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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02. 2024

삶은 '정의 내리기'다

2024년을 시작합니다. 매년 그렇지만 숫자 하나 바뀌었다고 무엇이 달라질 것이며 무엇이 변할까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을 하고 다짐을 하게 됩니다. 마치 그래야 할 것 같은 초조함도 있고 쫓김 같은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편할 것이라면 그렇게 하는 게 정답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걸 '산다'라고 할 테니 말입니다.


삶은 '정의 내리기'인 듯합니다. 옳고 바른 도리를 뜻하는 정의(正義 ; justice)가 아니라 본질적 속성을 명백히 밝혀 규정하는 정의(定義 ; definition)입니다. 사실 어떤 일이든, 무슨 일이 되었든 정의 내리지 않고 행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무심히 하는 것 같은 일조차도 내가 가진 가치관과 신념, 윤리에 의해 정의 내려졌기에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도 "나에게 어려운 문제가 주어지면 나는 그 문제를 정의하는데 노력의 90%를 쓰겠다"라고 했습니다. '정의 내린다'는 것은 그만큼 엄중합니다. 바로 욕망을 일으키는 출발점이자 행동의 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정의가 확실하면 나머지는 그냥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에 불과해집니다.


한국 기업들이 가장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정의 내리기입니다. 프로젝트를 할 때 요구사항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좋은 아이디어 내 보세요" "고객을 끌어당길 수 있는 광고를 만들어 주세요" "올해 어떻게 사업을 실행할지 계획을 내보세요"라고 문제제시를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구체적인 요구를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문제에 대한 구체적 정의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디어 하나를 요구할 때라도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해야 합니다. 왜 이 아이디어를 구하는지, 지금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해서 이 회의를 하는지, 그래서 지금 어떤 아이디어를 찾고 있는지를 알려줘야 합니다. 


구체적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시작한 프로젝트는 산으로 들로 가게 마련입니다. 모두가 사공입니다. 각자 자기 의견 내고 각자 해석합니다. 결국 프로젝트는 제대로 실행되지도 못하고 시작과는 다른 두리뭉실한 결과를 내놓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 비난합니다. 실력이 있네 없네 그것도 못하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2024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에 따라 올 한 해의 방향이 정해짐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획을 하고 다짐을 하는 일이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근원의 추적'이 필수입니다. 단어 하나가 가진 어원조차 따라가 볼 일입니다. 그래야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대충, 대략, 적당히는 정의를 내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두리뭉실한 정의는 오해를 낳습니다. 각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도 필수이지만 이 다양성의 바탕에는 공통의 정의를 깔고 있어야 합니다.


물리적 상황을 본다면 모두가 같은 현상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과를 보면 빨갛던 초록색이던 모두가 사과로 인식해야 합니다. 빨갛지 않으니 사과가 아니라고 하면 대화가 되지 않을뿐더러 소통 자체를 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필수조건입니다. 사물에 대한 정의가 같아야 함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보는 시각이 양분되는 것은 바로 상황을 정의하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아니 자기의 시선으로 정의된 사회를 타인에 강요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정의 내리기'를 사회적 현상으로 돌리면 수만 가지 비판과 힐난을 쏟아부을 수 있습니다. 개인의 '정의 내리기'로 범위를 좁혀봅니다. 신년 계획에 대한 이야기로 말입니다.


각자 올 한 해 동안 대충 예상되는 큼지막한 일들이 내정되어 있을 것입니다. 책상 위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큰 획을 그을 날들에 동그라미를 쳐가며 마음을 다질 것입니다. 설사 달력을 넘겨가며 가족들 생일날들을 표시하는 정도라고 해도 그것조차 평범한 날들 중에 잊지 않게 하는 행동의 표식이 됩니다. 가족의 생일을 챙기기 위한 정의 내리기입니다.


아마 모두들 올 한 해 365일의 날들을 대충의 얼개로나마 이어놓았을 것입니다. 어떤 일들이 닥쳐올지, 내일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것이 '사는 일'일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강의 얼개를 따라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도 눈치채고 있습니다.


세상은 꼭 마음먹은 대로 굴러가지 않지만, 마음먹은 만큼 굴러가는 게 또한 세상사는 일입니다. 일 년의 얼개를 짜고 그 얼개에 맞춰 벽돌도 쌓고 철근도 세우고 콘크리트도 비벼 붇다 보면 그럴듯한 건물 하나 연말쯤에 볼 수 있을 겁니다. 얼개에 나뭇잎을 댈 것인지, 비닐을 덮을 것인지는 오로지 내 역량과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탕은 얼개를 어떻게 정의 내릴 것인지에 달려있습니다. 워킹데이가 시작되었느니 이제 정의된 얼개를 세우고 공구리를 쳐 나갈 일입니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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