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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09. 2023

거실에 걸린 그림 하나가 평생 심상을 좌우한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주변환경부터 바꿔야 한다. 특히 눈에 보이는 환경을 내가 하고자 하는 목표에 부합할 수 있도록 고쳐야 한다. 집에서 운동을 하고자 한다면 몸에 맞는 운동기구를 사서 거실에 놓거나 아예 방 하나를 싹 비우고 트레드밀에서부터 덤벨, 벤치프레스 기구들을 들여놔야 한다. 거실 한구석에 실내자전거 1대 들여놔서는 며칠 타고 말게 된다. 주변 환경이 운동하는 환경으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동을 쉽게 포기하고 카우치맨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글을 쓰고자 하면 사방 벽면을 온통 책으로 채우거나 아예 달랑 책상 하나에 컴퓨터 하나만을 놓고 앉아야 한다. 이렇게 주변 환경이 조성된 후에야 첫 시작을 해볼 용기가 생긴다.


돈 들여 준비만 해놓고 작심삼일만에 때려치우는 경우도 있겠지만 돈이 아까워서라도 들락거리며 운동기구를 매만지게 되고 책을 들추어보게 될 것이 틀림없다. 시간에 좀 더 지나면 빨래건조대로 변한 트레드밀을 보게 되고 먼지 쌓인 자판이' 눌려지기나 할까' 걱정스럽게 바라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환경을 하고자 하는 의지를 향한 환경으로 바꾸어놓았다면 다시 먼지를 털어 보게 되고 덜덜거리는 트레드밀에 다시 올라서보기라도 할 거다. 그러다 안되면 당근마켓에 고철값 정도로 내놓을지라도 말이다.


집이나 별장을 짓고 당호를 거는 일도 그렇고 집에 가훈을 거는 일도 그렇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의 욕망이 투영된 이름과 문구를 써서 걸어놓으면 매일 왔다 갔다 보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각인된다. 그렇게 해내게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거실에 거는 그림 하나, 조각품 하나가 심성을 좌우하고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바로 그림 하나, 조각품 하나가 네이밍(naming)을 하는 과정이다. 나의 거실에 대한 정의이며 내 마음의 표상이고 각인이자 바람이 된다. 

사람의 심성을 한눈에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그 사람의 서재에 가보면 된다. 소장하고 있는 책들이 어떤 장르의 것들이 주로 꽂혀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생각을 대충 알아챌 수 있다.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책들이 20년 전 발행된 것에서 멈추어 있고 최신 것들로 업데이트가 안되어 있다면 그 사람의 생각도 20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면 거의 틀림없다. 철학책으로 채워져 있으면 사유하는 쪽에 관심이 많을 것이며 자연과학책들이 많다면 우주생성 및 생명의 시작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생각을 넓혀주는 책들로 서재가 채워졌다면 아이들 성장 과정에 부모들이 많이 신경 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재의 책들이 그 집주인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또한 집에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거실의 모습만으로도 그 집을 가꾸고 있는 사람의 여러 심리적 상태를 눈치챌 수 있다. 주로 거실의 장식은 여자들의 몫일 경우가 많다. 어떤 장식품으로 꾸며 놓았느냐를 보면 안사람의 취향을 읽을 수 있다. 요즘은 거실에 아예 TV가 없는 집들이 늘고 있기도 하고 어떤 집은 영화관처럼 꾸며진 집들도 있다. 모두 자기 집에 대한, 자기 거실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꾸미는 방향이 달라진다. 


거기에 양념처럼 걸려있는 그림 하나, 거실 구석에 놓인 조각품 하나조차 그냥 있을 리 없다. 선물을 받았을 수 도 있겠지만 그 자리를 차지하고 걸려있다는 것은 주인의 의도가 분명히 내재되어 있다. 돈이 되는 유명 화가의 그림일 수 도 있다. "이 정도는 걸어두어야 거실이 화사해 보이지"정도의 호기일 수 도 있고 미술품을 보는 안목에 대한 자랑일 수 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주인장의 심성을 읽을 수 있는 단초가 된다.


벽에 그림 하나 잘 걸어야 하는 이유다. 딱 보면 안다. 저 그림을 왜 걸어놨는지 말이다. 평소 그 사람과 대화를 해봤고 행동을 지켜봐 왔다면 거실에 걸린 그림 하나가 허세인지, 그 사람의 욕망인지를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거실에 한번 걸린 그림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할만한 가치의 그림이 없을 수 도 있겠지만 바꿀 만큼의 심리적 동인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일 경우가 더 크다. 도배를 다시 해서 거실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기 전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바꾼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다. 그림을 들어내면 그림크기만큼 색이 변해져 있을 도배지의 모습처럼 말이다. 다시 덮게 되고 그래서 계속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그래서 첫 걸개가 중요하다. 보는 사람의 심성을 계속 지배하게 될 테니 말이다. 해도 바뀌었는데 올해의 각오에 맞는 그림이나 문구나 조각품으로 거실의 풍경을 바꿔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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