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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08. 2023

세상을 보여주는 수준 차이

오늘 아침 대부분 신문의 한편을 장식한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끈다. 미국의 34세 여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사진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뽑혔다는 기사다. 매년 선정되는 타임 인물들은 워낙 유명한 사람들로 장식되고 있어 그런가 보다 정도로 지나치기 쉬운데 올해 테일러 스위프트가 표지 모델로 등장한 사진은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물론 예쁜 얼굴의 사진이어서 그런 것도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기사 속에 있는 문장 하나 때문에 본문 기사를 다 읽었다. 바로 "스위프트는 쪼개진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단일문화"라는 선정 이유 때문이었다. 부수적인 선정 이유로는 "올해 예술과 상업적 측면에서 핵융합 같은 에너지를 분출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올해 3월부터 시작한 '더 에라스 투어(The Eras Tour)는 스위프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글로벌 투어가 연일 매진을 기록하면서 공연이 열리는 지역마다 숙박, 식당 등의 매출이 폭증했고 이로 인해 '스위프트노믹스'라는 팬덤경제가 만들어졌다. 7월에 열린 시애틀 공연은 7만 명에 달하는 팬들의 열광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규모 2.3의 지진이 기록됐을 정도라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내년 11월까지 전 세계에서 총 146회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데 19억 달러(2조 5천억 원 상당)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추산했다. 


하버드대학에서는 내년 봄 학기부터 '테일러 스위프트와 그녀의 세계'라는 제목의 강의가 개설될 예정으로 이미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마친 상태라고 한다. 이 수업은 스위프트의 음악 세계와 그녀를 둘러싼 팬덤을 깊이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팬들이 그녀의 노래를 소비하는 방식 등 팬 문화와 셀럽 문화도 들여다보고 스위프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백인, 미국 남부 문화라는 맥락과 퀴어 서브택스트도 들여다보는 강의라고 한다. 하버드뿐만이 아니다. 뉴욕대, 텍사스대, 스탠퍼드대, 애리조나주립대 등도 스위프트를 직간접적으로 다루는 강의가 개설됐다고 한다. 가히 팬덤이 아닐 수 없다.


올해의 인물로 선정해도 부족함이 없는 행보였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국내 언론에서 이 기사를 다루는 방향은 조금 다른 듯하다. 타임 선정 인물로 연예인 가수가 단독으로 선정된 것은 처음이라는데 초첨을 맞추고 있는 듯해서다. 과거 록밴드 U2와 배우 애슐리 저드 등이 올해의 인물에 뽑힌 적은 있지만 본업과는 관계없는 자선사업이나 미투(Me Too) 캠페인에 참여해서 선정된 것이라 스위프트의 단독 선정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스위프트는 2017년 애슐리 저드, 엔지니어 수전 파울러 등과 함께 미투 캠페인에 참여한 '침묵을 깬 사람들'에 포함되어 공동 선정된 바 도 있다.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에 두 번씩이나 선정된 첫 여성이라는 기록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팩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냐에 따라 무엇을 담아내고 끌어올지가 결정된다. 우리 언론은 감각적 말초신경에 집중하는 것은 아닌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타임은 그녀가 최초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쪼개진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단일 문화"라는데 집중했다. 올해에도 끝나지 않은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과 이스라엘 가자지구의 살인 현장 등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과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어 가고 있는 서구사회, 정치적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풍토 속에서 진영을 가리지 않고 부르고 좋아하는 존재로서의 스위프트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시선의 높이는 수준의 높이다. 어떻게 볼 것인가는 담고 있는 그릇의 차이에서 나온다. 패러다임을 만들고 이슈를 제대로 짚어내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번뜩이는 아이디어 수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난한 숙고와 통찰이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다.


세상의 흐름에서 현상의 맥을 제대로 짚는 언론이 필요한 이유다. 촌철살인으로 화들짝 놀라게 하고 폐부를 찌르는 아픈 논조의 지적으로 경각심을 주는 역할이 언론이 할 일이다. 게을러짐을 항상 경계하게 하고 공동사회가 좀 더 같이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도록 감시하는 역할도 언론이 할 일이다. 감시견도 필요하지만 안내견 역할도 해야 진정한 언론이 된다. 돈만 쫒는 언론은 죽은 언론이다. 아니 언론이 아니라 일개 기업의 수준에 머물 뿐이다. 핵심을 읽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우리 언론들은 반성할 일이다. 스스로 신언패를 목에 걸고 있는데 할 말이 없긴 하다. 그러니 말초적 재미거리를 찾는 수밖에. 그것이 우리의 수준인 것을 탓하여 무엇하리. 남 탓할 것도 없다. 언론이 그것밖에 못하느냐고 질타할 수 없다. 내 수준이 그렇고 우리 수준이 그렇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국가의 수준이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무릎 꿇고 반성할 일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나 한 곡 들어보자.


we are never ever getting back together https://www.youtube.com/watch?v=WA4iX5D9Z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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