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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24. 2023

풍요 속의 빈곤

'물난리에 물이 제일 귀하다'라고 한다. 소피스트들의 궤변처럼 들린다.


물 앞에 어떤 상황의 단어를 넣느냐에 따라 문장의 의미가 달라진다. '마실 물'이라는 표현형을 달고 오면 금방 이해가 된다. 물난리 속에서 물은 너무 많아 감당이 안 되는 존재다. 역설로 귀함을 강조한다.


물난리에 물이 귀함은 물이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하천이 범람해 주택을 덮치고 하수구를 역류해 올라오며 온갖 오물을 뒤섞어 놓는다. 물난리가 아닐 때 물은 물길을 따라 흘러갈 뿐이다. 자기의 위치를 안다. 더러운 물은 오수처리장으로 흘러 정화의 대상이 되고, 깨끗한 물은 하천으로 들로 논으로 흘러 생명수의 역할을 한다.


범람(氾濫 , flood)은 있을 곳에 있지 않는 현상이다. 몬순 시즌에 하천의 범람은 온갖 토양이 뒤섞여 풍요로운 대지의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나일강 하구의 삼각주가 그렇고 메콩강 주변의 범람원 평야가 그렇다. 범람은 융합이다. 흘러넘쳐야 새로운 창의성이 발현된다. 가두어 놓으면 각자의 역할에는 충실할 수 있지만 창의적 밑거름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가물어서 물길이 완전히 끊어진 상황도 물난리다. 많아서 난리가 아니고 너무 부족해서 난리인 상황도 물난리다. 가뭄의 물난리는 물에 방점이 찍힌 것이 아니고 가뭄을 해결하고 보완하기 위한 행위에 찍혀 있다. 지금 남녘의 가뭄 현상이 그렇다. 관정을 뚫어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섬마을을 돌아다니며 해수를 담수로 만들어주는 이동형 담수화 선박도 있지만 역부족일 정도다.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간다)라고 했다. 궁하면 통하겠지만 봄꽃소식에 물 귀함의 현실조차 말라버린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화무십일홍인데 꽃잎까지 끌어올릴 물조차 부족해 시든 꽃잎이 더 금방 떨어질까 안타깝다.

무조건적이며 비 예상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그 속에서 어떤 인사이트를 찾아낼 것인지는 세계를 보는 눈에 달렸다. 나의 세계관이 세상을 보는 창이다. 넘쳐나는 현상 속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심미안이다. 


재테크를 할 수 있는 기회로 잡을 수 도 있고, 몰랐던 지식의 영역을 확장하는 희열을 찾아낼 수 도 있다. 범람과 결핍은 각자의 niche 마켓을 찾게 하는 광장이자 기회다. 어떤 것이 더 좋은 것이고 바람직한 것이다라는 기준은 없다. 각자의 형편에 맞는 숨은 장소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에게 넘쳐나는 것은 무엇이고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그럴 리가 없다고, 넘쳐서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인생을 헛 산 것 같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세상사는 어느 누구도 넘쳐나는 무언가를 소유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경중의 천칭은 각자의 가슴속에 있기에 기울기의 균형도 자기만이 맞출 수 있다. 넘쳐남도 경계를 해야 할 대상이지만 부족함에 더 집중해야 한다. 넘쳐나면 덜어낼 수 있지만 부족하면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주말에 촉촉한 비소식이라도 있어야 할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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