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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08. 2024

한 단어, 다른 뜻

단어는 뜻을 보통 하나의 의미와 뜻을 갖는다. 한 단어가 여러 뜻으로 통용되면 당연히 혼동을 불러온다. 같은 단어를 다른 뜻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 당연하다. 고유명사야 당연히 사물 하나하나에 이름 붙인 것이니 대상이 있다. 누구 들어도 딱 그 물체나 물건, 사물을 지칭하는 것이니 달리 받아들이지 않는다. 책상, 의자, 사과, 책 등등 대부분의 명사들은 확고한 존재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된다. 물론 사과 중에도 빨간 것, 파란 것, 약간 노란 것, 벌레 먹은 것 등등이 있을 수 있으나 사과로 명명된 이미지로 브레인에 각인된 형체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추상명사와 형용사다. 같은 단어를 받아들이는 정도가 모두 다르다. '예쁘다'는 형용사를 예로 들어보자. 어느 정도를 예쁘다고 하는 것인지, 어떤 것을 예쁘다고 하는 것인지, 보는 사람마다 다르다. 예쁘다는 기준은 그때그때 상황과 대상에 따라서도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고 시대와 나라, 종교에 따라서도 다르다. 세상의 시기와 질투와 미움의 시작은 바로 이 차이에서 시작된다.


따지고 들면 '예쁘다'라고 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기준이 다른데 예쁘다고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소피스트적인 현학일지 모르나 곰곰이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제 눈에 안경'이 맞다. 그래도 보편적인 '예쁘다'의 수준이 있다. 경계가 없거나 애매모호함에도 구분을 한다. 참 희한하다.


그래도 그나마 '예쁘다'는 형용사는 양반이다.


가장 혼란스러운 단어 중 하나가 '적당하다'라는 형용사다. 어떤 때는 가장 이치에 맞는 표현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가장 속된 표현이 되기도 한다. 극과 극을 달린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적당(適當 ; suitable)하다'는 "들어맞거나 어울리도록 알맞다"는 뜻인데 온갖 상황에 다 등장한다. 설날인데 세뱃돈을 얼마를 주는 게 적당한지? 밥은 얼마나 먹는 게 적당한지? 운동량과 운동시간을 얼마나 하는 게 적당한지? 주식에는 얼마를 투자하는 게 적당한지?를 묻는다.

적당함은 바로 경계와 수준을 묻는 단어다. 질과 양을 동시에 추구하는 단어다.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는 균형을 찾으려는 적절성에 대한 단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중용(中庸)에 어울리는 단어다. 또한 불가근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상태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타 죽고 너무 멀리 있으면 얼어 죽는다. 우주에서 생명이 살 수 있는 항성과 행성 간의 거리가 적당한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이다. 


사람 사이로 적당함이 들어오면, 더 할 수 있는데 더 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 부족함 보다는 조금 남는 상태일 때 그만두는 것이 '적당함'의 적절한 표현이다. 사람 사이에서 이 '적당함'을 유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능력이 있으면 더 보여주려 하고, 허세도 부려보고 싶은 욕망이 '적당함'을 눌러 이기기 때문이다. 적당함에는 자제력이 있어야 하는데 과시와 허세가 자제력을 이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적당히 좀 해라!"라는 문장 속으로 들어오면 '적당히'는 "대충 하다"의 속된 표현이 된다. 지나치고 과분하게 하던 것을 그만하라는 소리가 된다.


정성적 표현이 정량적 표현보다 강했던 동양 문화권에서 가장 확장성을 많이 가진 단어가 된 듯하다. 사실 기준은 숫자로 보여주면 가장 확실하다. 적당한 몸무게를 막연히 물을 것이 아니고 키가 몇 cm일 때 몇 kg이 그 나이대에 가장 적당한 것인지 숫자로 알려주면 된다. 배가 부르다고 생각되면 적당히 그만 먹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식단 칼로리를 감안하여 밥공기의 절반, 반찬 5가지 이상 골고루 먹기, 종합 영양제 하루 2알, 단백질 보충제 하루 250ml 등 구체적 양을 제시해줘야 한다.


적당히 두리뭉실하면 목표가 사라진다. 해내야 할 목표가 애매하면 하다가 쉽게 포기하게 된다. 작심삼일이 바로 이 적당함의 표현형이다.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적당함은 가장 필요한 여유의 공간을 제시한다.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해내야 될 목표가 있다면 적당함은 실패의 원인이 된다. 목표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이어야 한다. 적당히 두리뭉실해서는 한 치 앞도 나갈 수 없다. 하고 있는 일이 잘 안 된다면 지금 적당히 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적당함을 잡아채서 세분화하여 버릴 것이 있으면 빨리빨리 버려야 한다. 적당히 하면 당연히 망한다. '적당하다'가 여유로 작동해야지 회피로 작동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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