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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28. 2023

안전기준이 불안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을 할 때 제대로 했는지 못했는지를 따질 때 들이대는 것이 '기준'을 잘 지켰는지다. 더 나아가 '법'대로 했는지를 따진다. 일의 효율성을 위해 일마다 기준과 표준을 만들어 안전을 최소한으로 담보해 놓고 거기에 맞춰 일의 진행과 성과를 평가한다.


당연하다. 기준이 없으면 중구난방이 되고 통제를 할 수 없으며 안전을 담보할 수 도 없다. 그래서 기준과 규정과 법률과 법규는 중요한 잣대이자 판단기준이 된다.


그런데 이 기준이 나라마다 다르고 차이가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기준이 엄격하고 까다로우면 더 선진화된 것이고 더 안전한 것인가?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수 관련한 논란이 많은데 여기에 등장하는 세슘의 베크렐 수치를 보자. (disclaimer ; 이 글은 오염수 방수에 대한 찬반 논쟁 및 합리성에 대한 의견이 아니다. 세슘 기준이 각국마다 다른 점에 대한 것, 특히 낮게 책정하고 있는 것이 엄격하고 좋은 것인지에 대한 사견일뿐이다.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세슘(cesium, Cs)은 원자번호 55로 방사성 원소다. 세슘은 다른 분자와의 결합성이 높은 원소로 물에 잘 녹는다. 최근 후쿠시마 인근 해역에서 잡힌 물고기 우럭에서 기준치 180배를 초과한 세슘이 검출되었다고 떠들썩했다. 일본 및 한국의 식품위생법상 세슘은 1kg당 100 베크렐(Bq) 이하를 안전기준으로 정하고 있는데 해당 우럭에서는 18,000 베크렐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일본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식품 내 세슘 방사능 기준 설정의 근거는 무엇일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어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일일브리핑에서 "식품 kg당 100 베크렐 이하의 기준은 국제식품규격위원회의 1,000Bq/kg보다 10배 더 엄격한 수준"이라고 은근히 자랑하는 듯 밝혔다. "국내 방사능 최대 안전기준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방사성 물질에 대한 국민 건강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1989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는데 우리 국민이 섭취하는 식품의 10%가 방사성 세슘 370Bq/kg에 오염되었다고 가정하여 연간 방사선 노출량은 0.325 mSv로  최대 안전기준 1 mSv의 약 1/3 수준으로 산정되었다. 이 정도가 식품으로부터의 방사능 노출 관리가 충분한 수준으로 보고 당시 모든 식품을 대상으로 요오드 300Bq/kg, 세슘 370Bq/kg이하로 기준을 설정했고 이후에 2011년 일본 원전 사고를 계기로 방사능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요오드와 세슘기준을 식품 kg당 100Bq이하로 개정했다"라고 했다. 1989년 기준 설정 때보다 2011년은 원전 사고의 특수성을 고려해 우리 국민이 섭취하는 식품의 절반인 50%가 방사능에 오염되었다고 가정해 매우 보수적으로 기준을 강화했던 것이다. 


이 기준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엄격한 잣대다. 미국은 방사성 세슘 허용치 기준이 1,200Bq/kg이고 유럽 EU는 1,250Bq/kg이다. 


미국사람 및 서양사람은 한국 사람보다 방사성 물질에 더 강한 건가? 체격도 크고 하니 방사능에 견디는 내성이 더 좋은 건가 말이다. 말을 달리하면 한국사람들은 약하고 세밀하여 방사성 물질에 예민하여 방사능으로 인한 질병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는 소리인가? 그래서 세계 최강의 방사능 기준을 마련해 놓은 건가?


기준이 강하면 더 안전하고 튼튼한 방어벽이 될 수 있음은 자명하다. 그런데 잘 들여다봐야 한다. 어디에 그 기준이 적용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이 연출될 수 도 있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대비한 건축 기준이 엄격하면 티르키에 지진피해 사례에서 보듯이 기준을 잘 지킨 도시는 건물들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다. 


하지만 식품의 경우는 다른 반대 변수가 내재되어 있음을 간과하기 쉽다. 식품의 경우는 바로 안전 기준이 불안의 기준도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허용하는 기준치를 한국은 10배 더 강화했다고 해서 열 배 더 안전한 나라가 될까? 아니다 열 배 더 불안한 나라가 될 수 있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는가 말이다. 안전하자고 만들어놓은 기준이 목을 조이고 있는 형국이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 기준보다 10배 더 엄격한 기준을 만들었다고 우리가 더 안전한 먹거리를 먹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나? 이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먹어서 한국사람들은 더 건강하고 오래 사는가?


속지 말고 부화뇌동(附和雷同) 하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숫자에 넘어가서는 안된다. 숫자는 명백하고 확정적인 팩트를 전달하는 도구인지라 제시된 숫자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한반도가 원자력과 핵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곳이어서 방사선 안전 기준이 엄격하다고 하면 나름 먹히겠지만 그렇다고 쳐도 사람에게 허용되는 안전 기준치가 서로 다를 수는 없다.  기준치가 낮으면 더 엄격하고 잘하는 것이라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안전기준이 불안기준으로 작동하게 해서는 더욱더 안된다. 안전기준은 안심기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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