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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24. 2023

손글씨는 예쁘게 쓰시나요?

어제 하루동안 손으로 펜을 잡고 글씨를 써보신 기억이 있으신가요? 글쎄요 아마 펜을 잡은 기억조차 없으실 것이 확실합니다. 휴대폰과 컴퓨터로 모든 업무 및 일상을 하는 시대이다 보니 아날로그형 펜은 책상서랍에 넣어둔 장식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나마 펜을 잡고 몇 자 끄적일 기회는 회의를 할 때 수첩에 주요 키워드를 받아 적을 경우일 텐데 이마저도 프레젠테이션 화면으로 바뀌어 글씨를 써서 저장해 놓는 기능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요즘은 휴대폰으로 회의시간 전체를 자동으로 녹음해서 글자 화하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회의내용을 받아 적을 필요도 없습니다. 필경사라는 직업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등장하면서 사라졌듯이 속기사라는 직업도 신기술에 밀려 사라질 판입니다. 아니 뭐 개인적으로도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할 때 수첩을 꺼내 쓰기보다는 휴대폰 메모장에 자판을 두드려 저장을 해놓습니다. 기술의 편리함이 도구의 사용을 바꾼 셈입니다.


이렇게 손글씨 쓸 일이 점점 사라지면서 오히려 필체를 예술로 만들기도 합니다. 바로 캘리그래피(Calligraphy)입니다. 손으로 아름답고 개성 있는 글자체를 쓸 수 있으면 돈이 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캘리그래피는 글씨를 쓴다는 느낌보다는 그린다는 인상이 강하긴 합니다. 펜으로 종이에 쓰는 캘리그래피가 대부분이지만 아이패드나 태블릿 PC에 전자펜이나 앱을 이용하여 쓰기도 합니다. 도구가 변했을 뿐 글씨는 쓰는 사람의 손끝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손으로 글씨를 쓸 일이 점점 줄어들다 보니 필체가 엉망이 되었다는 핑계를 대는 경우를 봅니다. 사실 필체가 악필이냐 아니냐는 나이 들어 많이 써봤네 안 써봤네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어려서 글씨 쓰는 법을 처음 배울 때 어떻게 시작하고 얼마나 예쁘게 쓰려고 했는지의 노력과 훈련으로 결정됩니다. 글씨 쓰는 초기 노출 환경과 개인의 성격, 신체적 조건에 따라 글씨체가 만들어집니다. 손가락에 펜을 잡고 써 내려갈 때는 손가락에 가해지는 악력의 세기도 중요한데 어려서 손가락 힘이 없을 때 잘 훈련해서 길을 들여야 합니다. 곧게 직선으로 내리 그을 때 가해지는 힘과 곡선으로 이어지는 종성의 동그라미를 그릴 때 들어가는 힘의 차이가 무의적으로 작동할 때가 바로 자기의 필체가 됩니다. 그래서 개개인별로 모두 다른 필체를 갖게 됩니다. 글씨만 봐도 누구의 글씨인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지문처럼 작동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글씨체만으로도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고 심지어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필적 전문가의 책도 있습니다. 나름 일리 있는 접근일 수 있으나 제가 보기에는 확증편향의 전형으로 보입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믿고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되는 것처럼 보이게 되고 그렇게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경우는 두 가지뿐이랍니다. 경조사 봉투에 자기 이름을 쓰는 일과 은행 대출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경우밖에 없답니다. 책임 소재를 묻거나 소유를 확인할 때 본인임을 증명하거나 확증하는 수단으로써 친필 이름을 쓰는 겁니다.


손글씨 하면 연애편지가 생각나고 군대 행정병의 각 잡힌 차트글씨가 떠오르며 심지어 대학 학위논문까지 손으로 써서 제출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80년대 말 기자 초년시절 때까지만 해도 200자 원고지에 기사를 써서 데스크에 넘겼습니다. 원고지에 기사를 작성하다 문장이 틀리면 원고지를 찢어 버리고 다시 쓰느라 진땀을 흘리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렇게 원고지에 쓴 기사가 데스크로 넘어가면 빨간 돼지꼬리를 여러 개 달고 편집부로 넘어가면 타이핑을 전문으로 하는 전산 사식원들이 그 원고지 내용을 CTS라는 컴퓨터 시스템으로 다시 입력하는 작업을 거쳐 신문이 만들어졌습니다.


자기 스스로 기억의 저장창고로 기록을 하는 글씨가 아닌, 타인에게 어떤 정보를 보여주고자 쓰는 글씨는 아무래도 필체를 정성스럽게 쓰게 됩니다. 수첩에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휘갈겨 쓰는 글씨와 연애편지의 글씨체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필체의 기본형이야 같겠지만 나중에 내가 혼자 다시 읽으며 쓴 글을 통해 기억을 회상하는 용이라면 굳이 정성 들여 쓰지 않습니다. 정보를 담고만 있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다시 읽을 때 무슨 글자인지 못 읽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말입니다.


어제 저녁식사 약속이 있어 광화문 근처의 중식당에 갔습니다. 식당 한쪽 벽면에 그동안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의 격려 사인들이 걸려 있습니다. 요즘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 계신 분의 사인에서부터 나름 방귀 좀 뀐다는 정치인 연예인들의 사인들이었습니다. 그 많은 사인액자 위로 그 사람들의 얼굴이 오버랩됩니다. 글씨체가 다양한 만큼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의 축소판을 보는 듯했습니다. 글씨는 주체성을 드러내는 행위임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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