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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12. 2023

먹다. 먹다? 먹다!

"아침식사는 하고 출근하셨나요?"

"진지 드셨습니까?"

"아침 먹었어?"


요즘은 밥을 먹었는지를 묻는 인사를 거의 안 하는듯하다. 끼니때가 조금 지나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을 경우 간혹 "점심 식사는 하셨는지요?"라고 묻긴 한다. 하지만 이때는 정말 밥을 먹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를 가지고 그 사람의 안녕을 살펴, 굶지 않고 잘 살고 있음을 간파하기 위한 물음이 아니다.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을 거쳐온 세대에게 남아 있는 고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 시절이 오래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60년대 태어난 사람들 까지는 이 "식사하셨습니까?"인사말이 익숙하지 않나? 우리에게 "먹는다"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뜻일 게다.


한국인의 "먹는 문화"를 가장 잘 직시하신 분이 계시다. 바로 이어령 선생님이시다. 이어령 선생님은 '먹는다'는 표현이 한국 사람의 정서와 의식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먹는 것을 생과 사까지도 미각으로 표현하는 유일한 민족이다. 살맛 난다. 죽을 맛이다라고 한다. 인간 최고의 정신적인 미학조차 먹는 것으로 표현한다. 먹는다는 것에 문화, 마음, 사랑이 담겨있지 않으면 한국의 음식이 아니다. 한국인은 먹는 것 속에, 먹는 것 이상의 철학과 우주를 담았다"라고 하셨다. (KBS 2015년 '이어령의 100년 서재' 6회 - 한국인에게 먹는 것이란?) 인문학자의 놀라운 통찰력이다.


이어령 선생님의 통찰처럼 우리는 '먹는다'는 표현의 적용이 어마무시하게 넓다. '음식을 먹다'라는 형이하학적 표현에서부터 섹슈얼리티적 '먹다'의 표현을 넘어 '마음을 먹다'의 형이상학까지를 아우른다. 세월이 흘러 나이 드는 것도 '나이 먹는다'라고 하고 상대방과 언쟁을 하다 싫은 소리 듣는 것도 '욕먹었다'라고 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실점을 해도'골을 먹었다'라고 하고 언론사 기자가 특종기사를 놓치는 것도 "물 먹었다"라고 한다. 심지어 공무원이 뇌물 받고 인허가를 내준 상황도 "돈 먹었다"라고 표현한다. 마치 전라도 전문 용어인 '거시기'가 애매한 대상을 통칭할 때 쓰는 대명사인 것과 같다. '먹다'의 동사에는 이렇게 한국인의 광폭적인 은유가 배어있다.

이 '먹다'의 은유 중에 가장 최고는 '마음을 먹다'이지 않을까 싶다. 마음을 먹는 일은 각오를 다지는 일이다. 무언가를 해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데 '마음을 먹는 일'은 궁핍함에서 나온다. 먹을 것이 없을 때 인간은 마음을 먹는다. 음식이 풍족하게 있거나 주변 상황이 안락하고 편안하면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다. 안주하려고 하고 눕고 싶고 자고 싶어 진다.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궁핍과 결핍에서 피는 꽃과 같다.


없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을 먹게 된다. 굶어야 한다. 그래야 먹을 것을 찾기 위한 마음을 먹게 된다.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행위를 실천하기 위한 전초전이다. 궁핍한 것과 마음먹는 일은 전적으로 비례관계다. 궁핍하면 할수록 마음먹는 일은 단단해진다. 그래서 환경을 제한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마음을 먹을 수 있도록 주변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시간과 장소를 한정하고 제한해 놓고 꼼짝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때서야 마음을 먹는다. 수도승들이 면벽수도하는 이유가 그렇고 마감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글을 써대는 소설가가 그렇다.


"너무 궁핍하면 아예 포기한다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먹는 일, 의지를 다지는 일은 그렇게 황무지에 서봐야 할 수 있다. 사막을 걸어봐야 목마름의 절실함을 아는 이치와 같다. 본능적으로 오아시스를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마음을 먹는 일이다.


언어가 갖는 상징의 의미에 갇혀사는 게 인간이다. 그중에 우리는 '먹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중의적으로 확장했다. 가장 원초적 행위를 끄집어내고 가장 심오한 철학까지도 같은 단어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것을 공동체의 목표를 향해 더불어 살 수 있는 지혜의 언어로 승화시켰다. 오늘도 밥 잘 먹고 욕은 먹지 않는 하루가 되기 위해 마음을 잘 먹어야 한다. 아자 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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