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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27. 2023

직원식당에서 한 끼 때우기

나는 먹는 음식의 맛에 매우 둔한 듯하다. 외부 약속이 없어 회사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는 경우, 나는 식당의 오늘 메뉴로 뭐가 나오는지 보고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일주일 단위로 회사 식당 영양사가 이메일로 주간 메뉴를 보내오는데도 나는 한 번도 쳐다본 적이 없다. 많은 직원들은 식당에 식사하러 가자고 하면 메뉴를 열람해 보고 "오늘 금요일이라 어묵 우동, 돈가스가 주 메뉴인데 그냥 밖에 나가서 식사하시지요? 지난번 돈가스가 질기더라고요"라고 하기도 한다.


나는 회사 식당에서 제공하는 메뉴 종류를 보고 올라가서 먹을 것인지 밖에 있는 외부 식당에 나가서 먹을 것이지 결정하지 않는다. 나는 맛에 비중을 두는 것이 아니고 그냥 점심 한 끼 때웠다는데 의미를 더 두는 듯하다. 속칭 짭밥 먹는데 퀄리티를 따져봐야 무의미하다는 생각이고 어련히 알아서 칼로리 챙겨서 음식을 만들었을 거라는 믿음도 바닥에 깔려있긴 하다. 그러다 보니 메뉴의 종류에 따라 맛이 있네 없네 불평을 해본 적도 없다. 아니 메뉴가 부실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때그때 주는대로 먹고, 있는대로 먹는다. 이거 무심한 건가? 무식한 건가? 나도 헷갈린다.


그저 아이디카드를 찍고 식판을 들고 수저를 챙기고 주메뉴와 국, 그날의 메인 반찬 2~3개를 받고 밥을 푸고 김치와 깍두기, 샐러드를 담고 후식 음료 식혜도 식판에 올려놓고 빈자리를 두리번거려 착석을 한다. 직원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지만 시시콜콜 말들은 별로 많이 하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 식탁 자리마다 투명 칸막이가 놓여 있어서 그런 영향도 있다.  코로나가 식당을 조용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식사시간은 단 5~10분여 정도 걸리는 듯하다.


식사가 끝나면 잔반을 국그릇에 모으고 퇴식줄에 서서 반납을 하고 생수기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이쑤시개와 냅킨을 챙겨 들고 직원식당을 나선다. 식당입구에는 오늘의 메뉴에 대한 품평을 해달라는 게시물과 함께 스티커가 붙어 있고 볼펜도 있다. 나는 무심히 지나치지만 직원들은 이것저것 스티커를 떼서 음식 평가를 해준다. 칭찬도 있고 아쉬움의 표현도 보인다. 그렇게 직원들의 관심 속에 메뉴의 품격이 계속 올라갈 것이다.


나같이 맛에 무심한 사람들을 직원식당을 위탁운영하는 프랜차이즈업체에서는 좋아할까? 불평불만이 없는 듯하니 일견 좋아할 듯하다. 아니 호구로 볼 가능성이 더 클 것이고 아예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들이 만들어 내어놓는 음식에 가타부타 이야기가 없으니 불안하기도 할 것이다. 잔반이 많이 나오면 맛이 없다고 눈치챌 것이고 잔반이 거의 없으면 맛있다고 생각할 것으로 지레짐작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맛에 아주 둔감한 것은 아닌 듯하다. 특히 속칭 맛이 약간 간듯한 반찬은 귀신같이 알아맞춘다. 남들은 입에 넣고 씹어보고도 상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나는 바로 눈치챈다. 전날 저녁에 미리 만들어둔 것인지 아침에 조물조물 무친 것인지 알아챌 수 있다. 또한 음식 원천 재료 중에 방부제가 들어간 것이 있으면 나의 장이 바로 확인해 준다. 방부제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1~2시간 만에 반드시 속이 안 좋아 화장실에 가야 한다. 가끔 직원 생일이라고 베이커리 케이크로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케이크 한 조각을 먹으면 그 케이크에 방부제를 뿌린 건지 아닌지 잠시후면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나의 장은 방부제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지금은 재개발로 문을 닫았지만 충정로 철길 옆에 있던 꽤 유명한 식당도 나는 그 집에만 가서 식사를 하면 설사를 했다. 이상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갈 때마다 그랬다. 그런데 나만 그랬다. 같이 가서 식사를 한 일행들에게 속이 괜찮냐고 물어보면 괜찮단다. 더 이상했다. 그 집 하고 음식궁합이 안 맞는데 무얼까 생각해 보니 삭힌 홍어를 이용한 무침과 삼합 같은 음식이 여럿 있는데  아마 원산지로부터 올라올 때 어디선가 방부제를 뿌려 올려 보낸 듯했다. 그렇다고 주인장에게 물어볼 수 도 없었다. 나한테만 증상이 나타나고 있으니 미친놈 소리 들을게 뻔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 집에서 식사약속을 안 잡거나 잡히더라도 다른 집으로 예약변경을 하자고 해서 안 갔다. 그나마 지금은 아예 그 식당이 없어졌지만 말이다.


오늘은 점심약속이 없다. 직원식당에 올라가서 식사를 할 거다. 역시 메뉴가 무언지 나에겐 관심 없다. 그저 빨리 한 끼 때우고 내려와 남은 점심시간 30분 정도 낮잠 자는 게 더 좋기 때문이다. 맛의 즐거움보다 오수가 주는 편안함이 나에겐 더 효율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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