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Jan 08. 2024

의전을 잘못하면 한방에 간다

사람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데 어떤 일을 하려면 절차와 순서가 필요하고 이를 기준 잡고 주도해 나가는 사람도 필요하다. 작은 모임에서 시작하여 국가 간의 행사에 있어서도 필요하다. 가정이나 회사에서도 적용된다. 사람이 모여있으면 당연하게 끼어드는 것이 의례(rituals)다. 이는 일을 원활히 진행되게 하는 방편이다. 서열을 정하는 본능이 있는 호모사피엔스가 사회성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중의 하나로 만든 것이다. 


이런 일련의 행위를 의전(儀典 ; protocol ; 정해진 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이라고 한다. 국가 간 행사에서 상대방 국가의 의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벌어지는 해프닝을 종종 보게 된다. 망신살이 뻗친다. 국가 간 의전은 그만큼 엄중하다. 상대국 의전에 따르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이자 배려이기 때문이다.


간혹 정치인들이 참석하는 행사장에서 꼴불견 의전도 보게 된다. 정치인들이 축사를 하는 인사들로 초청된 경우가 많은데 행사가 시작되고 한참 진행 중일 때 늦게 도착한 정치인들이 있으면 행사를 멈추고 정치인을 단상으로 부르는 경우를 보게 된다. 나름 정치인의 위치를 고려하여 의전을 맞춘다고 하는 행위지만 최악의 의전이다. 쌍욕을 부른다. 진행팀에서 의전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도 욕먹고 진행팀도 욕먹는다. 행사시간에 맞추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못 간다고 하던가, 아니면 조용히 뒷자리에 찌그러져 있다가 인터미션 시간에 일어나 인사 정도 하는 것이 맞는 의전이다. 아니 이건 의전도 아닌 상식이다. 행사를 잠시 멈추고 정치인을 소개하면 잘 대우해 주는 것이고 대우받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몰지각이 문제다.


국가나 정치인들의 의전은 그렇다고 치고 기업에서의 의전도 만만치 않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의전이라는 용어는 큰 범위에서 윗 상사를 잘 모시는 일로 통합된다. 특히 경영층이 외부 행사에 참석하거나 출장을 가거나 할 때 이동에 불편하지 않게 사전에 동선을 파악하여 원활히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일이고 행사에 참석했을 때 참석인사들과의 레벨에 맞게 자리배치를 하는 일 등이 해당한다. 수행비서들이 반드시 익혀야 하고 눈치 빠르게 응대해야 하는 필수과정이 바로 이 의전이다.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기업에서 이 의전을 어떻게 잘하느냐가 회사생활의 사활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조직생활에서 당연하다. 기업이라는 조직은 기본적으로 위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 조직이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 조직원 간의 위계질서가 명확하다. 기업의 위계는 권한과 책임에 따른 무게의 크기와 같다. 무게의 무거움을 많이 진 사람들에 대한 조직원들의 존중과 배려가 의전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사실 의전 대상자의 개인적 품성에 따라 의전의 품격도 달라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남들이 도와주고 하는 것을 미안해해서 출장 갈 때도 본인 스스로 챙겨가는 경영층도 있지만 비서진에서 끼니때마다 식사메뉴까지 챙겨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소리다. 그래서 의전 담당자는 눈치가 빠르고 상황 파악을 잘하며 전체 업무를 꿰뚫어 볼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어떤 상황과 마주치던 적절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의전을 받는지조차 모르게 하는 것이 의전의 정수다.


간혹 외부 행사에 초청받아 갔는데 가장자리 테이블에 자리배치가 되었다고 화를 내거나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자기하고 레벨이 안 맞는다고 담당자를 호출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자기가 무시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위치에 대한 허세가 충만한 사람이다. 그런 위인치고 그 조직에서 오래가는 사람 보지 못했다. 당장은 그 사람에게 채워진 완장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고개 숙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이미 최악의 인간으로 낙인찍어 놓게 된다.


맹자는 "訑訑之聲音顔色(이이지성음안색) 距人於千里之外(거인어천리지외)"라고 했다. "잘난 체하는 목소리와 얼굴빛이 사람을 천리 밖에서 막는다"는 뜻이다.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본성은 아직 진화를 덜 한 모양이다.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어도 항상 리셋되어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인간 본성의 놀라움이다.


지위에 대한 아우라는 자기를 낮출수록 후광으로 은은한 빛을 낸다. 짧고 밝게 쬐다가 사라지지 않는다. 명예나 지위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대우받고 싶어 하는 욕심이 발하면 얼마가지 못한다. 당장은 권세에 밀려 대우해 주는 것 같지만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순간 왕따를 당한다. 가지고 있는 권한은 절반만 행사하고 짊어진 책임은 온전히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자리에서 내려오더라도 존경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만 그 자리를 과신하면 전기의자가 될 수 있음도 명심해야 한다. 대우받고 싶으면 타인을 먼저 대우해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예쁜 말을 해야 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