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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를 두 번 보러 가야하는 사연

by Lohengrin

"영화의 역사를 아바타 이전과 이후로 나눌 뿐이다"


아바타에 대한 극찬의 정수가 아닐 수 없다. 이 상찬(賞讚)의 두 번째 시리즈로 '아바타 : 물의 길'이 개봉되어 연말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나도 크리스마스 연휴에 이 대열에 합류하여 영화관을 찾았다.


나이 60줄에 가까워지다 보니 이젠 아이들이 같이 놀아주지도 않는다. 아이들 어려서야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놀아주었다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젠 아이들이 부모들을 데리고 다니고 놀아주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큰 아이는 직장을 다니고 대학교 2학년인 막내도 아르바이트를 다닌다. 나름 자기들만의 시간들을 바쁘게 보내고 있으니 놀아달라고 눈길을 보내기도 애매하다. 각자도생의 길을 가고 있는 듯하여 서운하기도 하지만 붙잡고 있으려고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놓아주어야지.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에도 큰 아이는 직장일로 일본 오사카를 당일치기로 갔고 막내 녀석도 아르바이트 갔다가 친구들을 만나고 온다고 나갔다. 할 수 없이 식구들이 다 모일 수 있는 크리스마스 당일인 일요일 저녁에 같이 외식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같이 집에 있어도 서로 할 말이 없는 부부는 고민 끝에 영화 '아바타'라도 보기로 하고 일요일 오후 시간 예매를 했다.


며칠 전 송년행사에서 받은 영화 관람권을 써먹을 요량으로 검색을 했는데 2D영화까지만 사용가능하고 3D영화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제한조건이 붙어 있었다. "아바타는 그래도 3D 이상 영화로 봐야지"라고 추천을 했다. 2D 영화는 14,000원이고 3D영화는 16,000원이다. 관람권 써먹으려다 돈만 더 쓴 형국이지만 3D 영화관으로 예매를 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당일 오후, 집에서 멀지 않은 동네 메가박스를 찾아갔다. 시간을 빠듯하게 맞춰 가서 그런지 예매표 뽑고 콜라 한잔 주문하여 받고 하는데 시간이 걸려 부랴부랴 상영관에 들어갔다. 와우 만석이다. 다행히 광고 영상이 돌고 있고 영화관 중간쯤 오른쪽 맨 끝 좌석을 찾아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아바타1.jpg

앉자마자 불이 꺼지고 영화상영이 시작됐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자막이 겹쳐 보인다. 영화 배경도 뒷 배경이 흐릿하게 오버랩된다. "아이씨! 구석 자리에 앉아서 그런가?"라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다. 자막도 처음엔 겹쳐 보이다가 잠시 후 흐려진 자막이 합쳐져 바로 보인다. 자막을 읽는데 크게 문제가 있을 정도는 아니다. 대사도 귀에 들어오는 수준이 어렵지 않아 굳이 자막이랑 매칭시키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다. 화사한 영상의 스크린 속으로 이미 빨려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3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동안 홀리듯 눈과 귀를 빼앗겼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 문을 나서는데 헉 사람들이 문 앞에 3D 안경들을 놓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이런 제길, 3D 영화였구나"를 뒤늦게 눈치챘다. 왜 영화를 보는 내내 3D 영화를 예매했다는 것을 까먹고 있었지? 자막이 겹쳐 보이고 영화배경이 흐릿해 보일 때 왜 눈치를 못 챘지? 차라리 옆 좌석을 둘러보기라도 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3D 안경을 쓴 것을 봤을 텐데 왜 내 눈에는 그 모습들이 안 보였지?


갑자기 멘붕에 사로잡혔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와이프도 마찬가지다. 부부는 일심동체여서 그런가? 집으로 오는 내내 3D 안경이 눈앞에 왔다 갔다 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뻔하다. 둘 다 오늘의 상황이 심각한 것은 아닌지 묻고 또 물었다.


"우리가 무식한 것일까?" "그렇게 눈치코치가 없단 말인가?" "나이가 들면 깜박깜박하는 것일까?"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닐 거야?" "그래도 영화는 재밌게 봤잖아!" 등등 온갖 핑계를 가져다 붙여도 위로나 위안이 되지 않았다. 너무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왜 3D 안경을 쓸 생각을 못했을까? 서둘러 영화관에 들어가느라 입구에 놓여있던 3D 안경을 보지 못한 것이 첫 번째 화근이었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자막에 겹쳐 보일 때라도 눈치를 챘더라면 나가서 3D안경을 가지고 올 수 도 있었는데 지금 보고 있는 영화가 3D 안경을 쓰고 보는 영화인지 한치도 의심을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계속 질문만 던진다.


늙어가면서 판단력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덜컹 겁이 났다. 나뿐만이 아니고 와이프가 더 쇼크를 받은 듯하다.


저녁에 집에 아이들이 모두 와서 외식을 하러 나가면서 영화관이야기를 했더니 "어떻게 3D 영화를 예매하고 그렇게 2D 영화로 볼 수 있냐?"며 조롱 아닌 힐난을 들어야 했다. 그냥 아이들의 놀림거리 수준으로 남겨졌지만 내 안의 자존심에는 큰 마상을 남겼다.


3D로 보지 못한 아바타는 나에게 더 이상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를 다시 보라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유혹일까? 조만간 편광필터 안경을 착용해야 하는 3D가 아닌 4DX 영화를 보러 다시 가야겠다. 3D 영화의 복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아바타를 보지 않은 사람 있으면 손을 드시라, 4DX로 같이 보러 갑시다. 물론 예약 및 관람료는 제가 냅니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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