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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21. 2023

천박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천박하다'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다. 얕을 천 淺 엷을 박 薄의 한자어다. "학문이나 생각 따위가 얕거나 말이나 행동 따위가 상스러움"을 뜻한다. '천박하다'에 해당하는 영어로는 shallow, superficiality가 나오지만 의미가 대비되지는 않는 듯하다. 차라리 a thoughtless act와 같이 '아무 생각 없는 행동'이 의미적으로는 더 와닿는다.


얕고 엷음은 어디서 나오는가? '보여줌'에서 나온다.

생각을 드러내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행위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천박함은 타인의 시선이다. 천박하다고 지적받는 본인은 전혀 천박할 의도도 없고 천박하게 행동하고 싶지도 않고 천박하게 평가받고 싶지 않다. 자기를 평가하는 부정적인 의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박함은 안보여주고 싶어 가리면 가릴수록 더욱 드러난다. 천박함을 감추고자 과장된 말과 과장된 행동을 하면 할수록 천박함은 배가 된다.


이를 어찌할꼬!


그렇다면 천박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떡하면 될까? 극약처방이 있긴 하다. 가만히 있으면 된다. 아무 말하지 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하듯 있으면 된다. 사람이 찾아오면 그저 미소로 화답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면 된다. 말이하고 싶어 입술이 근질근질하다면 단 두 마디만 하면 된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앞뒤 문맥이 안 맞아도 된다. 딱 1년만 그렇게 버티면 성인으로 추앙받을 수 있다. 


성인으로의 추대는 타인들이 알아서 다 만들어준다. 심각한 고민거리를 들고 찾아와 구구절절이 떠들지라도 대꾸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짓고 있으면 답변을 구하러 온 사람이 스스로 답변을 들고 간다. "와! 대단한 사람이야. 이미 내 고민을 다 꿰고 있어서 그저 미소를 짓고 계셔. 그래 내가 하는 고민은 고민도 아니야. 그저 웃으면 되는 거야"라고 간단히 고민을 해결하고 간다. 이런 사례가 하나둘씩 쌓이면 곧 도사가 되고 성인이 될 수 있다. 천박함을 덮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저 덮고 가리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는 입은 봉할 수 있게 할 수 있겠지만 움직이는 행동까지 제어하기에는 어렵다. 말과 언어는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행동으로 표출된다. 생각 없는 행동은 일어날 수 없다. 무의식적으로 움직인다고? 그건 의식의 과정이 너무 짧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목적지향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아침에 눈을 떠 일어나는 것은 출근하기 위한 목적이며 양치를 하고 샤워를 하는 것은 정신을 온전히 하고 타인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고 깔끔함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고 옷을 입는 것은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행동이 목적이기에 움직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 된다. 그래서 행동 거지만 봐도 그 사람의 지덕체를 한꺼번에 눈치챌 수 있다.


사람의 아우라는 한눈에 척 드러난다. 그게 바로 첫인상이다. 몇 마디 건네보고 같이 잠시 동행해 보면 대충 어떤 사람인지 보인다. 아우라를 조작하고 변형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기꾼도 있지만 얼마가지 못한다. 옅고 얇은 아우라는 봄날 아지랑이처럼 금방 사라질 수밖에 없다.


천박함을 깊이 있는 아우라로 바꾸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얻어걸리는 것이 아니다. 귀찮아서 깊이 있는 생각과 공부를 하지 않았고 게을러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따라붙는 것이 '천박'이라는 단어다.  "노요지마력(路遙知馬力) 일구견인심(日久見人心) ; 먼 길을 가봐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오래 봐야 사람 마음을 알 수 있다"라고 했지만 천박함은 오래 볼 필요도 없이 그냥 드러난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염정자수(恬靜自守 ; 고요한 가운데 자신을 지켜라) 하지 못하면 천박함은 부끄러움이 된다. 무엇이 천박한 것인지 모른다는 함정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하는데 그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다. 모르면 부끄럽지도 않다. 옆에서 웃어주는 웃음소리가 좋아서 하는 것인지 비웃는 것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나의 언행은 천박하지 않은지 먼저 점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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