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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07. 2023

복수가 필벌일까?

어떤 조직이 잘 굴러가려면 기강이 바로 서야 한다. 기강(紀綱)은 법도와 질서를 말한다. 기강을 구성하는 한자 단어가 벼리 기, 벼리 강이다. 벼리는 그물을 당기거나 놓을 때 오므렸다 폈다를 할 수 있게 하는 그물 위쪽 코를 꿰는 줄을 말한다. 어떤 일에 있어서 근본이나 뼈대가 되는 것으로까지 의미 확장이 되었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의 강도 이 강이며 생물학 분류에서 말하는 종속과목강문계 중의 강도 공통된 뚜렷한 특징을 말하는 class의 번역어로 쓰고 있다.


조직에서 기강이 무너지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구성원들이 힘을 모을 수 없으며 군대에서 기강이 사라지면 오합지졸이 되고 국가에서 기강을 유지하지 못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각 주체에 있어 기강의 정의는 각각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벼리의 뼈대가 어떠해야 하는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안다.


국가에 있어 기강을 바로 세우는 길은 세종대왕의 리더십에서 언급되는 임현사능(任賢使能) 신상필벌(信賞必罰)이 정답에 가깝다. 임현사능은 유능한 인재를 알맞게 등용하는 일이며 신상필벌은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벌을 주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고 당연한 원칙인 것 같지만 이게 안 지켜져서 정권이 바뀌고 나라가 위태해지기도 한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현실에서 목도하고 있는 현상이다.


당연해야 하는 것이 안 지켜질 때는 그 상황을 누르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나쁜 짓인 줄조차 모르고 당연히 받아들이는 상황이 있으며 이권과 결탁하여 떡고물이라도 생길라치면 그 떡고물이 사회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어김없이 끼어든 양아치들의 호주머니 차지가 된다. 세상사 모든 공무원들이 청백리 같으면 오죽 좋으련만 호모 사피엔스 인류사 통틀어 그런 하은주 시대는 신화에나 나오는 환상이다. 온갖 잔머리와 자기 살기에만 급급하면 찌질한 군주의 자기 밥그릇 챙기는 모습을 보여준 대한제국의 고종 같은 나라 팔아먹는 군주까지 등장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신상필벌의 평가는 뼈대이기에 같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못하면 사회가 한다.

근래 들어 드라마 영화들의 내용 중에 복수와 응징을 테마로 하는 작품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학교폭력에 대한 처절한 복수극인 '더 글로리'가 그렇고 정의가 사리진 시대에 통쾌하게 복수를 대행해 주는 TV 드라마 '모범택시'의 스토리가 그렇다. 권선징악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기본 심리가 작동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심리의 가상적 현장이지만 그나마 그렇게라도 대리 만족을 하고 있는 듯하다.


신상필벌이 시스템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적 상황으로 들어와 버렸다는 것은 다시 한번 심각성을 되짚어 봐야 할 것 같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에 벌어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편법이 만연하는 사회,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고 온갖 부정을 저지르는 사회, 그 저지른 부정을 부정이라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할 수 있는 권리하고 생각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복수와 응징은 필벌이 될 수 없다. 복수와 응징은 응어리진 감정의 폭발일 뿐,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은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고 해소해야 할 일들이다. 정답이 없기에 그렇다. 정답이 있다면 풀어서 답을 찾아 해결되지만 정답이 없다면 원인을 찾아 없애야 한다. 용서와 화해보다 복수와 응징이 더 속 시원하고 빠른 해결책처럼 보인다.


법이 제대로 작동하여 평등하고 고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필벌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필벌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고 대부분의 범인들은 생각하고 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돈도 있고 힘 있고 빽 있으면 더더욱 무소불위가 되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약자를 지켜주는 법이 아니고 강자의 권력을 더 강화시키는 법으로 전락하고 그 법을 해석하고 심판을 내리는 사람조차 강자의 편에 서 있음을 보게 된다. 성문에 따라 판단하고 심판한다고 하지만 그들만의 해석이고 그들만의 리그일 경우가 다반사다.


평범한 시민들은 많은 것, 무리한 것을 원하고 요구하지 않는다. 나쁜 짓을 하는 놈은 반드시 죄과를 달게 받는 것을 보고 싶어 할 뿐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이다. 그래야 국민에게 봉사하라고 뽑아놓았더니 자기가 대표인줄 착각하는 몰상식한 무뢰배들의 행태도 막을 수 있다. 복수와 응징에 가슴 후련해지면 안 되는데 자꾸 마음이 기울어간다. 내가 점점 나쁜 놈이 되어가는 듯하여 착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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