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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13. 2023

구라의 향연 - 홈커밍데이

내가 직장생활 33년을 몸담고 있는 부서에는 오랜 전통이 하나 있다. 바로 홈커밍데이(home Coming Day)다.  1년에 두 번, 상반기 하반기 한 번씩 '홈커밍데이'에 모시게 되는 원로 및 선배님들은 홍보실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수십 명이 된다. 그래서 주로 부서장을 역임하셨거나 임원으로 퇴임하신 분들이 나오신다. 내가 1990년 신입사원으로 홍보실에 입사한 이래로 세상을 달리하신 부서 임원분도 3분이나 계시고 해외에 나가서 퇴임 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매번 20여 명 정도가 참여를 하신다.


코로나 창궐로 지난 3년간은 모임을 하지 못하다가 어제 다시 선배님들을 모시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코로나의 힘든 시간들을 무사히 넘기시고 다들 건강한 모습으로 자리를 함께 해서 반갑고 감사했다. 홈커밍데이라고 거창한 행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간단한 저녁식사에 소주 한잔하고 작은 선물드리는 정도다.


홍보실 출신 오비(Old Boy)들의 입담이야 온 천하가 알아주는 구라다. 한번 모이면 웃느라 입이 아프고, 한번 시작한 구라가 언제 끝나나 시계를 봐야 할 정도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구라의 장황설은 사실 모일 때마다 듣는 레퍼토리도 있다. 그럼에도 또 들어도 재미있고 웃음이 난다. 선배들에 대한 아부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랜 기억의 자물쇠를 여는 것이라 공통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홍보실 구라의 천재'였던 한 선배는 매번 같은 주제를 살짝살짝 변형하여 구라를 전개하는데 한참 들어야 '저 얘기, 지난번에 들었던 건데  또 하시네'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명불허전의 구라는 나이가 들어도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이다.

건배 제의 몇 번이 돌고 나면 왁자지껄해진다.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테이블마다 옛날 에피소드들이 파도를 타고 이어져 옆테이블로 가서 웃음으로 나눠진다. 정말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선배들의 홍보실 무용담은 끝이 없다. 이 얘기를 하고 싶어 그동안 어떻게 참으셨나 궁금할 정도다.


은근히 근무시절 같은 팀의 팀장이셨던 분을 대놓고 씹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기분 나쁘게 이야기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고 나서 지금이야 이야기해도 되는 그런 사연들의 '씹음'이다. "그때 내가 그랬냐? 미안하다 인마!"정도의 댓구로 넘어간다. 팀장으로 모실 시절에는 죽도록 미워했을 수 도 있었겠지만 다들 직장을 은퇴하고 다시 만난 자리에서는 그저 허물없는 이야기 소재로 가볍게 등장할 뿐이다. 세월은 그렇게 미움조차 웃음으로 만들어버리는 요물이다.


"선배님! 홍보실 체험담 모아서 책을 한 권 내볼까요? 대박 날 거 같은데요" 했더니 이미 책을 여러 권 내놓은 전력이 있는 선배 한 분이 대뜸 "그거 나도 생각해 봤는데 돈이 안돼. 돈 되게 쓰려면 다음번에 여기 못 나온다"라고 직격탄을 날리신다. 그렇게 깨갱하고 홍보 관련 책을 써볼 심사를 접었다.


오랜만에 홈커밍데이 모임을 해서 그런지 어제는 옛날이야기보다는 원로들의 건강 문제에 대한 질문과 일상을 묻는 질문과 답변들이 많았다. 코로나의 강을 건너오면서 한층 건강에 대한 염려가 늘어난 듯하다. 어제 좌장으로는 70대 후반의 선배님도 계신다. 더 연배인 분도 계시지만 어제는 참석을 못하셨다. 그러다 보니 퇴임 후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등에 대한 진지한 대화들이 이어졌고 모임의 끝도 건강 잘 챙기시고 다음번 모임에도 꼭 나와주시기를 당부드리는 인사말로 이어졌다.


어제는 얼마나 웃었는지 아침에 일어났는데 턱이 다 아프다. 선배님들께서 따라주는 소주도 제법 마셨는데 전혀 취기가 없다. 웃음으로 숙취를 다 날린 모양이다. 벌써 올 가을 홈커밍데이가 기다려진다. 모두들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시기를 소원한다. 똑같은 구라를 다시 듣고 또다시 배꼽 잡고 웃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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