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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07. 2023

동유럽 배낭여행 중인 아들이 보내온 사진

요즘 카톡방중에 알람 종이 기다려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가족 카톡방입니다. 지금 막내 녀석이 혼자 동유럽 배낭여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한차례 씩 사진이 올라오면 잘 다니고 있구나, 먹는 것은 제대로 먹고 다니고 있구나, 멋진 곳을 잘 찾아다니고 있구나라고 생사확인 겸 사진구경을 합니다.


카톡방 문자가 기다려지는 이유는 사실 아들놈의 안전에 대한 염려가 지배적입니다. 군대도 갔다 오고 대학교3학년에 재학 중인 건장한 청년이니, 무슨 일과 맞닥치던지 해결해 나갈 것은 믿어 의심치 않으나 혼자 해외여행을 하고 있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괜한 걱정은 가끔 그 도를 넘습니다.


자식들이 부모로부터 제일 듣기 싫은 소리 중의 하나가 "차 조심해라" "물 조심해라"일 겁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의 안전을 제일 우선하나 자식들은 이 소리를 하도 많이 여러 번 들어서 잔소리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3대 독자이다 보니 어머니께서는 항상 조심해라 조심해라 소리를 달고 사셨고 늘 걱정이셨습니다. 이 소리가 왜 그렇게 듣기 싫던지요. 외출 나갈 때마다 '조심해라' 말씀을 하시니 그 말을 듣는 순간 짜증이 확 밀려오곤 했습니다.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시고 세대교체가 되어 제가 자식을 키우는 세월을 살고 있다 보니 어머니의 잔소리를 제가 또 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짜증이 되살아나 여러 번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여행을 떠날 때는 항상 한 번이라도 이 '조심해라'라는 멘트는 빠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막내아들 녀석은 지난주 수요일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들어가 슬로베니아를 거쳐 어제는 크로아티아로 넘어간다고 사진과 함께 하루의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이번주는 아드리아 서부해안을 따라 몬테네그로, 그리스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불가리아 소피아를 거쳐 이달 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돌아오는 일정입니다.

저희 가족은 유럽 여행만 10여 년 가까이 다녔습니다. 그중에 동유럽은 체코 프라하까지만 갔던지라 막내 녀석이 이번에 안 가본 동유럽 나라들만 골라 다녀오겠다고 혼자 떠난 것입니다. 막내 녀석의 동유럽 홀로 여행의 시작점인 오스트리아 비엔나도 2009년도엔가 가족여행으로 다녀온 바 있습니다. 당시 막내 녀석이 10살 정도로 초등학생 시절이 있으니 기억에 남아 있는 오스트리아의 모습이 있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는데, 보내온 사진을 보니 벨베데레 궁전과 슈테판 성당의 모습도 담겨 있는 걸 보니 기억의 회로가 작동은 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뭐 비엔나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이니 당연히 다시 갔을 것이 틀림없겠지만 말입니다. 그 당시 가족여행의 코스는 체코 프라하로 들어갔다가 버스를 타고 오스트리아로 이동해서 비엔나에서 나오는 일정이었거든요.


한 달 정도의 일정으로 여행을 떠나는 막내 녀석에게 제일 궁금했던 것은 학생신분이라 신용카드 발급이 안되는데 어떻게 긴 일정동안의 비용 처리를 할 것인지였습니다. 간단히 비자나 마스터 신용카드 한 장 잘 간직하고 있으면 소매치기 걱정도 덜 할 수 있는데 그게 안되니 현금만 쓸 수 있을 텐데, 현금을 환전하여 넣고 다니기에는 불안할 텐데라는 오지랖 넓은 걱정을 했습니다. 세상은 넓고 방법은 많다는 것을, 찾으면 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아들놈을 통해 뒤늦게 알았습니다. 트래블 월렛(travel wallet)을 신용카드 대용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한 달 일정 중에 앞에 2주일 정도의 호스텔이나 버스 편은 미리 예약을 하여 선지불 해놓고 나머지 일정은 다니면서 숙소 예약을 해나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준비를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지 누나처럼 일정을 촘촘히 짜지는 않더라고요. 지 누나도 이미 지난해 독일, 덴마크 한 달 살기, 태국 치앙마이 한 달 살기에 이어 올해에도 포르투갈 한 달 살기를 하고 왔습니다. 가고 싶을 때 가고, 배가 고프면 먹는, 단순 명료한 방법으로 움직이는 걸 보니 그 방법 또한 혼자 여행으로는 괜찮겠다 싶습니다. 그래서 그저 여행준비를 지켜만 봐왔고 떠나는 날 비상금이라도 쓰라고 500유로 환전해서 건네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나마 200유로는 지 엄마한테 남겨두고 갔습니다. 지가 알아서 쓰고 하겠답니다.


여행경비도 제가 항공권 발권해 준 것이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아들놈이 학기 내내 일주일에 이틀씩 아르바이트를 하여 모아놓았던 것을 씁니다. 나 몰래 지 엄마가 비상금으로 현금을 더 주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제가 환전해 준 돈 중 200유로로 남겨놓고 갔다고 하니 더 주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막내 녀석이 여행을 떠난 지 일주일이 되고 있는데 보내오는 사진을 보니 잘 다니고 있는 듯하여 안심이 됩니다. 슬로 베이나아에서는 계속 비가 내렸다는데 그럼에도 사진 속에 빗속의 블레드 호수 전경도 담겨있습니다. 부모의 걱정 오지랖은 괜한 근심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잘 다니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있습니다. 여행을 다니는 한 달 동안 혼자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올 겁니다. 중세 유럽에 유행하던 그랜드투어처럼 스승들이 동행하여 역사와 문화와 예술을 습득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스승의 역할을 구글이 대신하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한 달 뒤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외모로 바뀐 것이 아니라 내면의 생각을 키워 시선의 눈높이가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겠지요.


그렇잖아도 저희 부부도 이번주 목요일에는 열흘 일정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여름휴가여행을 갈 예정입니다. 휴가철 항공편 좌석 상황이 만만치 않아 당초 예정했던 일정보다 하루를 더 당겨 갑니다. 그나마 겨우 빈좌석 앉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막내 녀석과 유럽에서 합류하지는 못할 듯합니다. 이번 주말에 막내 녀석은 크로아티아를 벗어나 그리스 쪽까지 내려갈 텐데 저희 부부는 네덜란드에서 5일을 있다가 벨기에로 넘어갈 예정입니다. 유럽 지역 중에 프랑드르 지역을 아직 못 가봤는데 이번 여행 일정을 그곳으로 짰습니다. 큰 아이도 직업이 비행기를 타는 일이라 목요일 런던으로 가는지라 이번 주말부터 다음 주까지 전 가족이 유럽에 뿔뿔이 흩어져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얻고 무엇을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쓸 것인지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휴가가 돈만 쓰고 시간 죽이고,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사진 몇 장 속의 인증으로만 남아있게 된다면? 그것 또한 그리 나쁜 일은 아니겠으나 효율성을 따져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고흐와 루벤스의 그림을 만났을 때, 그래 잘 그린 그림이야 정도만 느끼고 올 것인지, 그림 속 스토리를 함께 읽고 올 것인지, 그래서 나의 안목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를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알고 봐야 보이고, 보여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 멀리 간 여행이 시간 죽이기 정도에 머물지 않고 자랑질에 머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행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듯, 가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돌아올 것인지, 호텔 예약하고 기차 예약하며 신중히 장소와 시간을 선택하듯이 골라봅니다.


아들놈도 계속 여행을 잘하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ps : 2022년 '혼자 독일 여행 떠난 딸아이가 보내온 사진'글 https://brunch.co.kr/@jollylee/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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