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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11. 2023

반바지 입고 출근해 보셨나요?

오늘은 어떤 옷을 골라 입고 출근을 하셨나요? 비즈니스 정장 차림이실까요? 아니면 날도 비가 내릴 듯 후덥지근하니 좀 더 캐주얼한 옷으로 갖춰 입으셨을까요? 물론 남자 직장인과 여자 직장인의 출근 옷차림을 고르는 눈썰미가 다를 겁니다. 제가 남자이니 남자들의 출근 옷 선택에 대한 단상으로 한정 지어 보겠습니다.


요즘 제가 근무하는 회사는 반바지 차림의 젊은 직원들이 여럿 보입니다. 오늘만 해도 저희 부서에 근무하는 3명의 남자직원들이 반바지를 입고 출근을 해서 아침인사를 하고 갑니다. 시원해 보이기는 합니다. 시원해 보이기는 ㅠㅠ


반바지 차림의 남자 직원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은 아직까지 색안경을 끼고 있습니다. 분명 꼰대가 맞는가 봅니다. 60년대생 80년대 학번인 전형적인 586세대여서 그럴까요? 아니면 출근 복장에 대한 개인적 시선이 아직까지 보수적이어서 그럴까요?


80~90년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586 세대만 해도 남자 직장인들은 넥타이에 정장 차림을 교복처럼 입고 출근을 했습니다. 1987년 민주화운동의 열기를 담보했던 세대로 '넥타이부대'를 거론하는 이유도 넥타이가 직장인의 대명사로 통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1990년에 교육원에 입사교육을 들어가니 교육과정 속에 '정장 차림의 옷 입는 법'도 있었습니다. 싱글정장을 입어야 하고 양복 차림에는 러닝 속옷을 입지 않고 셔츠를 입어야 하고 반드시 긴팔 셔츠여야 했습니다. 양말도 흰색은 절대 안 되고 구두와 옷 색상에 맞춰 신어야 했습니다. 옷차림뿐만 아니라 걸음걸이, 말투에 대한 비디오 촬영을 통해 행동 교정까지 실습하는 시간도 함께 있었습니다. 당시 교육원장님이 회사에서 악역을 자처하고 계셨던 분이셨는데 신입직원들이 들어오면 남직원들 넥타이를 다 들춰보십니다. 듣보잡 메이커 넥타이를 매고 양복색상과 매치도 안되면 당장 바꾸라고 혼줄을 냈습니다. 당시에는 "넥타이 바꿀 만큼 월급 많이 주나요?"라는 불만이 팽배했습니다. 회사가 추구하는 인재로, 입사 후에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하나였던 것입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기업문화가 색깔을 드러내고 딱 보면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눈치챌 정도가 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넥타이부대의 모습은 이제 눈 씻고 찾아봐야 할 정도가 된 희귀종이 된듯합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의 기억을 더듬어봐도 넥타이 맨 사람은 한 명도 보질 못했습니다. 전철을 한번 환승하면서 출근을 했으니 적어도 200~300명은 넘게 지나쳤을 텐데 말입니다.


저희 회사만 해도 그렇습니다. 여름철 3개월 동안만 노타이 차림이 허용되었다가 2019년부터 완전 복장자율화가 시행되었습니다. 여름철에 반바지 차림의 직원들을 보기 시작한때도 이때부터였습니다. 5년이나 지났음에도 아직 제 눈에는 반바지 차림의 출근이 낯설어 보입니다.

회사에서 꼰대로 명명받는 50대 직장인들에게는 아침 출근할 때 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맬 때가 마음가짐을 다잡는 시간이었습니다. 넥타이를 매며 자존심은 심장에서 꺼내 놓고 재킷을 입습니다. 전장으로 출정하는 병사의 심정이 됩니다. 그래서 넥타이를 맨다는 것은 전투복을 입는 의례와 같았습니다.


꼰대의 관점에서 반바지는 아직까지 직장의 출근 TPO(time, place, occasion)와는 맞지 않는다는 고루한 생각이 지배하고 있는가 봅니다. 반바지는 쉼, 여행과 연결된 단어이지, 일, 업무, 직장과는 매칭이 안 되는 단어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익숙함'이라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편견을 갖습니다. 직장에서의 반바지가 낯선 세대였기에 눈에 거슬려 보이는 현상일 것입니다.


옷은 자기의 내면을 겉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아무 옷이나 막 입을 것 같지만 사람마다 선호하는 색과 패턴과 차림이 다 다릅니다. 옷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옷을 통해 자기를 보여주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의 옷 입는 형태에도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 가장된 무심함)가 숨어있고 옷을 통해 자기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로 차용됩니다.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하는 젊은 직원들의 용기와 실용성에 찬사를 보냅니다. 아직까지 꼰대의 시선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조금 지나면 곧 익숙해질 겁니다. 받아들이면 됩니다. 다리털 숭숭 나있는 종아리와 툭 튀어나온 뱃살을 보이는 털털함은 반바지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꼰대들이 반바지를 거부하고 못 따라가고 못 입는 이유가 여기에 숨어있었기에 본능적으로 거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바지는 피트니스센터를 다니며 체력관리를 하는 젊은 직원들이 입을 수 있는 핏(fit)이었던 것입니다. 자기를 관리하는 자만이 반바지를 입을 수 있습니다. 자기의 체형조차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바지를 입을 자격조차 없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민폐만 끼칠 뿐입니다. 반바지를 입고 fit도 살고 멋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반바지 입고 출근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하라고 해도 못하고 계시죠? 바로 자기 자신을 자기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뱃살 가리고 다리털 가리는 긴 바지를 깔끔하게 잘 입고 출근하는 것이 만인을 도와주는 일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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