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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09. 2023

소중하고 귀한 선물

어제 퇴근길, 아파트 현관에 도착하니 문 앞에 택배 상자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제주산 애플망고' 한 상자입니다. 제가 주문한 것은 아니라 "와이프가 주문했나?"싶어 집안으로 들고 들어왔습니다. 마침 아들 녀석도 동유럽 배낭여행 중이고 와이프도 저녁 약속이 있어 늦게 온다고 하여 일단 아무 생각 없이 운동을 하러 골프연습장에 내려갑니다.


그리고 한 시간 운동하고 와서 땀을 식히고 저녁식사준비를 합니다. 와이프가 없을 때는 제가 혼자 잘 찾아 먹습니다. 어제는 가볍게 비빔국수를 해 먹을까 하다가 식탁 위에 밥이 한 그릇 남겨져 있기에 볶음밥을 해 먹기로 합니다. 냄비에 묵은 김치를 잘게 썰어 깔고 소시지와 햄도 조금 넣습니다. 풍미를 위해 고추장도 조금 넣고 참기름도 약간 두릅니다. 한 공기 약간 안 되는 밥의 양보다 깔린 김치와 양념이 더 많아 짜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만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고 냄비에 깔린 김치가 참기름에 살짝 볶아지고 약간 타는 냄새가 날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 뚜껑을 열고 잘 섞어가며 마무리를 하고 불을 끕니다. 한 끼 간단히 해결하는 데는 최고의 방법이라 간혹 제가 잘 써먹는 레시피입니다.


간단히 저녁식사를 혼자 해결하는 와중에 식탁 한편에 올려져 있는 애플망고 상자에 계속 눈이 갔습니다만 제가 주문한 것이 아닌듯하여 열어볼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설거지를 하고 냉장고를 열어 자두 1개를 씻어 입가심으로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8시 조금 넘어 피트니스 센터로 다시 운동을 하러 갔습니다. 저녁식사 후에 1시간 반정도 운동하는 패턴으로 바꾼 것이 지난 5월부터였는데 계속 이 루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체중은 계속 66kg을 유지하며 잘 버티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저녁에도 더운 때에는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오면 개운합니다.


그렇게 운동을 마치고 10시가 넘어 집에 왔더니 와이프도 집에 와 있습니다. "택배로 애플망고 주문했어? 주방 식탁에 올려놨는데"라고 물으니 자기가 주문한 거 아니랍니다. "오잉? 그럼 뭐지? 잘못 왔나?"

택배박스에 부착된 송장에는 애플망고를 보낸 농장의 주소가 적혀 있습니다. 농장 사장님 이름도 전혀 생소했습니다. 뜯어볼까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휴대폰 알림 문자가 띵동 하고 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애플망고 받으셨어요?"라는 문자입니다. 애플망고를 보낸 장본인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제주로 생활 근거지를 올봄에 옮기신 분이십니다. 은퇴하고 내려가신 것은 아니고 경제활동 자체를 제주를 무대로 하시러 내려가신 분입니다.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도 못하셨을 텐데 이렇게 제철 과일이라고 손수 애플망고를 택배로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보내신다고 문자로라도 알려주시지 무작정 그냥 먼저 보내셔서 당황했지만 그래도 참 반갑고 가슴 따뜻한 사람이 주변에 있어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어제 애플망고를 보내주신 분을 포함하여 제 주변에는 정말 저를 아끼고 사랑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심을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제주에서 감귤 농장하시는 또 다른 지인분께서도 때마다 천혜향과 한라봉, 레드향을 보내주십니다. 품종들의 수확시기가 모두 조금씩 달라 다 때가 있다고 하시며 올려 보내주십니다. 그렇다고 제가 뭐 특별히 해드리거나 신경 써 드린 것도 없습니다. 비즈니스로 엮여 뇌물성 상납으로 받을 관계도 아닙니다. 그러기에 받을 때마다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제가 이런 귀한 선물을 받아도 되나 하고 말입니다. 때 되면 제가 먼저 주문해야지 하다가도 택배 상자를 받아 들고서야 주문을 먼저 못했음을 후회하곤 합니다.


이분들 뿐만이 아닙니다. 강원도 홍천에 계시는 지인분께서도 고구마며 양파며 농사지은 것을 수확하실 때마다 한 상자씩 보내주십니다. 2년 전 제가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그 사연을 구구절절이 글로 알렸었는데 그 당시부터 건강 챙기라고 하시면서 보내주셨습니다. 분당에서 한의원을 하시는 원장님께서는 암 수술 전에 기초 체력을 길러놔야 한다며 보약을 한 달 치 직접 보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덕분에 수술한 지 1년 반의 시간이 지나고 있지만 호르몬제도 모두 끊고 잘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또 한 분은 일 년에 한두 차례 씩 꿀을 보내주십니다. 친누나가 꿀을 재배하는데 자기가 팔아주는 거라며 핑계를 대고는 봄철 아카시아꿀 수확할 때 한 병을 챙겨 보내주십니다. 작년에는 강화도 논에서 쌀을 수확했다며 쌀 한 포대를 직접 들고 찾아온 예쁜 후배도 있습니다.


한번 정도 선심 쓰듯이 보내준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관심인데, 수확철이 되면 주기적으로 이렇게 보내준다는 것은 큰 정성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 외삼촌께서는 교직에서 은퇴하시고 주말농장에 채소 심는 것을 재미로 여기고 계신데 여름에는 쑥쑥 크는 상추며 오이들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배낭 한가득 담아 가지고 직접 사무실로 불쑥 찾아오시기도 하셔서 당혹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피로 맺어진 혈육관계니 그럴 수 도 있겠다 싶지만 제가 그 정성만큼 해드렸는지를 되돌아보면 전혀 그렇지 못해 부끄러울 뿐입니다.

어제 애플망고를 보내주신 분은 본인이 직접 농장을 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그 양반도 한 다리 건너 아는 분이 하는 애플망고 농장을 통해 보내신 것입니다. 그 귀한 정성의 택배상자를 열어봤습니다. 달콤한 향이 코를 찌를 듯 전해집니다. 보통 대형 마트에서 사는 수입산 노란 망고는 딸 때 아예 초록색 망고를 수확합니다. 바다 건너오는 동안 노랗게 익는 겁니다. 망고가 후숙 과일이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 보니 수입산 망고는 현지에서 먹을 때와는 당도 차이가 조금 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주에서 직접 재배된 애플망고는 나무에서 어느 정도 완숙된 상태에서 수확을 하고 이를 따서 택배로 보내주기에, 그 맛이 동남아시아 현지에서 먹는 맛의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덕분에 어제는 8시 이후에는 물만 마신다는 금기를 깨고 애플망고 하나를 홀라당 먹었습니다. 애플망고 하나의 포도당은 내일 조깅할 에너지로 비축했습니다. 


애플 망고 상자 1개로 인하여 제 주변에 계신 수많은 좋은 분들의 얼굴이 오버랩됩니다. 여러분들로 인하여 오늘의 제가 존재하고 현재의 제 상태도 만들어졌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여러분의 그 신경 씀에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으면 나서고 해내도록 하겠습니다. 받지만 말고 드릴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ps : 혹시 애플망고 맛이 궁금하신 분을 위해 구입처 알려드립니다.

      제주새벽농장 // 애플망고 직거래 낮12~저녁 7시 주문 가능  // 010-9418-3241 /// 010-5066-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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