속적으로 관찰해봐야 합니다. 처음 본 인상으로 그 사람의 행적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인상을 중요시하고 그 첫인상이 주는 이미지를 따라가려고 하는 것은 본능적인 생존방법입니다. 일단 범주화 서랍을 만들어 놓으면 쉽게 편을 가를 수 있습니다. 내 편의 범주에 들어올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 지어 놓고 맞으면 잘 판단했다고 자찬하고 설사 위험 분류군 범주의 서랍에 편입시켜놓은 사람이 나중에 보니 괜찮은 사람이었네라고 평가를 받았을지언정 나의 생존 환경에는 악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위험군을 거르는 과정을 거쳤기에 재편입 및 재분류를 거쳐 서랍을 옮기는 작업을 하면 됩니다. 

하지만 내 인생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의 분류 서랍에 넣어놨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가도 그렇고 그런 사람임을 눈치챈다면 역시 내 판단이 옳았다고 자평을 하고 서랍을 봉인하게 됩니다. 


첫인상의 첫 순간이 주는 무서움이자 엄정함입니다. 겉모습을 치장하고 위장을 하여 상대의 눈을 속일 수도 있고 그 모습에 속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번지르한 위장은 금방 탄로 납니다. 바로 말투와 행동으로 표출됩니다. 이는 평생 누적된 행위이기에 감출 수가 없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아우라처럼 드러납니다. 첫인상은 바로 이 아우라에 눈머는 현상입니다. 


이 첫 아우라를 보고 사람됨을 재빨리 눈치채는 사람이 부채도사입니다. 신들렸다고 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눈치 빠른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행위를 지켜보고 사람들의 분류 서랍을 촘촘히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귀신같이 사람의 심리를 알아차리고 조언을 하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오지랖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경험을 이기는 첫눈은 없습니다. 경험이 누적되어야 첫눈에 봐도 어떤 사람인지 간파하는 경지를 이룰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을 알아보는 노 하우(know how)보다 누구를 아느냐는 노 후(know who)가 더 중요합니다. 경험과 인격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는 매력을 가진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장착해야 합니다. 사람을 보는 능력은 내가 노력해야 가능한 기술입니다. 그냥 눈치로 때려잡고 그럴 것이다로 예측하는 수준 정도로는 안된다는 겁니다. 조작하여 드러낼 수 없는 것을 간파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바로 따뜻한 마음과 배려, 예절 등을 가진 사람을 알아채는 능력입니다. "지나친 친절은 사기의 근원"임을 눈치챌 수 있는 것은 그 친절이 몸에 배어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천박한 접근인지를 알아챌 수 있어야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를 줄 일 수 있습니다.


세상의 간극을 보이지 않게 메우고 있는 사람들을 알아볼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양초와 같이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사람을 알아봐야 합니다. 모두가 힘들고 어렵다고 하는 삶 속에서도 우리 사회가 이렇게라도 유지되고 있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월급 120만 원을 아껴 1억씩 기부하는 경비원이 계셨기에 우리 사회의 음지에 그나마 온기의 군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저 외투의 값어치로 사람의 값을 매겨놓은 나의 '사람 분류 서랍'은 없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볼 일입니다.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재분류하여 서랍장을 다시 정리해야겠습니다. 가까이는 휴대폰 전화번호부터 들여다봐야겠습니다. 혹시 1년 내내 통화를 한 번도 안 한 이름들이 있고 만나지 않은 사람들도 있으며 휴대폰 속에 이름과 전화번호는 있는데 누구지?라고 긴가민가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과감히 지워버리겠습니다. 아니 휴대폰 속 전화번호는 받지 않기 위해 저장된 번회일 수 도 있지만 지워버리고 모르는 번호가 걸려오면 받지 않으면 됩니다. 매몰차게 보일지라도 주변 인물을 단순화해나가는 일도 세상사는 방편일 수 있습니다. 지울 사람 지우고 그 자리에 다시 새로운 사람이 채워질 겁니다. 그때는 좀 더 신중해지고 좀 더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차지하게 될 겁니다. '사람 분류 서랍장' 채우는 법을 알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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