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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04. 2024

많이 알면 좋을까?

많이 알면 좋은 것일까?


세계적 베스트셀러 '넛지(nudge)의 공동저자인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이 쓴 'TMI, 정보가 너무 많아서'가 지난달 번역 출판되었다. 이 책에서 선스타인은 "영화관에 들어가면서 산 팝콘 한 통의 칼로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 자신이 특정한 병에 취약한 유전적 소인을 가졌는지? 파리에 있지도 않은데 다음 주 파리 날씨를 안다고 해서 유용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적절한 정보의 양에 대한 경계를 긋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선스타인은 '아는 것은 힘이지만 모르는 것도 축복'일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런 고민은 선스타인을 넘어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인 존 키츠(John Keats)가 "뉴턴이 무지개를 프리즘으로 환원시킴으로써 모든 시에 대한 정서를 없애버렸다"라고 했을 만큼 인간 고유의 화두였고 이에 대해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무지개를 풀며(Unweaving the rainbow)'라는 책을 통해 과학이 발전하면서 신비주의나 시의 상상력을 헤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과학으로 인해 자연의 경이로움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음을 반론으로 제시하고 있다.


세상 천재들의 통찰조차 통섭으로 융합하기가 이렇게 어렵나 보다. 각자의 시각이 모두 일리가 있다. 


도킨스는 "아무리 별이 멀리 있어도, 별은 스스로 빛을 낸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달빛은 모두 반사된 태양빛(시적 감수성을 모독한다는 이유로 D.H 로렌스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이므로 여기서 나오는 스펙트럼은 달의 화학적 성질을 조사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중략) 별빛을 분광기로 풀어헤침으로써 우리는 별이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소로부터 헬륨을 만들고 뿜어내는 핵 용광로이며 이어지는 순차적 반응을 거치면서 헬륨을 융합시켜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중간 크기의 원자를 주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라고 과학적 발견의 경이로움을 주창했다.


선스타인은 "현대 사회에서 소비자의 알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절대적인 정보량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적절한 정보에 가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정보가 어떻게 기능하고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할 때만 더 행복하고 자유롭고 더 나은 삶을 더 오래 영위할 수 있다"라고 독자들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정보 과잉과 적절한 정보의 양에 대한 경계는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인 chatGPT의 등장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한 개인이 평생 섭렵해도 접근할 수 없는 정보량을 chat GPT는 단숨에 축적해 버린다. 그리고 질문에 답변을 쏟아낸다. 문제는 학습 데이터의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이다. 트레이닝 데이터 속에서 정보를 추출하지만 마치 자기가 만들어내는 것처럼 확신적 답변을 내놓는데 이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바로 chatGPT는 정답을 맞히는 기계가 아니라는 소리다. 가장 그럴듯하고 근사한 걸 찾아서 보여줄 뿐, 그 답변이 잘못된 것인지 진실인지 아닌지는 기계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학습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틀릴 확률도 줄어드는 것은 맞지만 어떤 데이터로 학습을 했느냐가 관건이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인공지능이 학습했다고 해서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세상의 블랙스완은 돌연변이처럼 항상 내재되어 있고 언제든 불쑥불쑥 나타난다. 완전 자율 전기자동차가 마치 온 세상 도로를 차지할 것처럼 떠벌리던 테슬라가 주춤거리는 이유다. 차만 바뀌어서는 소용이 없다. 도로 인프라가 자율 주행차에 맞게 같이 바뀌어야 한다. 그 차이 때문에 오차가 벌어지고 사고가 이어지고 불안해한다. 그 오류와 오차를 인간은 감각적으로 수정하여 블랙스완을 잡아낸다. 인간과 기계의 차이다. 아니 인간은 지구의 나이만큼인 46억 년을 진화하며 발전해 왔는데 인공지능은 겨우 10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만들어져서 기능하고 있다. 시간의 길이에 놓고 보면 새발의 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보이지도 않는 수준일 뿐이다.


정보의 양은 어떤 곳에, 어떤 필요로 인하여 쓰고 싶은지가 정해져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양의 정보가 얼마만큼인지 가름할 수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 있어봐야 떠밀려 갈 뿐이다. 나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언지 골라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의 길목을 잘 지킬 줄 알아야 하고, 어디가 길목인지 잘 알아야 한다. 가짜인지 진짜인지, 위장된 가짜인지, 포장된 진짜인지도 구별해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속지 않는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보석을 캐고 정보의 그물을 잘 치는 요령이다. 찌라지 정보에 휘둘려서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 자잘한 뒷담화나 연예계 소식, 유명인의 불륜 이야기에 눈길을 뺏기고 귀가 솔깃하게 된다. 눈을 씻고 귀지를 파낼 일이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릴스나 숏폼에 낚여 허송세월하게 된다. 재미가 눈과 귀를 뜨게 하기도 하지만 멀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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