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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03. 2023

차가운 머리보다 뜨거운 가슴이 더 필요하다

2023년도 절반을 지나고 새로운 절반의 시작인 7월의 시작입니다. 7월의 시작을 주말로 하니 이틀을 먹고 들어간 셈입니다. 눈치채셨는지 모르지만 하루 해가 가장 길다는 하지를 지난 지 열흘이 넘었습니다.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밤의 길이가 좀 더 길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아직 본격적인 더위도 시작을 안 했기에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계절의 시간은 중천을 지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연의 시간은 이미 반을 지나도 한참을 지나 앞서가고 있습니다. 자연의 시간도 정신 차리고 살펴볼 일입니다.


지난 주말은 재충전의 시간으로 잘 보내셨겠지요. 기온이 30도를 넘나들며 폭염특보를 내놓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버틸만한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시간들로 주말을 정의하고 선택을 해서 최적의 결과물을 경험하고 내놓았을 겁니다. 선풍기 돌아가는 거실에서 속옷차림으로 주말 내내 드라마를 보았다고 해서 허송세월한 것은 분명 아닐 겁니다. 주중에 일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집에서 빈둥거리며 푸는 방법도 사람에 따라서는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 가까운 근교의 물가를 찾아 시원한 맥주 한 캔 하며 소담하다 왔다고 하면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보낸 지난 주말의 풍경은 그 사람에게 가장 최적화된 시간의 정의대로 살아냈을 것이 틀림없으니 그대로 박제시켜 놓았다고 하면 그 자체가 순간순간의 사간을 잡아놓은 그림 전시장이 될 것입니다.


주말의 기억을 모아야 주말의 시간이, 시간으로서의 존재로 정의됩니다. 어떻게 보냈든 오늘 이 시간이 의욕충만하게 되어 있다면, 그 자체로 훌륭한 시간들의 과거였음을 인정하면 됩니다.


이렇게 원기 충천한 하반기의 시작을 맞기 위해서는 달력을 들춰 앞으로 남아있는 달들에 적혀있는 사안들을 재점검해야 합니다. 일의 우선순위를 다시 한번 체크하여 일의 계층(hierarchy)을 구분해놓아야 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반드시 하고 지나가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언제가 뒤에서 구멍이 나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일이 틀어지게 됩니다. 꼼꼼히 정리하고 평가해서 범주의 서랍에 하나씩 넣어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공부하면 학창 시절, 시험을 위해 매진하던 그 공부로만 정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공부라는 개념을 정의 내려 버리면 학교 졸업과 동시에 공부도 졸업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 졸업하고 소설책 한 권 들춰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공부에 대한 개념 정의를 잘못했기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공부는 "학문이나 기술을 포함하여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모든 과정"입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새롭게 익히는 것이라고 공부를 정의하면 많은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새로움을 알아가고 익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새로운 취미, 하고 싶은 활동 등을 시작하는 것도 공부입니다. 공부의 방점은 '새로움'입니다. 내가 몰랐던 것을 접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새로움'의 시작은 차가운 머리보다 뜨거운 가슴이 더 필요합니다. 새로움의 씨앗을 뿌려놓고 언제가 그 새로움을 만나보고 싶다는 열정을 간직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움을 만났을 때 뛰는 가슴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움과의 만남이 오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하다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학교 졸업하고 대학 전공분야로 가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주변을 둘러볼 것도 없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직업이 대학 때 전공한 공부를 살리고 있는지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공계 분야를 전공해서 평생 컴퓨터를 만지고 프로그램을 짜는 친구들도 간혹 있지만 많지 않습니다.


산다는 것은 학교 다닐 때 어떤 전공분야를 공부했느냐가 그리 중요치 않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추구하는 시각의 관점에 따라 직업도 따라가고 삶 전체 방향이 결정됩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먹고살려고 하다 보니 어찌어찌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게 됐고 그것이 평생 직업이 되어 이렇게 살고 있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이런 직업인에게는 새로움에 대한 신비감이 거의 없습니다. 직업이 밥벌이로 전락을 하게 되면 새로움을 찾고 알아가는 즐거움이 없습니다. 대충 시간을 때우게 되고 대충 일을 하게 됩니다.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으니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제대로 돌아봐야 합니다. 재평가를 제대로 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배워야 하고 익혀야 하는지 눈에 들어옵니다.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면 되돌아볼 수도,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마음속에 감춰놓고 드러내지 않았던 심성을 꺼내놓을 때가 됐습니다.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 알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모르고 있는 지식, 가고 싶었지만 가보지 못했던 곳,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지 못했던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길을 나서야 합니다. 내가 달려가고 내가 찾지 않으면 그 물건 그 정보 그 사람은 영원히 만날 수 없습니다. 생각하면 가슴 뛰는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휴대폰을 들어 검색을 하고 전화를 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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