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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10. 2023

술 인심, 담배 인심

한국사람 하면 정(情)이고 인심(人心)이다. 정을 담을 수 있는 영어 단어는 애매하다. heart라고 하기도 그렇고 affection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친근한 마음이라고 명명하기도 애매하다. 그렇지만 한국사람은 들으면 안다. 정은 그냥 정이라 정의할 수밖에 없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냐고 하겠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말이 되는 것 같은데라고 인정해 주는 것이 정이다.


인심(人心 ; human feeing) 또한 마찬가지다. "타인의 처지를 헤아려주고 도와주는 마음"이라는 사전적 정의보다는 그냥 "사람의 마음"이 더 와닿는다. "인심 쓰다"는 "타인을 후하게 대접하다"라는 뜻이다. 인심에는 조건이 붙지 않는다. 내가 이만큼 주었으니 너도 그만큼 내놔가 아니고 그냥 가진 것을 나눠주는 행위다. 그렇다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인간 본성 밑바탕에 있는 선한 영향력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반동이다.


한국사람들은 정과 인심 같은 인간본성을 타고난 듯하다. 요즘은 아닌가? 뭉뚱그려 범주화하면 여러 오류가 벌어지고 예외도 등장하겠지만 일단은 그렇다고 범주화하고 들여다보자.


특히 술자리에서의 술 인심과 담배 피우는 사람들의 담배인심은 거의 인심의 끝판왕이다. 처음 만난 사람일수록 더 많이 더 자주 권한다. 심지어 길을 가다가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담배 한 대 빌릴 수 있느냐고 하면 경계심없이 담배를 건네주고 친절히 성냥불도 붙여주곤 했다. 예전에는 그랬다는 소리다. 그 시절이 뭐 20년 정도 지났으려나? 아직도 그런가요? 요즘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긴 하다.


담배를 전혀 피워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사실 알 길이 없다. 평생 담배연기를 목구멍으로 넘겨 본 적이 없다. 아! 티르키에 물담배는 깊게 들이마셔야 연기가 올라오기에 한번 해본 경험은 있지만 그때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다. 술집에서도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 뻐끔담배를 피워본 적은 있지만 그 당시에도 그냥 술김에 입에 물고 있는 장식품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담배를 피워보려고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다들 군대 가서 담배를 배웠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도 대학교 1학년때 문무대 입소를 하여 일주일간 군사훈련을 받던 때 쉬는 시간에 옆에 동료들의 권유로 담배를 입에 물었던 적이 있다. 다들 그렇지만 그렇게 담배를 시작한단다. 그렇지만 그때에도 담배연기를 목구멍으로 넘겨보지 못했다. 훈련으로 힘들기도 해서 그랬겠지만 입술도 갈라지고 해서 담배는 체질이 아닌가 보다 하고 안 피웠다. 그렇다고 담배 연기가 싫은 것은 아니다. 지금도 주변에서 가끔 담배 피우러 나가면 따라가서 같이 서 있는데 담배 연기가 역겹지는 않다. 그냥 나에게 담배는 위안과 평안을 주는 도구가 아닐 뿐이다.


요즘은 액상담배다 전자담배다 하여 예전처럼 담배인심을 보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담배값도 만만치 않게 오른 모양이다.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한 값에 4,500원이나 한다. 한 값에 20개가 들어있으면 한 개비에 225원이나 한다는 소리다. 친한 사람이 아니면 담배 한 대 빌리자고 쉽게 말이 안 떨어질 정도의 가격인 듯하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담배의 종류는 수십 가지가 넘는 모양이다. 각자 자기가 선호하는 담배종류가 있다 보니 가려서 피우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담배를 권하지도 않고 빌려 피지도 않는 모양이다.


예전에 입만 가지고 다니며 담배를 얻어 피던 사람도 있었고 버스 정류장 휴지통을 뒤져 중간정도 태우고 버린 담배꽁초를 주워 피던 사람도 눈에 띄었었다. 담배 인심도 담배 따라 많이 변해온 듯하다.

술 인심도 마찬가지다. 요즘이야 격식 있고 프라이버시 때문에 칸막이가 있는 식당과 술집들도 많지만 예전 시장 골목에 있는 국밥집에서 옆 테이블과 등허리 기대고 앉아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던 분위기에서 술 인심은 하늘을 찔렀다. 술 병이 몇 병 비워지면 어느새 옆테이블을 같이 붙여 동석이 되어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테이블을 합칠 정도는 아니지만 화장실 오가느라 뒷 테이블에 앉은 사람의 등을 몇 번 스치고 지나가면 미안하다고 술 한잔 권하는 것이 술집의 인심이었다.


그러던 것이 기업들의 회식문화가 바뀌고 드디어 코로나 팬데믹이 덮치고 지나가면서 술잔 돌리는 행위는 자해행위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술을 마시되, 자기 술잔을 고수하는 분위기로 바뀌었고 폭탄주를 제조해서 돌려도 어느 것이 누구의 잔인지 확실히 구분할 수 있어야 제조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뇌관의 비율을 아무리 잘 맞춰도 술잔의 소유주를 헷갈리면 폭탄주 제조자로서는 낙제자가 되어버려 다시는 그 사람에게 폭탄주 제조를 맡기지 않는다.


술 권하는 문화가 사라지고 나서 술 인심도 사라진 듯하다. 자기 주량껏 마시는 분위기로 완전히 바뀌었다. 회식 때 건배하고 잔을 그냥 내려놨다고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다. 아직도 분위기 파악 못하고 '파도타기' '고스톱순서로 마시기' '충성주 마시기' 뭐 이딴 행위를 했다가는 온갖 비난과 왕따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제야 술을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를 알아챈듯하다. 술을 마시고 기분 좋음과 고주망태의 경계가 참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올바른 방향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나 때는 말이야"의 꼰대적 시각으로 술과 담배의 인심을 들여다봤지만 인심도 취사선택해야 하는 결정의 문제다. 어떤 현상에 변화가 있다는 것은 그렇게 진화할 수밖에 없는 어떤 조건들이 있다는 뜻이다. 담배 인심은 형태가 다양화되고 값도 올랐다는 변수가 작동했고 술 인심은 간염이나 코로나 같은 전염병으로부터의 회피와 성희롱 같은 사회적 조심스러움의 발동으로 인하여 축소되고 있다. 


사실 술과 담배는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이나 기호품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어떻게 보면 사람을 병들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나쁜 품목들이다. 한국사람들이 술과 담배 인심이 좋은 내면에는 상대방을 병들게 하고 죽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술 마시고 담배 피워서 혼자 병들고 죽는 것은 억울하니 경쟁자들에게 빨리빨리 권해서 없애려고 하는 교묘한 심리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해 본다.


이제 웬만하면 천덕꾸러기 신세를 받는 술과 담배는 끊어 보심이 어떠신가요? 못할 것을 알면서도 한번 던져 봅니다. 아니 최소한으로 줄여보도록 노력이라도 해보자고요. 왜? 그 좋은 걸 끊어! 특히 술을 끊는다는 것은 어림없을걸? 에이 그래도 줄여봅시다. 안될걸요. 에이 갈팡질팡. 나도 모르겠다. 일단 소주 한 병 시켜서 마시면서 다시 이야기해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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