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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04. 2023

숫자에 민감하자

인간은 세상의 단위 기준을 '수(數 , number)'로 표기하는 기발한 방법을 만들었다. 이 '수'로 표시하는 기준이 없다면 세상은 혼돈 그 자체일 것이다. 우리가 매일 체감하는 온도가 그렇고, 잠을 깨자마자 쳐다보는 시계가 그렇다. 심각하게 내려다보는 체중계의 숫자가 그렇고 학교 성적표에 표기되는 숫자에 좌절하기도 하고 환희하기도 한다. 숫자가 뭐길래? ( disclaimer : 수(number)와 숫자(numeral)의 개념은 다르지만 그냥 뭉뚱그려 왔다 갔다 표현해도 양해해 주길 바란다. 그냥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되는 모든 기준 단위라고 포괄적으로 적용해 본다)


'수'에는 엄밀함이 있다. 1+1은 반드시 2가 되어야 한다. 1+1이 2 일 수 도 있고 1일 수 도 있다면 그것은 인문의 상상력이 만든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수의 범주에 들어있지 않으면, 수로 표시하지 못하면 실재가 아니라는 거다.


3차원 공간을 사는 인간은 아니 우주는 x, y, z 좌표를 통해 위치를 표시할 수 있다. GPS를 활용하여 목적지를 찾아가는 자동차 내비게이션과 구글맵과 네이버나 다음 지도도 모두 이 좌표계로 표시되는 숫자로 만들어지는 기계다. 반도체 컴퓨터는 심지어 0과 1의 숫자 두 개만으로 chat GPT와 같은 최첨단 인공지능을 만들어낸다. 양자계산기가 등장하여 중첩과 터널링의 개념이 등장하지만 역시 결과치는 숫자로 표시할 수 있다.


고대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70년경 "모든 것은 수다 (All is number)"라고 설파했으니 우주의 작동 원리를 '수'라는 시각적 표현으로 드러낸 천기누설을 한 셈이다.


이 '수'의 단위 기준은 세상 어디에서나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기준이 다르거나 다른 단위로 착각을 하면 사건 사고의 혼돈 속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지난 1999년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화성에 보낸 무인 기후탐사선이 화성에 도착 직후 폭발해 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탐사선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사가 탐사선의 제원을 야드 표시 단위로 작성했는데 NASA 조종팀에서 이를 미터 단위로 착각한 탓이다. 조종팀은 훨씬 낮은 궤도에 탐사선을 진입시킴으로써 대기권과의 마찰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단위는 약속이다. 특히 과학에서 거의 유일한 소통 수단이 바로 '수'인 것이다. 로켓이 날아가는 속도와 거리를 숫자로 표시하지 못하고 인간의 느낌(感)으로만 실행한다면 판판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현대 과학도 이 숫자의 바탕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과학에 '대충'은 있을 수 없다. 심지어 숫자로 표시할 수 없으면 과학이 아니라고 단언해도 된다.

이 숫자가 인문학에 들어와도 마찬가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역사를 공부할 때 주요 키워드가 바로 연도와 사람이름에 있다. 이 연도와 사람 이름의 연관성이 있어야 그다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헷갈리면 통일신라시대에 세종대왕을 언급하는 것과 진배없다. 역사에 있어서도 숫자를 잊으면 사실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인문이든 과학이든 결정적 숫자는 반드시 외워서 기억해야 한다. 3초 내에 끄집어낼 수 없는 숫자는 내 것이 아니다. 정확한 연도의 숫자를 알고 있어야 다른 지식들을 연결할 수 있다. 1392년에 조선이 건국되었고 100년 뒤인 1492년에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디뎠으며 1592년에는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연도로 연결해야 세계사의 흐름이 보이고 그다음에 세세한 사건과 사실들이 그 안에서 힘을 발휘한다. 피타고라스가 말한 '모든 것은 수다'라는 문장은 인문학을 관통하는 명쾌한 철퇴가 아닐 수 없다.


숫자는 존재를 규정지는 기준이다. 개인적 존재조차도 숫자로 표기한다. 바로 나이다. 몇 년을 살아왔는지, 심지어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 것인지조차 숫자로 가늠한다. 숫자를 잊으면 존재 자체조차 잊게 된다. 아니 당장 내가 탄 엘리베이터를 몇 층에서 세워야 하는지 조차 숫자로 확인해야 한다. 더구나 은행 잔고조차 숫자로 표시되어 있을 뿐이다. 통장에 찍힌 숫자의 크기가 부의 크기를 말한다. 속물의 존재에게도 숫자의 중요함은 더 이상 비교할 필요조차 없다.


숫자를 외우지 않아도 되는 체계로 문명이 점점 바뀌고 있지만 그 뒷면에는 그 이상의 숫자가 돌아가고 있음에도 보이지 않을 뿐이다. 스마트 폰 시대에 당장 외워 말로 뱉어낼 수 있는 전화번호가 서너 개도 안되고 있음을 직감한다. 심지어 가족들의 전화번호조차 외우지 못한다. 사용하지 않아 잊히는, 퇴화의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숫자에 민감해지자. 통장 잔고 숫자에도 예민할 필요가 있지만 결정적 숫자, 정확한 숫자를 암기하고 기억하자. 숫자가 흔들리면 다 흔들린다. 역사가 흔들리고 주식 계좌가 흔들린다. 정신 차리고 숫자를 붙잡을 때 숫자는 확장성을 갖는다. 단위가 늘어나고 사실이 달라붙는다. 통장은 숫자가 불어나고 지식은 좀 더 확장된다. 숫자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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