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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01. 2023

식사시간 '1시간 반' 제한, 합당한가?

나는 웬만해서는 식당의 맛이나 서비스, 가격등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번 가서 마음에 안 들면 다시는 안 간다. 한 끼 식사비 버렸다고 생각하고 만다. 그것으로 족하다. 굳이 얼굴 붉히며 신경질 낼 필요도 없다.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와 기분이 상할지라도 "사람이 만드는 일인데 그럴 수 있지" 정도로 앙해를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 굳이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식당을 차렸을 때는 나름 맛에 대한 자부심이 있거나 프랜차이즈를 통한 대중적 맛을 내기에 가능했기에 했을 것이다. 맛이란 놈은 너무나 독특하고 개성이 강한 녀석이라 개인적 맛 취향에 따라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의 보편성을 추구하여 여러 사람의 입맛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맛의 방향이 흘러간다. 그런 측면에서 어제 갔던 삼각지 용리단길에 있는 샤부샤부집은 나름 맛으로는 훌륭한 식당이었다.


사실 샤부샤부에 주방장의 손맛이 크게 있을 리 없다. 고기의 질과 육수, 야채의 신선도, 소스의 다양함이 샤부샤부의 맛을 좌우한다. 주방에서 끓여서 식탁으로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손님이 직접 고기 넣고 야채 넣고 해서 먹어야 한다. 그것도 주방장의 손맛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으나 샤부샤부의 맛은 전국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어제 갔던 삼각지 샤부샤부집은 훌륭한 건물 외관과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로는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식당이다. 음식 맛과 여러 커트러리도 신경 써서 준비한 괜찮은 집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좋은 점을 한 순간에 모두 잃어버리는 영업정책을 폈다. 좋은 건물에 주차가 안 되는 것도 일면 찝찝하기는 했으나 주변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되니 그럴 수 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문제는 영업 정책이다. 바로 식사시간을 "1시간 반"으로 제한하고 있었다.

어제 약속 장소는, 만나기로 한 지인 중 한 명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괜찮다는 식당을 예약을 한 것이다. 테이블에 앉자 잘 차려입은 종업원이 와서 처음 왔는지를 묻고 여러 이용방법에 대한 설명을 조목조목 열심히 잘한다. 주문은 테이블에 비치된 태블릿을 통해 한다. 요즘 문을 여는 식당들이 인건비 아끼느라 태블릿 주문 형태를 많이 사용하니 그런가 보다 한다. 종업원은 우리 같은 꼰대들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것에 대비해서 주문과정에 문제가 있어 종업원 호출을 하시면 와서 도와드리겠다는 친절한 멘트도 잊지 않는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마지막 멘트가 일행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손님! 저희 식당은 식사시간을 1시간 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엥?? 식사시간이 한정되어 있다고요?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다소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테이블도 30여개나 있고 룸도 있는 이렇게 큰 식당에서?


식사시간을 제한하는 영업정책을 펴는 식당들이 간혹 있긴 했다. 몇몇 호텔 뷔페식당들이 그랬고 고급 오마카세 식당들 중에도 있으며 박리다매 정책을 펴는 대중적 뷔페메뉴 식당들 중에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간제한 식당들의 정책은 나름 일리 있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주방장이 손님과 1대 1로 서비스를 하거나 코스별로 메뉴가 나오는 순서가 정해져 있어서 시간제한을 해도 식사를 하는데 쫓기듯 먹지 않는다. 박리다매 정책의 시간제한 식당은 시간을 제한하는 대신 식사값이 엄청나게 싸기 때문에 별 불만이 없다.


그런데 어제 간 샤부샤부 식당은 주방장이 끓여서 가져다주는 메뉴도 아니고 손님이 직접 육수 끓여서 고기 넣고 해서 먹어야 한다. 그렇다고 가격이 싸냐 그것도 아니다. 흑돼지 목살 샤부샤부가 22,000원이고 프라임 앵거스 살치살은 29,000원이다. 아시겠지만 샤부샤부는 끓는 육수에 데쳐먹는 것이라 고기를 최대한 얇게 슬라이스 한다. 1등급 고기라고 하지만 가격이 싸지는 않다. 그렇다고 양이 많냐 그것도 아니라는 것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음식재료의 질과 가격에 대해서는 그런가 보다 하는데 문제는 '시간제한'이다. 1시간 반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계속 무언가에 쫓기듯 한다. 빨리빨리 육수에 야채 넣고 고기 넣고 휘휘 저어서 그냥 건져먹는 듯한다. 술도 한잔 주문하는데 소주에 맥주 마시고 하면 늦어질 것 같아 하이볼을 한잔씩 주문한다. 이거 원 식사를 하는 건지, 어디 끌려가기 전 최후의 만찬을 하는 건지 모르게 시간에 끌려가고 있었다. 대화를 하다가도 "몇 분 남았어?" 물어보고 시계를 본다. 대화조차 중간중간 끊긴다. 식사를 하는 게 아니고 시간의 노예로 전락한 기분이다.


그럭저럭 먹고 있는데 종업원이 다가와 시간이 다 됐음을 알린다. "손님! 식사시간이 한 시간 반인데 지금 10분 남았습니다. 다음 예약 손님을 위해 마무리하셔야 합니다." 식당 문 닫을 시간도 아닌 저녁 8시에 말이다. 테이블 인덕션에는 샤부샤부 육수에 따라 나오는 야끼소바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용리단길 상권 활성화를 위해 식당마다 식사시간을 제한하여 테이블 턴오버를 높이는 전략인가? 1차에서 끝내지 말고 2차 가서 또 먹고 마시라는 그런 고단수 전술이 숨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시간 많이 소비하는 술은 조금 적당히 마시라는 높은 배려심의 발로인가?


식사시간 '1시간 반'

사람마다 이 시간을 받아들이는 느낌이 분명 다를 수 있다. 우리 같은 꼰대들이야 식당에 가서 모이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고 떠들고 소주에 맥주에 섞어 마시기도 하느라고 기본 2-3시간 이상은 퍼질러 앉아있기 십상일 수 있다. 하지만 신세대 MZ들은 깔끔하게 맥주 한두 잔 정도에 식사만 딱 하고 나오니 충분한 식사시간이 될 수 도 있다. 식당에서 이런 점 감안 안 하고 식사시간을 제한했을 리 만무하다. 바로 식당 손님에 대한 타겟팅을 젊은 사람들에게 맞췄을게 틀림없다. 식사시간 긴 꼰대들은 오지 말라는 거다.


식사를 빨리해야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다. 남자들이 뒤돌아보기도 싫다는 군대 훈련소 짭밥 배식할 때와 직원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할 때다. 이때는 무엇을 먹는다는데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고 그저 빨리 끼니를 때우고 남는 시간을 쉬고 싶기 때문이다. 맛보다는 쉬는 시간에 방점을 둔다. 그런데 자기 돈 내고 자기가 끓여서 먹는데 시간제한을 받아가며 초조히 시계를 쳐다보며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기 짝이 없다. 꼰대의 시각일 수 있으니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럼에도 나는 이 시간제한 식당의 정책을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두 번 다시 갈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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