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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03. 2024

갑상선암 수술, 2년 경과 보고서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6mm 크기의 결절이 있는 오른쪽 갑상선샘 적출 수술을 한 지 2년이 지났습니다. 정확히는 2021년 12월 3일, 수술을 했으니, 2년 하고 한 달이 더 지났습니다. 1년 경과시점부터는 1년에 한 번만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2주 전에도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 및 X-Ray, 혈액검사를 하고 어제 검사 결과 소견을 들으러 다녀왔습니다. 


신년 첫날을 병원에 가서 신체기능 원활성을 평가받는다는 게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2주 전 초음파 검사를 진행하던 선생님으로부터 "1년 전과 똑같아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라는 귀띔을 들었기에 어제는 안심하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어제 담당 주치의 소견은 "검사결과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호르몬제 끊은 지가 1년 반이 되었는데도 반쪽만으로도 잘 적응하고 계셔서 호르몬제 처방은 계속 안 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나 왼쪽 갑상선으로의 암 전이도 살펴봤는데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잘 적응하고 계신 거니까 계속 관리하도록 하시고요. 그래도 종합영양제는 꾸준히 복용하는 게 좋습니다. 1년 뒤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때는 CT 촬영도 해서 중간 점검을 더 세밀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얘기였습니다.


지난 1년을 잘 버텨왔다는 결론입니다.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갑상선샘 한쪽을 적출하고 난 이후에 자주 쓰게 된 용어가 있습니다. '버틴다"입니다. 이겨내 극복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끈질기게 버티는 상태, 그것이 사는 것임을 눈치챈 것입니다. 암과 싸워 이겨내려고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더 부과하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암은 싸울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싸움이 되지 않는 대결입니다. 상대를 인지해야 싸움이 되고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를 판단하게 되는데 이 놈의 암은 부지불식간에 어퍼 컷을 날리며 달려듭니다. 정신없이 맞다 보면 어느새 다운되어 있습니다. 암이라는 놈이 한 수 위에 있었던 겁니다.

한 수 위에 있는 놈과 마주 서서 이기기 위해서는 끝까지 버텨내는 것이 방법입니다. 훅, 어퍼컷이 들어오더라도 글로브 낀 팔로 적절히 커버하고 버텨내어 제 풀에 꺾이게 만들어야 합니다. 맷집이 좋아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맷집은 곧 체력이고 건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이라는 놈 또한 교활하여 항상 빈틈을 노리는 데는 선수입니다. 철저히 방어하고 버텨내야 합니다.


과학기술과 분자생물학이 아무리 발전했다고는 하나 아직 암들의 전술을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생물학의 현주소입니다. 중입자 가속기처럼 표적 치료를 하는 장비가 개발되고 있지만 모든 암들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은 변형된 세포 조직이 있는 부위를 잘라내서 전이를 막는 원천 차단 방법의 수술이 최고의 생명연장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기발견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잘라낼 부위의 크기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클로버 씨앗 하나가 화단에서 씨앗을 날리면, 다음 해 화단 전체가 클로버로 뒤덮이는 현상과 암의 전이속도가 비슷합니다. 씨앗을 품은 초기 클로버를 뽑아 버려야 화단의 잔디가 잘 크고 유지될 수 있습니다.


저는 최대한 버티는 방법으로 운동을 택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운동 방법을 소개해드리기도 했습니다. 운동은 한번 시작하면 평생 약 먹는 것과 같이 평생 운동을 해야 합니다.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운동하다가 중단하면 우리 몸은 바로 반응합니다. 에너지를 저장하고자 하는 원시수렵생활 패턴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살이 찌고 배가 나오는 것입니다. 에너지 축적현상입니다.


이 현상을 이기기 위해서는 꾸준히 운동을 하여 관리를 해야 합니다. 매일 아침 체중을 달고 눈금 변화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숫자로 보는 것만큼 확실한 운동은 없습니다. 숫자로 봐야 줄일 것인지 늘릴 것인지를 알게 되고 숫자에 좌절해봐야 한 끼 굶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오늘 아침 체중은 68.6kg입니다. 연말부터 저녁 모임이 많았다는 핑계를 대며 조금씩 늘려온 체중이지만 그나마 저의 한계체중으로 설정한 70kg 밑에서 유지하고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동네 피트니스센터에 등록하고 다닌 지도 1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버티는' 힘이 늘어난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저녁식사 약속이 없는 날은 무조건 저녁 8시에 피트니스센터로 가서 2시간 있다 옵니다. 무조건이 중요합니다. "TV에서 재미있는 거 하네. 저거 보고 갈까?"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냥 집을 나서서 피트니스센터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덤벨도 들게 되고 트레드밀에도 올라서게 됩니다. 


버티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무조건 하는 겁니다. 핑계, 이유 따지지 말고 운동하러 가서야 합니다. 조깅이 됐든, 테니스가 됐든, 산책이 됐든 집을 나서야 합니다. 거실에 요가매트 깔아놓고 스트레칭하고 팔 굽혀 펴기도 하고 윗몸일으키기도 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계속 오래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며칠 하다가 쉬기를 반복하는 게 보통입니다. 규칙적으로 하지 못하는 운동은 피로만 배가시킬 뿐입니다. 옆에서 같이 뛰어주고 하다못해 뒤태 빵빵한 스키니 운동복과 상체 근육 빵빵한 트레이너에게 정신 팔려 피트니스센터에 간다는 핑계라도 대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버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운동을 통해 일상을 버티다 보면 1년 뒤 정밀검사를 했을 때 또다시 긍정적 숫자 성적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하게 살기 위한 버티기는 그만큼 엄중합니다. 항상성, 지속성이 건강의 지표입니다. 갑상선암 수술 후 2년을 무사히 잘 통과하고 있음을 경과 보고 드렸습니다. 잘 버티고 오게 해 준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ps : 갑상선암 적출 수술을 받고 썼던 단상들 10편을 연결합니다.


ㅇ 갑상선암 수술, 1년 경과 보고서( https://brunch.co.kr/@jollylee/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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