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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06. 2023

넋 놓고 바라보는 화장실 창문밖 풍경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일은 주시한다는 것이다. 밖의 상황이 궁금하다는 거다. 비가 오는지, 눈이 내리는지, 맑은지, 흐린 지, 도로에 차는 막히는지, 보도에 걸어 다니는 사람은 많은지 등등 말이다.


하지만 꼭 주시하지 않고도 창밖을 응시할 때가 있다. 바로 화장실 소변기 앞에서 쳐다보는 창문밖의 풍경이다. 오줌 누는 목적의 행위가 있기에 창밖을 쳐다보는 일은 부수적인 행위다. 아무 목적 없이 바라볼 수 있다. 말 그대로 넋 놓고 바라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더 자세히 창밖을 살필 수 있다. 목적이 없기에 이것저것에 눈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아침글의 소재를 찾다 찾다 이젠 화장실 이야기냐?"며 비난의 소리를 들을 수 도 있지만 그래도 해보겠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은 8층이다. 이 건물에서 33년째 버티고 있으니 오래 근무했다. 그 세월 동안 사무실이 층을 바꾼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제일 높이 올라갔던 층이 10층이다. 그동안 3층에서부터 6층 10층 8층의 공간을 오고 갔다. 각 층에서 사무실의 위치는 동서남북 서로 달랐다. 하지만 화장실의 위치는 동일하다. 층이 달라 눈높이만 달라질 뿐이다.


지금 있는 8층 화장실에서 내다보이는 창문은 눈을 들어 쳐다봐야 한다. 서있는 시선 정면에 창문이 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올려다보는 위치에 있다. 창문을 바라보면 회사 건물 바로 뒤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옥상이 보인다. 나무를 심어 조경을 해놓았다. 이 겨울에 쳐다보면 삭막한 나뭇가지만 보이고 2개의 굴뚝에서 흰 연기가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 뒤로 멀리 광화문 흥국생명의 건물 끝부분도 보인다. 8층으로 내려온 지 3년째 되어가고 있으니 창밖으로 보이는 4계절을 모두 3번째 지나치고 있다.


화장실 창문은 크지 않다. 가로 50센티 세로 50센티정도 되려나. 환기를 위한 보조용으로 안쪽으로 열리게 되어 있지만 손잡이가 높아 키가 닿지 않는 높이에 있다. 겨울에는 보온을 위해 창문틈 사이에 테이프를 붙여놓았다. 이중창 사이에 한여름에 들어갔을 모기 한 마리도 죽어서 붙어 있고 창문 바깥에 먼지들이 언젠가 빗줄기에 줄줄이 흘러내렸던 골을 보여주고 있다. 그 창 너머로 바깥풍경이 차경(借景)되어 있다.

창문의 풍경을 차경 하기 위해서는 남자 소변기 네 칸 중에 제일 왼쪽 칸에 서야 한다. 그래야 바깥풍경을 제대로 올려다볼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오줌 싸러 가면 그 칸은 나의 지정석이다. 내가 오줌 싸러 갔는데 그 소변기를 누군가 선점하고 있으면 잠시 기다렸다 기어코 그 칸에 서서 지퍼를 내린다. 그리고 오줌을 싸는 동안 넋 놓고 바깥 풍경을 만난다. 남자만이 누릴 수 있는 풍경이다. 문을 닫아야 하는 여자화장실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거다. 


오줌 싸는 짧은 시간 만나는 바깥 풍경은 오로지 시각적 이미지다. 창문 사각형의 틀 안에서 활동영화처럼 장면이 흐른다. 굴뚝에서 올라오는 흰 연기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모습과 종종 비둘기들이 미술관 옥상 가장자리에 줄줄이 앉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미술관 굴뚝의 흰 연기는 그림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따뜻함을 선사할 것이다. 외투를 벗어 한 손에 든 관람객의 모습까지 굴뚝의 연기 속에 숨어 있다. 때로는 청푸른 하늘이 배경에 깔리기도 하고, 때로는 흐릿한 회색이 배경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는 눈 오는 광경이, 또 언젠가는 장대비 내리는 풍경이 소품으로 보인다. 오줌 싸며 넋 놓고 보고 있어야 보이는 그림이자 동영상이다.


넋 놓고 창밖풍경을 보다 똥꼬에 힘주어 남은 오줌을 짜내고 그래도 털어야 하는 잔뇨가 있는지 확인한다. 나이 들면 찔끔찔끔 거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 ㅠㅠ 그러다 오른손 손가락에 오줌이 묻는다. 화들짝 왼손으로 빤쓰를 추켜올리고 지퍼를 올린다. 바지에도 묻었나 확인하고 세면대로 옮겨 손을 씻는다. 아무 생각 없던 시선의 방향이 일상의 물건들에 다시 꽂히기 시작한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긴장된 얼굴도 보인다. 애써 입꼬리를 올려보고 아침에 샤워하고 젤을 발라 정돈된 머리칼도 다시 만져본다. 손을 말리고 어깨를 으쓱여 보고 화장실을 문을 열고 나온다. 뒤통수로 창문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화살처럼 꽂힌다.


오늘도 서너 번은 저 창문너머 풍경을 볼 것이다. 그때마다 차경의 모습은 미세하게 조정되고 바뀔 것이다. 오늘은 눈이라도 쏟아낼 것 같은 흐린 잿빛하늘이 주배경으로 선정되어 있으니 넋 놓고 차분히 바라보기에 딱이다. 아랫배의 시원함은 오히려 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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