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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16. 2023

생의 마지막 날, 가장 중요한 것은?

우주의 기운을 가두었다가 놓아줄 마지막 날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옆에 있어줄 가족들의 따뜻한 손길과 포옹일까?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장엄한 자연의 경이 앞에 서 있는 모습일까?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흰쌀밥 한 그릇일까?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창틀을 부여잡고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줄기의 차가움을 느끼고 싶을까? 아니면 다음 생을 받아줄 신의 품 안에 안기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일일까?


인생 필름 한통의 마지막 장을 찍어 현상할 때 보이는 모습을 어떻게 액자에 넣고 싶은지 관조해 보면 그 단초는 '기억'에 있다. 생의 마지막 날에,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의 시작은 '기억되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기억되지 않는 것은 소용이 없다. 기억한다는 것은 머릿속에 있는 것을 인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은 하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거나, 행동으로 보여줄 수 없다면 그것은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생의 마지막 날은 '기억을 인출하고 평가받는 마지막 시험의 날'이다.


생의 마지막 날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떠올리고 기억하고 인출하게 될 터이다. 그렇다면 삶에서 중요한 것이나 일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 날 기억으로 떠오를 수 있다. 기억나지 않는 것은 그것은 나의 일생에서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억의 수면으로 떠오르게 하려면 중요하게 느끼고 중요하게 만들어야 한다. 기억의 창고를 풍성하게 채워야 하고 다듬고 수리해야 한다. 기억의 창고가 비어있으면 아무리 인출을 하려고 해도 걸려들지 않는다. 바람이 지나가는 빈 그물이 되고 만다. 기억의 그물은 촘촘히 짜야한다. 바람조차 가두었다 내보낼 수 있을 만큼 말이다. 그래야 생의 마지막 날, 보따리를 풀어헤쳤을 때 수많은 기억 속에서 알짜만을 골라낼 수 있다. 


그렇다고 잡다하게 기억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간추리고 간추리되, 간추린 것들 간의 상호 연결이 촘촘해야 한다. 그래야 기억의 연상작용이 활화산 타오르듯 불길을 내뿜을 수 있다. 살면서 운명의 지평선 근처에 갔다 온 사람들에 의하면 영화필름 돌아가듯 일생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들 한다.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사례일 테지만 그 위기의 순간조차 모두 기억의 산물임을 눈치채면 별거 아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구분 지을 수 없는 기억의 혼재만이 있을 뿐이다.

자연과 우주에는 기억이라는 실체가 없다. 오직 호모 사피엔스의 삶에만 존재하는 비존재적 현상일 뿐이다. 파랑새 같은 비존재를 추구하고 따라간다. 하지만 그 기억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독특한 종을 만들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든 것도 기억이고 달로 화성으로 우주선을 쏘아 올린 것도 상상의 기억이다.  언어가 개념을 만들고 개념이 상상과 환상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실존을 상정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임을 직감하는 사람이 종종 있지만 대부분의 범인은 그날이 언제 도래할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인간이 죽는 원인은 오로지 한 가지밖에 없다. 숨 쉬지 못해 죽는 것이다. 숨 쉬지 못함은 기억의 회로를 차단하는 일이다.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에 준비를 해야 한다. 통장의 잔고를 정리하고 거래은행의 계좌번호를 적어놓고 비상금으로 관리하던 주식계좌를 드러내는 것만이 준비가 아니다. 기억의 창고를 재정리하여 부족한 기억의 고리들은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고 보충하고 보완하는 것도 준비다.


혹시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서운하게 한 일은 없는지, 내가 내려놓지 못해 억지로 쥐고 있는 것이 있는지, 그래서 주변사람들을 마음상하게 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고 사과하고 용서를 빌 일이다. 일상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미뤄놓은 일이 없는지 살펴보자. 하고 싶었지만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망설였던 일이 있다면 과감히 투자하고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 생의 마지막 날, 기억의 편린으로라도 떠오르게 할 수 있다.


그래 잘 살았다고, 행복했다고, 이번 생에 그대를 알게 되어 반갑고 즐거웠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갈 때는 순서 없다고 하지만, 예고 없이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동물의 운명이지만, 기억을 부여해 놓은 이상 정리는 해놓을 수 있다. 언제 떠나도 미련이 남지 않는 마지막 날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살아야 한다. 최선을 다하는 현재만이 후회 없는 마지막 날을 장식할 수 있다. 누군가의 마지막 날,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면 정말 잘 산 인생이자 최고로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여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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