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Jan 26. 2023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비결

창밖이 온통 흰색입니다. 밤새 눈이 제법 내려서 쌓여 있고 지금도 흩날려 창틀을 사뿐사뿐 지나갑니다. 그렇게 흰색으로 채색된 바깥 풍경에 감정이 입혀집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잔 속에서 찻잎이 금빛을 내어놓고 있는 모습을 두 손에 받쳐 들고 바라봅니다. 영하 10도의 차가움과 괴리된 따스함이 오히려 소름 돋는 한기를 몰고 옵니다.


잠시 창가에 서 있는 동안 머릿속에 펼쳐진 감각과 의식과 감정의 진행 상황을 들여다봅니다. 오감의 감각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고 감정으로 변화하는 현장을 따라가 봅니다. 실마리 끝을 잡고 살살 앞으로 당겨봅니다. 


'내가 된다는 것(Being You)'의 저자, 아닐 세스(Anil Seth)는 "두개골에 봉인된 채 바깥세상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고 애쓰는 저 머리 위 뇌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거기에는 빛도 소리도 아무것도 없다. 완벽한 어둠과 침묵뿐이다. 시각, 청각, 촉각 같은 감각 형식들 중 그 무엇도 특정 감각 입력이 무엇에서 왔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뇌는 본질적으로 모호한 이런 감각 신호를 어떻게 이에 해당하는 사물, 사람, 장소에 가득한 시각적 세상으로 변환할까? 뇌가 예측기계이며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감각 입력이라는 원인에 반응해 뇌가 만든 최선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이론을 따라가면 의식의 내용이란 실제 세상보다 더 많거나 적은 깨어있는 꿈, 즉 제어된 환각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현상을 직시하는 통찰력은 역시 대가들의 몫인가 봅니다. 범인들은 그저 "브레인은 '그럴 거야'라는 추론을 찾아가는 기계이다"라는 문장 하나에 화들짝 놀라 두리번거릴 뿐입니다.


인간의 정신작용은 머릿속 기본 사전에 있는 단어를 문장으로 연결해 조립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억한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은 모두, 우리의 브레인에 담긴 단어들을 꺼내 문맥에 맞게 조합을 하는 일입니다. 브레인은 단어들이 저장되어 있는 사전(lexicon)입니다. 사전이 두툼할 정도로 단어들이 많이 저장되어 있어야 꺼낼 때 여러 조합이 가능할 것임은 자명합니다. 머릿속 단어 사전의 두께가 얇으면 그만큼 꺼내올 단어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단어만 많이 안다고 해서 훌륭한 사고를 하고 명석한 판단을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는 단어들을 얼마나 문맥에 맞게 잘 연결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바로 독립적인 단어들을 붙이는 순서에 정보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순서는 위계(hierarchy)입니다. 앞뒤가 맞는 것을 문맥이 맞다고 합니다. 순서가 맞지 않으면 횡설수설한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말과 글에 맥락이 있다는 것은 순서의 규칙이 있다는 겁니다. 말에는 논리가 있고 글에는 문법이 있습니다. 이게 맞아야 상호 소통이라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사실 이 언어적 규칙은 자연의 위계구조와 인과관계를, 인간이 복사 인용해서 사용할 뿐입니다. 대표적 자연의 위계구조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일 겁니다. 계절의 흐름입니다. 물리학과 지구과학, 우주론 관점에서 천체의 운행원리에 따라 변화하는 물리적 상황으로 들이대지 않더라도, 또한 지구 표층에서 벌어지는 현상론적 생명현상일 뿐이라고 폄하하지 않더라도 자연의 흐름을 시간이라는 상징으로 편입시켰습니다.


상징의 세계는 이만큼 방대합니다. 호모사피엔스는 언어 이전에 이미 상징을 먼저 출현시켰습니다. 제스처입니다. 몸짓만으로도 의도를 전하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입니다. 이 상징으로 인간은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했습니다. 지각의 항상성(perceptual constancy)을 얻은 것입니다. 동물은 자극이 오면 반응을 할 뿐이지만 인간은 즉각 반응하지 않고 시간 지연을 할 수 있습니다. 개별 사물에서 상징을 분리해 낼 수 있게 됨으로써 인간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모든 예술도 바로 이 시간지연을 통해 아름다움을 끌고 옵니다. 시간이라는 상징을 만들고 시간을 극복해 낸 것도 인간입니다. 상징은 상상을 만들고 인간은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종이 되었습니다.


공원의 호젓한 오솔길에 쌓인 눈길을 뽀드득 거리며 걸어봅니다. 제어된 환각을 동원하여 흰 눈을 보고 사르르 내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 춥지만 참 좋습니다. 차가움이 오히려 쨍한 명징함을 가져옵니다.  

작가의 이전글 이산화탄소의 두 얼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