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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20. 2023

산책

"산책(散策)"


오늘 아침 키워드로 잡은 '산책'이라는 단어를 온라인 사전으로 찾아보다 화들짝 놀랐다. 산책의 한자를 보고서다. 흩어질 산(散) 채찍 책(策) 자다.


나는 그동안 '산책'이라는 단어를 운동삼아 한강변이나 둘레길 정도를 느긋한 기분으로 한가로이 거니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산책'의 단어에는 깊은 철학적 고찰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무엇을 흩트리고 무엇을 채찍질할 것인가?


'산책'의 걷는다는 행위에는 이렇게 엄중한 무게가 실려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저 걷고 걸어서 건강유지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용어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아니 산보(散步)를 산책이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산책을 나갈 때면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있고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있다. 무언가 흩트리고 채찍질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다. 그것은 '산책'이 아니라 작은 걷기 운동인 '산보'였다. 


'산책'과 '걷기 운동'은 목적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두 가지 모두 목적을 가졌지만 하나는 사색에 집중하는 것이고 하나는 몸의 건강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색은 천천히 걸어야 하지만 걷기 운동 산보는 조금 빨리 걸어야 한다. 어디에 치중하느냐에 따라 행위가 달라진다.


그래서 '산책'은 walk라는 표현보다는 stroll 이 더 맞다. to walk slowly in usually a pleasant and relaxed way 다.


산책을 통한 사색으로 인류의 지적 수준을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린 인물들이 수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아인슈타인과 칸트가 있다. 칸트는 걸어 다니는 시계라고 할 만큼 정확하게 매일 오후 3시 30분이 되면 산책을 나갔다고 한다. 이 시간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칸트가 살던 쾨니히스베르크(지금은 러시아 땅이 되어버려 칼리닌그라드다) 사람들이 시계를 맞췄다는 썰이 있을 정도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가면 하이델베르크 성을 나와 올드브리지를 건너가면 건너편 언덕에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 있다. 주택가 골목길을 올라가면 호젓한 산책길이 이어지고 네카어강과 구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도 일품이다. 하이델베르크에 간지가 10년도 넘긴 했지만 당시에 나는 이 철학자의 길이 칸트가 산책을 다녔던 길로 알고 있었다. 착각이었다.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철학자의 길'은 헤겔과 하이데거 등이 걸었던 길이었다. 칸트는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벗어났던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모르면 용감하고 엉뚱한 상상을 이어 붙여 믿는 신념으로 만든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철칙이다. 여행에도 적용되는 법칙이다. 공부하고 가야 한다.


산책은 화두 하나를 들고 사색을 하며 걷는 것이다. 이것은 기억의 인출과정이며 능동적 반복 학습 과정이다. 명징한 대기의 공기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방향을 잡는 일이다. 그래서 산책은 천천히 걸어야 한다. 호흡이 가쁠 정도의 속도가 아니라 코로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의 속도여야 한다. 귀로는 조용한 음악도 안된다. 음악은 사색을 방해할 뿐이다. 인간은 한순간 한 가지밖에 못한다. 유일하게 한 번에 두 가지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산책이라는 걷는 행위를 하며 생각을 하는 행위다. 한 순간에 한 가지 밖에 못하기에 순서가 생겼고 이 순서를 시간이라 한다. 시간의 목적성이 생긴 이유다. 


인간은 목적 없는 행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숨을 쉬는 것조차 살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며 물을 마시는 것도 목마름을 해소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이고 코를 후비는 것도 코딱지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목적 아닌 행위를 찾아보라. 없다. 이 목적지향적 행위에 순서가 덧입혀져 시간이 만들어졌다.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상징이다. 인간을 제외한 세상만물 어떤 것도 시간을 따지지 않는다. 인간만이 시간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여 그 안에 스스로 갇혀있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사상이 유례없이 산책의 과정을 통해 정리되어 나온 것을 보면, 산책은 아주 유용한 인출과정이 분명하다. 꼭 철학적 사유를 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하루를 정리하거나 하루의 시작을 계획할 때 산책을 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나이 들어 무릎꼬뱅이 아프니 뛰지 못하는 꼰대들이나 하는 게 산책이라고 폄하할 거까지는 없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산책길 옆에 있지만 미처 보지 못했던 잡초나 녹지 않은 눈더미에 쌓인 회색 먼지까지도 눈길을 주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상의 화두를 하나 붙잡고 산책시간 내내 한 생각에 몰두하는 게 범인들은 쉽지 않다. 습관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흩뿌리고 채찍질할 일들이 널려있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산책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머릿속에서 건져내 쌀쌀한 바람결에 날려버린다면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한결 상쾌하고 명징함을 경험하게 될 터이다.


점심 식사 후에 30분 정도라도 시간이 나면 주변의 도심 공원이라도 천천히 걸어볼 일이다. 산보보다는 산책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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