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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04. 2023

기억이 없으면 울지도 못한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까운 친척의 부고소식보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죽었다는 사실이 더 슬프다. 바로 기억의 차이다.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는 친척과의 기억은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지만 집에 있는 강아지야 일상으로 끼고 산다. 삼시세끼 밥을 같이 먹고 있으니 쌓인 기억은 차고 넘친다. 젖먹이 때 데려오면서부터 거실을 돌아다니며 똥 싸는 걸 따라다니며 치우던 기억, 이빨 나는 간지러움 때문에 온갖 가구 모서리를 갈아놓는  것을 막고자 포장용 테이프를 모서리마다 붙이던 기억도 그렇고, 술 먹고 늦게 그것도 몰래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거실 불도 못 켜고 도둑걸음을 걸을 때 꼬리 치며 달려드는 녀석의 모습까지 선하게 떠오른다. 기억이다.


기억이 있어야만 슬픔으로 연결된다. 그때서야 눈물이 난다. 기억이 없으면 울 수 조차 없고 웃을 수 조차 없다.


"영화나 감동의 드라마를 볼 때도 우는데? 심지어 가요를 듣다 보면 다 내 얘기 같아 더 눈물이 나기도 하는데?"라고 반문을 할지 모르지만 그 영화나 드라마, 음악조차 사실은 기억의 한 곳을 건드렸기에 그렇다.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서 기억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슬픈 사연이 그렇고 실연의 아픔이 그럴 것이다. 살면서 그 정도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감정이입이 되는 자체가 바로 기억의 들춰냄이고 기억의 합일이고 재생이며 기억의 재조합이다. 그것을 감정이라 한다.


기억은 떠올리지 않으면 사라진다. 불현듯 떠오를 수 도 있으나 나이가 들수록 그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희미해진다. 기억의 가소성이다. 가소성(plasticity)은 생명의 본질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서서히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그것이 생명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 변하지 않고 바뀌지 않으면 생명이 아니다. 기억도 그 이치를 한치도 벗어날 수 없다.


기억을 놓치거나 잃지 않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심지어 보조 도구도 필요하다. 수첩에 적어놓거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라도 남겨놓아야 한다. 아니면 문신을 새겨서라도 기억의 단초를 잡고 있어야 한다.


기억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무서운 말이다.

나에게 지금 의미 있는 것들은 모두 나의 기억 속에서만 의미를 갖고 작동하기 때문이다. 나의 기억이 당신의 기억과 같을 수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 기억이 다르고 경험이 다른데 당연하다. '비슷할 것이다'라는 것도 범주화시킨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각자의 기억은 각자의 기억으로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 기억 중에서 인연의 실로 연결된 몇몇의 사건들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 공유하고 있는 인연의 실타래가 더 많고 견고해진다. 그래서 만남이 소중하고 대화가 중요한 것이다. 어떻게든 기억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많이 보고 많이 기억하는 자만이 타인의 기억 속에도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다. 기억의 가소성에 밀려 잊히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휴대폰에서 지워지는 전화번호가 되거나 차단되는 번호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기억에서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전자기기가 그 사람의 아바타인 현대사회에서 기계 속에서 사라지면 사람도 같이 지워진다. 내가 스스로 사라지는 것보다 남들로부터 잊히는 것이 더 초라하다.


잊히지 않고 기억으로 남는 것. 그래서 같이 웃고 울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산다는 기억으로 신화를 만든다. 사랑이라고 그러고 우정이라고 그런다. 기억을 지켜낼 일이고 만들어낼 일이다. 그래야만 서로의 존재로 인정하고 인정받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기억이 전부다. 잊지 말고 잊히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의 소중한 기억 속에 남아 있어야 한다. 당신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잊지 않고 잊히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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