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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27. 2023

기억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

기억 중에서 제일 중요한 기억은 어떤 것일까?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추억의 기억일까? 사업에 성공한 결정적 순간의 기억일까? 부모님의 애틋한 사랑의 포옹에 대한 기억일까? 아니면 죽을 고비를 넘겼던 트라우마 같았던 생존의 기억일까? 어떤 기억일까?


하지만 제일 중요한 기억은 '바로 전 기억'이다. 1년 전, 10년 전 기억이 아니라 2초 전, 10초 전 기억이 가장 중요하다. 바로 10초 전 기억이 떠오르지 않으면 '머뭇거리게' 된다. 당혹해진다. 아니 움직일 수 없다.


기억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인가?


기억을 거창한 사유의 패턴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바로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바로 직전, 3초 전에 어떤 생각을 했느냐에 따라 행동의 방향이 결정된다. 너무도 자명하여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깨어있다는 자체는 움직인다는 것이다. 생각이 움직이고 몸이 움직인다. 매 순간 움직이게 하는 기작이 바로 기억이다. 무의식도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무의식은 습관화되어 기억의 시간 단위를 최소화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한 상태일 뿐이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기억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행동이 있을까? 단연코 없다. 조건반사처럼 근육에서 바로 반응이 오는 경우라 할지라도 근육에 기억된 반응이다. 기억 인출 행위가 바로 행동이고 움직임이다. 이 기억 인출행위에 문제가 있는 질병이 알츠하이머다. 기억을 만드는 브레인의 해마(hippocampus)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이 쌓여 뇌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퇴행성 신경 질환이다. 알츠하이머 질환을 앓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오래된 장기기억은 하는데 바로 직전의 단기기억을 못 한다. 방금 전 한 이야기 또 하고 다시 또 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기억에는 작업기억(working memory)과 일화기억(episodic memory)으로 나뉜다. 운동출력 사용을 위해 인출되는 단기 기억이 작업기억이고, 신체적 좌표기준을 만들어 자전적 self를 출현시키는 장기 기억이 일화기억이다. 일화기억은 운동출력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사람은 한순간 한 가지 행동밖에 못한다. 매 순간 행동할 때는 그 상황에 맞는 단 하나의 행동만을 하게 된다. 그 한순간을 놓치면 다음 순간의 행동을 할 수 없다. 작업기억이 붕괴되면 현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고 과거에 머물게 된다. 현재가 없으니 미래로 나아가지도 못한다. 10초 전 기억의 재생이 이만큼 중요하다. 다만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을 뿐이다.


무엇을 모르는지 되물어야 한다. 지식의 구멍이 어디에 났는지 찾아야 한다. 집합론적 사고를 통해 전체의 경계를 알고 나면 세부적 지식을 통합할 수 있지만 나무만 들여다봐서는 지식의 숲을 감히 그려낼 수 없다. 기억을 잘한다는 것은 예측의 확률을 높이는 행위다. 기억해 낼 수 있는 많은 정보량을 기본적으로 입력해서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야 추상적 사고가 되고 질문도 할 수 있다. 기본 지식을 깔고 있지 못하면 아무리 외부 환경이 변해도 무엇을 끄집어내고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생각해 낼 수 조차 없다.


지금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구멍 난 지식의 하수구를 매워 가두어 놓을 서랍장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계속 물어야 한다. 우주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고 지구의 생성을 들여다보고 그 지구표층에서 생각과 기억을 표현해 내는 인간이 무엇인지, 그중에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기억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와서 흔적을 남기는 수준이 아니다. 바위에 각자를 새기듯 새겨 넣어야 겨우 인출할 수 있는 게 기억이다.


"그거 알아봐야 사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데?"라고 물으면 "딱 이것이다"라고 답변을 하기가 애매하지만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자기만족이고 자기 위안이겠지만 그래도 아인슈타인과 보어, 디락, 하이젠베르크, 슈레딩거, 볼츠만과 같은 인류의 천재들이 밝혀놓은 물리와 양자역학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감탄도 해보고, 그 방정식 하나하나를 다시 묻고 기억에 쌓아 놓는다면 세상의 원자로 다시 돌아갈 때 홀가분하게 흩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기억하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면 행동하지 못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살아있음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발악을 하며 움직여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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