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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04. 2023

한여름 밤에 할 수 있는 것들

'한여름 밤(A Midsummer Night)'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요즘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 밤은 작렬하는 태양을 숨기고 바람을 살랑이게 하는 원천이다. 태양빛에 꼼짝 못 하고 널브러져 있다가 어스름 해거름이 되면 서서히 눈빛이 반짝이고 동네 공원이나마 어슬렁거리고 산책을 나간다.


움직임이 본질인 생명에게 있어, 밤은 이렇게 움직임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밤의 본질은 쉼에 있음에도 말이다. 바로 온도의 환경이 움직임의 시간을 바꿔놓는 결정적 변수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있어 밤은 도피의 공간이었고 휴식의 공간이었다. DNA에 면면히 전해져 오는 각인된 본능이다. 6억 5천만 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기 생명의 대폭발로 지구상의 생명이 환희에 차고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를 거치며 호모 사피엔스의 선조들은 육식공룡과 맹수와 같은 포식 동물을 피해 밤의 세계로 잠입해 들어간 야행성 피식자로 생명을 유지했다. 그 생명 유지의 본능이 아직도 우리 혈관을 돌아다닌다. 피식자로서의 생존 본능은 브레인의 체감각 감지 능력을 폭발적으로 발달시켰다. 특히 시각적 감각 능력은 브레인 감각 영역의 40% 정도를 차지할 만큼 넓은 부분을 할당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밤의 환경에 대한 적응 과정이 불꽃놀이와 반딧불과 하늘의 반짝이는 별에 열광하는 모드로까지 진화했다. 두려움을 환희로 전환시킬 때의 강렬한 희열이 작동해서 그렇다.


피식자였던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있어 어두운 밤에 빛나는 것은 포식자인 맹수들의 이글거리는 눈빛의 공포였다. 밤에 빛나는 것은 잡아먹힌다는 두려움의 전율이다. 깜빡이며 빛나는 눈동자는 곧 위험 신호나 진배없다. 어떻게든 그 빛나는 눈빛과 멀어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컸다.

그러다 문득 저 빛나는 것이 맹수의 눈빛이 아니고 반짝이는 반딧불이거나 맑은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었음을 알아채는 순간, 그 안도감의 희열은 환희로 작동한다. 우리가 불꽃놀이에 열광하고 밤하늘 별들의 이동을 쫓아 하늘을 주시하는 이유다. 위협의 대상이 아님을 아는 순간, 공포는 기쁨을 배가시키는 동력으로 환원된다. 더 예쁘게 보이고 더 멋지게 보인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맹수가 무서운 게 아니고 내 쪽으로 다가오는 맹수가 무서운 것이다"라고 한다. 어두운 밤에 반짝이는 맹수의 눈빛을 봤다는 것은 맹수와 마주한 절체절명의 현장이다. 반면 눈빛을 마주하지 않고 지나치는 맹수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 맹수가 피식자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배부르다는 암시이자 관심 없다는 무시의 표현이다. 이 사실을 피식자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들이 누우나 영양 무리 떼 주변을 어슬렁거려도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혹시 식량이 부족할 때를 대비해 배부른데도 사냥을 해서 저장을 하는 맹수는 하나도 없다. 배가 고프다는 것은 생명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가 필요함을 뜻한다. 맹수들은 딱 거기까지만 사냥을 한다. 더 먹어봐야 무거워져서 달리는데 지장을 받는다는 것을 역시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것이 자연의 진화가 만들어가는 공생의 원칙이다. 필요한 만큼만 얻어가는 것이다.


밤에 빛나는 위협으로부터의 도피가 가능한 것을 알아챈 호모사피엔스는 그 환희를 시각 진화의 정점인 놀이로 만들어 움직이는 빛에 열광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깜깜한 밤에 말이다.


요즘 같은 한여름의 밤은 그래서 운치를 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날들의 하루일 수 있다. 주말 밤에 심야 영화를 보러 가는 낭만도 찾을 수 있고 야간 골프를 나가 하얀 조명등 아래 날아가는 공의 궤적에 환호할 수 있으며 남한강 자전거길을 밤새 걸으며 하늘에 수놓아진 별들의 천막을 올려다보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찾아서 움직이면 낮에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밤에 할 수 있는 일들로 치환을 할 수 있다. 시간을 바꾸면 시선의 방향도 달라진다. 밤이면 아무것도 안보일 것 같았지만 새로운 감각들이 되살아난다. 낮에 못 듣던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낮에 안 보이던 부엉이 사냥모습도 볼 수 있다.


다가오는 주말의 한여름 밤은 그래서 더욱 가슴 설레는 기다림으로 다가온다. 에어컨 틀지 않고 창문만 열어놓을 수 있다면 뒷산에서 내려오는 선선한 밤의 정령을 방으로 불러들일 수 도 있다. 책 한 권 읽다가 손에 쥐고 그대로 잠을 청할 수 있고, 땀샘을 오므라들게 하는 공포영화 한 편을 네플릭스로 감상할 여유를 누릴 수 도 있다. 어디 깊은 계곡이라도 피서를 갔다면 반짝이는 반딧불을 찾아 나서 볼 일이며 철썩이는 파도가 발밑에 있는 곳에 갔다면 랜턴 불빛에 해루질 한번 나가 볼 일이다. 한여름 밤의 운치를 즐길 수 있는 날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즐길 줄 아는 자만이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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