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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01. 2023

응급실 뺑뺑이, 당해보면 안다 눈물겨운 현실을

그저께와 어제에 연속해서 '교통사고 중상환자, 병원 12곳서 받지 않아 사망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사건이라 유심히 언론들이 어떻게 후속 보도를 하는지, 관련 정부부처에서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보게 된다.


나도 정확히 30년 전, 와이프가 큰 아이를 임신하고 6개월 조금 넘었는데 골반이 약해 조기 출산상태에 있을 때 병원 응급실에서 받아주질 않아 병원 5군데를 뺑뺑이 돌았던 생생한 기억 때문이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게 없다는데 다시 한번 놀랐고 우리나라 의료 수준이 아직도 멀었구나를 절감하게 된다.


30년 전인 1994년 6월.


그날의 순간순간들은 한순간도 잊히지 않고 각인되어 있어 지금도 한 올 한 올 끄집어낼 수가 있다. 1994년의 여름은 사상 최고로 무더웠던 기록 중의 하나로 남아있는 여름의 시작이었다. 93년 10월 결혼하고 첫 아이의 임신으로 출산의 날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신혼살림은 용마산 밑에 있는 서일전문대와 131번 버스 종점이 있던 근처의 연립주택에서 시작했다. 와이프가 근무하던 학교가 구리시에 있던 터라 출퇴근하기 용이하고 더구나 연립이 아는 사람의 소유인지라 편하게 들어갔다.


와이프는 임신하고 동네 산부인과에 주기적으로 검사를 다녔다. 그런데 임신하고 6개월 조금 넘었던 때 배가 아파 산부인과를 갔더니 조산기가 있다고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고 오후 5시쯤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일단 가까운 큰 병원인 위생병원(지금은 삼육서울병원)으로 가라고 하고 조기 퇴근을 하고 위생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병원 뺑뺑이의 시작이었다.


삼육서울병원이 지금은 재건축을 하여 건물도 삐까번쩍하고 의료진도 빵빵해졌지만 위생병원시절인 90년대 초만 해도 말만 종합병원인 듯했다. 위생병원 응급실로 달려가니 응급실 침대에 링거를 꽂은 채 와이프가 누워있다. 응급실에 환자도 별로 없고 썰렁한데 기분이 묘했다. 링거액이 다 내려갈 때까지 침대를 찾아와 상태를 묻는 의사는 없었다. 와이프의 상태가 어떤지 모르니 마음만 초조해지고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응급실 의사를 찾았다. 당장 입원은 안된단다. 자기들은 지금 환자를 받을 수 없단다. 다른 병원을 소개해 준단다. 그래서 소개받은 병원이 을지로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이다. 엠블런스는 내준단다. 그래서 링거액(조산방지 수액)을 교체하고 엠블런스를 타고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로 갔다.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에서도 찬밥신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 역시 환자를 받을 수 없단다. 사유를 물었다. 왜 병원이 환자를 못 받는지 납득할 이유를 달라고? 그냥 길바닥에서 죽으라는 소리냐고? 그래도 자기들은 안된단다. 임신 6개월째인 상태인데 아기가 나오면 장담할 수 없단다. 의료사고를 걱정하는 듯했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안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닦달을 하니 또 병원을 소개해주겠단다. 서울아산병원이다.

동네병원에서부터 벌써 4번째 옮겨간다. 아산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거기는 아수라장이다. 응급실에 환자들이 침대마다 꽉 들어차있다. 응급실로 들어오는 환자는 문전박대를 할 수 없으니 일단 환자를 들이기는 한다. 그런데 외상 환자가 아니고 의식도 있는 와이프는 환자 취급도 못 받는다. 시간은 흘러 벌써 밤 12시를 넘기고 있다. 그저 간이침대에 누워 조산방지제 링거액만 갈고 있다. 


"급한 놈이 우물판다"고 응급실 담당의사를 찾았다. 왜 아무런 응급처치나 입원에 대한 절차조차 하지 않는지 물었다. 담당의사 왈 "병실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큐베이터 사용문제 때문에 그렇다"라고 사실을 털어놨다. 6개월 정도밖에 안 된 아이가 나오면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인큐베이터 1대를 독점적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병원들이 그렇게 할 정도로 시설이나 장비들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아산병원도 우리 아이를 위해 인큐베이터 1대를 2개월 이상 내줄 정도는 안된단다. 자기들도 어쩔 수 없으니 장기간 인큐베이터 사용이 가능한 병원을 수배해서 소개해주겠단다. 그래서 또 소개받은 병원이 보라매병원이다.


시간은 새벽 3시를 넘기고 있다. 병원을 옮길 때마다 초진 진료비를 내야 했다. 지금이야 신용카드가 생활화되었지만 90년대 초반만 해도 신용카드 사용이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행히 지갑에 20만 원 가까이 현금이 있어 병원을 옮길 때마다 5만 원 정도의 비용을 냈던 것 같다. 보라매병원을 소개받고 병원 현관에서 앰뷸런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가 없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와이프의 모습도 초라해 보이고 이 새벽에 둘이 병원 현관에서 앰뷸런스를 기다리는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이젠 지갑도 다 털려 무일푼이다. 


번뜩 산부인과를 하고 있는 친구 녀석에게 그 새벽에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했다. 와이프 상태를 이야기하니까 친구 녀석 하는 말이 "이런 말 한다고 마음 상하지 말고 자기는 아이를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라고 한다. "6개월 정도밖에 안 된다는데 조기출산을 하면 아이의 여러 신체기관들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라 인큐베이터를 오래 쓰면 여러 합병증이 우려된다"라고.


도움과 위로를 받고자 한 전화가 오히려 독이 됐다. 어금니를 질끈 물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잘 넘겨야 한다는 오기가 생겼다. 할 수 없이 그 새벽에 근처에 사는 큰 처형에게 공중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엠블런스를 기다리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보라매병원으로 가면 간병이 문제였다. 집은 면목동인데 보라매병원은 동작구에 있다. 회사에 출근도 해야 하는데 간병하러 왔다 갔다 하는 게 보통 문제가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그때 번쩍 떠오른 것이 성남에 있는 인하대병원이었다. 지금은 인하대병원이 인천에 있지만 그 당시는 성남 시청 근처에 있었다. 성남에는 큰 누나도 살고 있고 둘째 처형도 살고 있어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가 수월할 것이라 잔머리가 돌았던 것이다.


성남 인하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다. 인하병원에서는 오지 말라고 한다. 책임질 수 없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새벽 4시가 넘었지만 무작정 성남 인하병원으로 앰뷸런스를 돌렸다. 내심 무작정 성남 인하병원으로 들이닥친 것은 당시 내가 근무하던 홍보실이 그룹통합홍보실이었던 관계로 인하대병원 홍보실 직원들과도 안면을 트고 지냈던 연유에서다. 응급실에서는 실려온 환자를 일단 내칠 수는 없으니 병상 하나를 내주고 링거액 교체는 해준다. 그렇게 병원직원들이 출근할 시간까지 기다렸다 홍보실 직원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밤새 병원을 옮겨다닌 상황 설명을 하고 당장 조기 출산 수술이 아니면 입원이라도 시켜달라고 했다. 그래서 겨우 인하병원에 입원을 했다. 12시간 넘게 병원 5곳을 전전했다. 악몽과도 같았던 병원 응급실 뺑뺑이였다. 


그 아이가 그해 8월 무사히 태어나 올해 30살의 처녀가 되었다. 크면서 어디 아픈데 한번 없이 병원 한번 안 다니고 컸다. 태어나기 전, 이미 병원을 다 다닌 전력이 있어서 가기 싫었나 보다.


그래서 12개 병원에서 못 받는다고 입원을 거절해 사망했다는 기사가 남의 일 같지 않은 거다. 병원이 '수용거부'를 했다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수용불가'가 맞는 말인 듯하다. 그렇다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왜 30년이 넘었는데도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바뀌지 않을까? 병원은 의사, 간호 인력과 시설, 장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어느 한쪽이 부족해도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그래서 의료체계에는 국가가 개입되어 기반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그 잘한다는 AI 시스템을 접목하여 전 병원 응급실을 연결해 앰뷸런스가 수술과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뺑뺑이 돌지 않아도 되도록 해야 한다. 하루아침의 걱정이 아닐 텐데 사건이 날 때만 반짝 관심을 표하고 다시 사건은 반복되는 이 놈의 나라와 시스템이 자꾸 한심해 보이니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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