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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18. 2023

글쓰기 힘들다고요? 무엇이 됐든 일단 쓰세요

매일 A4지 2장 반~3장 분량 정도의 글을 쓴다고 하니 어떻게 그렇게 매일 글을 쓸 수 있냐며 반문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래도 주말 이틀은 쉬니 주 5일을 쓰는 셈이다. 아니 뭐 가끔 아침 회의기 일찍 시작되거나 하면 평일에도 땡땡이치는 경우도 있다. 매일 쓴다는 것은 오해였던 것이다. 매일 쓰는 것처럼 보일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세월이 되도록 거의 (거의가 중요하다) 매일 장문의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궁금증일 거다. "소재는 어떻게 어디서 가져오는 거야?" "매일 그렇게 쓸 것들이 떠오르기나 해? 어디서 베껴 쓰는 거 아니야?" "아침마다 1~2시간의 짧은 시간 동안 그렇게 긴 글을 쓰는 게 가당키나 해?" "며칠 쓰면 소재가 바닥나야 정상 아니야?"


그러고 보니 많이 쓰기는 썼다. 에세이 '나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를 2021년 여름 출간한 이래, DAUM 브런치스토리에 쓴 글만 해도 812개다. 에세이 책에 들어간 글이 40편 정도이니 그동안 쓴 글을 책으로 엮으면 전집 2질을 내도 남을 분량이긴 하다.

하지만 많이 썼다고 자랑질할 것은 못된다. 내용이 문제일 수 있다.


매일 쓰는 게 강박관념이 되어버리면 남의 글을 끌어오는 표절의 유혹을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남의 글은 자신의 글을 채찍질하는 회초리로 남아야 하고 내 글의 소재를 확장하는 단편으로 삼아야 한다. 글 쓰는 게 스트레스로 작동하면 글쓰기를 멈춰야 한다.


글쓰기는 엄중하다. 증거를 남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말이야 녹취와 녹화를 하여 남길 수도 있긴 하지만 허공으로 사라진다고 할 수 있다. 말은 그때 그 장소에서 들었던 일부 사람들의 귀에서만 작동한다. 가슴에 사무치게 할 수 도 있지만 당사자에게만 유효한 전달이 된다.


하지만 글은 종이에 인쇄되어 지워지지 않는다. 두고두고 들춰보고 들춰내는 재확인이 가능하다. 불특정 다수의 접근이 가능하다. 이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자 무서운 일임을 알아야 한다.


내 생각을 오롯이 드러낸 글을 만인 앞에 내놓는 일이 글을 쓴다는 행위다. 덜덜덜 떨면서 쓰는 게 맞고 오들오들 떨면서 한 자 한 자 자판을 두드리는 게 맞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그런 것이다.


"그런데 너는 글 쓴다는 행위에 부여된 그런 엄중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감히 한마디 할 수는 있다. 

글 쓰는 것을 일상으로 만들면 된다. 그냥 쓰는 거다. 글 좀 써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첫 질문이 "첫 문장 시작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라는 것이고 "한 두 줄 쓰면 그다음에 뭘 연결해서 써야 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일단 무엇을 쓸려고 고민하면 시작할 수가 없다. 그냥 일상을 기록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거다. 아침에 일어나하는 행위 자체를 매일 써보는 거다. 그러다 보면 점차 디테일하게 쓸 수 있게 되고 글의 길이도 늘릴 수 있게 된다.


아침에 차를 한잔 마시는 상황을 글로 쓴다고 해보자. 처음에 쓰면 그저 "차를 마셨다"밖에 못쓰겠지만 다음날에는 차의 종류와 맛에 대해서도 쓸 수 있다. 그다음 날에는 차의 향에 대한 느낌도 넣을 수 있게 되고 또 그다음 날은 지금 마시고 있는 차가 어디서 만들어진 것인지, 찻잎은 언제 딴 것인지, 녹차인지, 흑차인지, 찻잎이 브랜딩 된 것인지도 살펴볼 수 있는 눈이 떠진다. 그렇게 디테일을 들여다보는 눈이 생기는 것이 글을 쓸 수 있는 힘으로 작동되어야 글의 소재에 대한 고민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헤밍웨이는 매일 같은 시간에 글을 쓰되 '내일 쓸 부분을 남겨 뒀다'라고 한다. 이를 '헤밍웨이 브리지(Hemingway Bridge)'라고 한다. 기발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기억에 연결 다리를 놓아 미래로 가져가는 행위는 우리 같은 범인들은 감히 상상도 못 할 내공이다. 사실 전문 작가에게나 유용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저 내 주변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에서 조차 '헤밍웨이 브리지'는 유용할 수 있다. 헤밍웨이 브리지는 내일 써야 할 글에 대한 여유를 남겨두는 행위다. 이는 내일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예측할 수 있으면 확신이 들고 거기에 여유가 생긴다. 글을 쓰는 가장 현명한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헤밍웨이 브리지는 삶의 모든 순간에 적용할 수 있기도 하다.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도 마찬가지다. 오늘 쓸 수 있는 근육의 힘을 총 동원해 운동을 하면 내일은 팔다리에 근육통이 생길 것이다. 최대한 할 수 있는 운동량보다 조금 덜 하는 요령이 있어야 내일도 운동을 할 수 있다. 헤밍웨이는 이런 삶의 방식을 글 쓰는데 적용했을 뿐이다.


이렇게 오늘 또 한 편의 생각들이 흘러 글이 되었다. 고민하지 말고 물 흐르듯 떠오르는 생각을 예민하게 잡아채 써나가면 된다. 디테일을 살리느냐 못 살리느냐는 방법론은 자꾸 해보면 는다. 고민만 해서는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일단 매일 계속 써보는 게 장땡이다. 그리고 머리에서 꺼낼 수 있도록 기억을 채우는 일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꺼낼 게 있어야 쓸 수 있다. 쓰는 건 그다음 일이다. 꺼낼 게 없을 데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고 남의 글을 끌어오고 싶은 유혹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 공부해야 한다. 그게 글 잘 쓰는 비결의 시작이다. 공부는 자기의 관심사와 관련된 것이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글은 공부한 내용을 하나씩 끌어다 보여줄 뿐이다. 내 글에 자연과학 내용이 많이 담기는 이유다. 망설이지 말고 공부하고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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