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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10. 2024

사무실 화분에 꽃이 피다

현충일 연휴부터 나흘을 쉬고 출근하니 사무실에 변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거나, 출근했더니 책상을 뺐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아주 사소한 것일 수 있으나 아주 기쁜 소식입니다.


사무실 책상 뒤쪽 창가에 놓인 난(蘭)중의 하나가 꽃대를 올린 것입니다. 


제 책상 뒤쪽으로는 8개의 작은 화분이 놓여 있습니다. 화분들이 그 자리 온 지는 길게는 10년이 넘는 녀석도 있습니다. 그중에 난 화분 하나는 지난봄부터 초록의 잎이 갈변하여 사그라들었지만 아직도 그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놔두고 있습니다. 아직 초록의 잎을 보전하고 있는 다른 화분에 물을 주면서, 이미 생명의 온기가 없는 이 화분에도 물을 함께 줍니다. 혹시나 화분 속 어딘가에 잠자고 있거나 목말라하는 생명이 있었다면 다시 깨어날 것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벌써 두 계절이 지나도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생명이 자랐던 화분 속의 흙을 다시 대지로 돌려보낼 때가 되었나 봅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오늘도 초록빛 사라진 화분에 물을 부어 봅니다.


이들 화분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줍니다. 제가 장기 휴가를 갈 때를 제외하고는 매주 빠짐없이 물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화분들이 사무실에 들어올 때는 꽃들이 만개한 자태를 뽐내며 왔는데 그 처음 꽃들이 지고 난 이후로는 다시는 그 화려했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꽃이 필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매번 물을 주었던 정성이 드디어 감흥을 했던 걸까요? 오늘 아침 8개의 화분 중 하나에서 꽃대가 올라온 것입니다. 아침에 화분에 물을 주다 우연하 발견했습니다. 얼마나 놀랍던지요. 가슴이 다 꿍꽝거립니다. 혹시나 다칠까 물을 주면서 조심조심 살펴봅니다.

연휴에 들어가기 전날까지만 해도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었는데 나흘 만에 20cm 길이의 꽃대가 올라왔습니다. 꽃대 끝에는 아직 감춰진 꽃잎들이 3송이 정도 될 듯합니다. 색깔은 자줏빛을 띨 것으로 보입니다.


수줍었나 봅니다. 나흘동안 아무도 없는 사무실 공간에서 그 자태를 홀딱 벗고 드러냈습니다. 오늘내일이 지나면 아마 밤에 또다시 꽃잎을 열고 향기를 내뿜어 사무실에 은은히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난향으로 사람들을 홀릴 것입니다.


닫힌 공간인 사무실에서 꽃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음을 경험적으로 압니다. 수많은 종류의 화분들이 들어왔다 꽃 한번 제대로 피워내지도 못하고 생명을 다하는 것을 지켜봐 왔습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누구 하나 주기적으로 물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설사 자주 물을 주고 해도 사무실 공간이 갖는 일정한 온도와 인공조명에 익숙해져서 식물들이 최소한의 생명활동을 하기 때문에 화분에서 꽃이 피는 것을 본다는 것은 천우신조일 가능성이 큽니다.


난 화분 하나에 꽃대 하나 올라왔다고 호들갑을 떤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화분에 물을 주고 기다려온 사람이라면 이 정도 흥분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집 베란다에서 키우는 화분들은 계절에 맞게 꽃들도 잘 피는데 사무실에 있는 화분에서 꽃 피는 것을 보기가 힘든 것일까요? 사무실 화분들도 창가에 놓여서 일조량이 부족한 것은 아닐 텐데 어떤 조건이 맞지 않아서 꽃을 피우지 않았을까요? 화분을 관리하는 정성이 부족하고 손길이 뜸해서 그럴까요?


꽃대가 올라온 화분 덕분에 옆에 있는 화분들도 자세히 살피게 됩니다. 새순을 내는 화분도 두 개나 있습니다. 난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스타일이 아닌 성장속도를 거의 눈치채지 못할 정도인데 새순이 나는 걸 지켜보면 하룻밤 사이에 쑥쑥 키를 키우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다른 잎들과 키를 같이 할 정도로 크면 더 크지 않고 잎의 키를 맞춥니다. 식물이란 녀석도 작은 화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스스로 알고 있는 듯합니다. 공생하는 법을 알고 공진화하는 법을 스스로 맞춰갑니다. 식물의 세계는 원래 그럴 테지만 인간적인 해석을 들이대면 그럴 것이다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난 화분에는 양분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부석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 돌 틈들 사이로 뿌리를 이리저리 휘감고 물에 용해되어 내려오는 칼륨, 마그네슘, 칼슘과 같은 분자 이온들을 잡아채어 생명 유지 원천으로 씁니다. 꽃대를 올린다는 것은 그 척박함에 대한 반항입니다. 존재를 보여주어 '있음'을 온 천하에 알리는 갈구입니다.


사무실 구석의 작은 화분 하나도 생명입니다. 바깥에 있었다면 자연의 순환에 맡겨 놓아도 좋겠지만 실내 공간으로 들여놓은 이상, 물 주고 양분이 될 토양을 갈아주는 일은 전적으로 사람의 몫입니다. 반려견 돌보듯 식물들도 살펴야 하는 책무는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난의 꽃이 피어 사무실에 그 은은한 꽃향이 퍼지길 두근거리며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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