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May 20. 2020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며칠 동안 소나기도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다가 어제 오후부터 하늘이 맑아졌습니다. 오늘 아침 기온은 조금 쌀쌀하다 싶을 정도로 공기가 차가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침 조깅을 하는 내내 추워서 평소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망우리공원을 조깅하면서 보니 아카시아 꽃들이 떨어져 흰 눈처럼 보도 위에 쌓여있습니다. 지난 며칠 비바람에 지친 꽃잎들이 대지로 내려와 있습니다. 아침마다 뛰면서도 호흡에 정신이 팔려, 발밑에 구르는 꽃잎조차 내려다볼 여유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꽃의 본질은 나뭇가지에 피어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고 알아볼 수 있는데 그 본질을 벗어난 대지에 있다는 것에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입니다. 대지인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도 본질인데 말입니다. 생명 어느 한 시간 조차 본질이 아닌 때가 없는데 바닥을 구르는 꽃잎은 생명이 졌다고 무시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화사하고 화창함 또한 본질이 표현되는 한 부분이고 산화되어 갈색으로 변한 아카시아 꽃잎 또한 꽃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때에 따라 필요한 것이 적당이 충족되어야 세상 만물은 원활히 작동을 합니다. 한쪽에 무리가 오면 반드시 다른 쪽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에너지 보존법칙은 우주만물에 반드시 적용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균형, 대칭을 위한 행위는 자연의 섭리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일상이며 보편입니다. 항상 그곳에 그렇게 존재하는 것, 우주의 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 평범하다는 의미는 무얼까요? 일상적이고 보편적이다는 말은 어떤 경우에 적용하는 용어일까요? 우리는 단어에 대한 공통된 합일에 의해 뜻을 공유합니다. 이것을 이것이라고 정의해놓고 모두 이것을 이것이라고 생각하게 주입하여 같은 의미임을 생각게 하는 것이죠. 바로 학습을 통해 습득하게 하여 사회가 구성되고 혼란 없이 지내도록 하는 근본이 되게 합니다.


때론 같은 단어를 놓고도 생각하고 해석하는 차이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사회가 제대로 학습되지 않고 공동의 선을 위해 사회가 제대로 가고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여 용광로처럼 갈등을 녹여내는 것도 사회가 해내야 할 일입니다. 사회 구성원 숫자만큼이나 세상은 어렵고 융화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자연현상 중의 비 내림은 특별함보다는 빈도수가 낮은 정도여서 일상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맞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같은 상황에서도 관점에 따라 다양한 표현을 통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사람들의 눈높이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도 본류가 아닌 지류의 일에 발을 담그는 일은 신선한 전환이 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상상만으로도 가능합니다. 브레인은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하고 최적의 선택을 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입니다.


쫓기듯 사는 일상에  간단한 관점의 전환만으로도 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하고 예상치 못한 질문과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지류로 들어서는 일에는 항상 가벼운 흥분이 있습니다. 긴장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듯합니다. 지류에 발을 담그는 일은 본류를 더 잘하기 위함입니다. 주객이 전도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하이브리드가 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목표가 분명하면 본류를 놓칠 일은 없습니다. 지류를 본류에 편입시킬 자신이 있는지, 아니면 본류를 더욱 강화하는 데 있어 지류는 단지 양념이자 자극 정도로 활용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향후 삶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지만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종합하면 그나마 미래를 예측하여 확률에 가장 가까운 답을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장점입니다. 이 예측으로 인해 생존의 확률을 높여왔기 때문에 DNA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크리스퍼라는 유전자가위를 통해 형질을 변경하는 세대를 살고 있기도 합니다만 말입니다.

세상의 큰 그림에서 인간 각자의 삶의 본류와 지류는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지 그 안에서 어떻게 어울려 살아갈 것인지 찾아야겠습니다. 그나마 우리 세대까지는 감정과 감성이 없는 기계적 계산만이 확실한 결과물로 등장하고 그 바탕 위에 감정을 덧입은 인공지능이 등장하기까지는 시간적 거리가 있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경계면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지고 어떤 본류에 몸을 담가야 할까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어렵고 힘든 질문이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묻고 던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너는 어떻게 될 것 같은데?"라고 묻는다면 나도 아직 계속 묻고 있다고 밖에 답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계속 물어야겠지요. 아인슈타인도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으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백수의 하루, 스케줄 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