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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02. 2023

하늘과 날씨와 물음과 의미

휴대폰 알람소리에 아침에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나면 기지개를 한번 켜고 화장실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칫솔에 치약을 묻힌다. 그리고 거실을 지나 베란다 창을 빼꼼히 열고 밖을 내다본다. 날씨를 살피기 위해서다. 비가 오지는 않는지, 구름은 많이 끼어 있는지, 하늘은 우중충한지, 구름 한 점 없는지.


날씨가 궁금하다는 것은 날씨에 따라 옷을 달리 입기 위해서다. 중요한 약속이나 행사가 없는 날에는 굳이 정장차림이나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지 않아도 되니 어떤 옷을 입을 것인지를 선택하게 하는 조건에 날씨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라면 밝은 색상의 옷을 고르고 잿빛구름이 잔뜩 끼어있으면 옷색상도 밝은 색보다는 청바지와 매칭할 수 있는 색을 선택한다. 비라도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면 신발도 가죽이 아닌 로퍼 정도를 꺼내고 양말도 신발이나 바지의 색깔에 맞춰 신게 된다. 그래서 아침마다 칫솔을 입에 물고 베란다에 나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전남대 철학과 박구용 교수가 '늙어가는 존재의 미학'이라는 강의를 한 유튜브 동영상이 있는데, 강의 중에 "하늘을 의식적으로 보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매일 의식적으로 하늘을 보는 사람은 감옥에 있는 사람"이란다. 여기서 방점은 '의식적'으로다. "감옥에 있는 사람은 그 작은 창을 통해서만이 바깥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정의한다. "폐쇄된 공간, 닫힌 공간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하늘을 볼 수밖에 없다"라고 강변한다.


범인이 하늘을 보는 이유와 철학자가 보는 하늘을 보는 이유에 대한 정의가 이렇게 땅과 하늘 차이를 드러낸다. 역시 철학자의 시선에는 깊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현세적인 시선을 넘어 의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 감정을 던져 넣는다. 그래서 철학자인 듯하다.


시인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문구로 하늘을 '서시'로 끌어들여 결백성의 지고지순으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심지어 맹자는 군자삼락중에 두 번째 즐거움으로 "위로 하늘을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을 꼽았다.

또한 하늘이 종교로 들어오면 전지전능한 신의 형상으로 탈바꿈한다. 존재와 현상을 동일시하는 착각임에도 그렇다고 믿는다. 인간의 시선 속에 있는 하늘은 그렇게 수많은 색깔을 담고 있고 의미를 품고 있다. 각자 생각과 마음속에 있는 하늘이자 비유의 원천이라는 뜻이다.


물리학의 눈으로 하늘을 보면 끝없이 우주로 펼쳐진 공간의 연속일 뿐이다. 태양빛의 산란으로 푸르게 보이기도 하고 아침저녁으로 붉게 보일뿐이다. 태양빛이 없다면 하늘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저 깜깜함 그 자체로 텅 빈 공간일 뿐이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조차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이거나 행성이 항성의 빛을 받아 반사되어 보이는 현상일 뿐이다. 빛이 없으면 하늘은 의미를 상실한다. 태양이 없으면 지구 생명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과 상통한다.


중국 명나라 때 정치가였던 유기(劉基)는 "豈能盡如人意 但求無愧我心 기능진여인의 단구무괴아심 ; 어떻게 다른 사람의 뜻을 모두 헤아릴 수 있겠는가 다만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기를 구할뿐이다"라고 했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 엄격하고 절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용에 나오는 "愼獨(신독) ; 남이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말과 행동을 삼감"과도 일맥상통한다.


하늘은 이렇게 참으로 넓다. 인간 모든 심상의 원천으로 되살아난다. 아침에 보던 하늘, 지금 보는 하늘이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면 하늘을 제대로 쳐다보는 것이다. 다름을 인지한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떤 필요에 의해 하늘을 보는가? 날씨에 따라 옷을 맞춰 입기 위한 형이하학적 관점에서부터 철학을 넘어 종교의 영역으로 훅 들어온 하늘을 존재의 형태로 형상화하는 형이상학적 관점까지 아우르는 영역에서 나는 지금 어느 수준의 하늘을 보고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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