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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19. 2024

정년퇴직 준비는 잘하고 있는가?

평생 성실히 직장 생활하고 곧 정년퇴직을 앞둔 사람들이여! 비련하지만 편안한 노후의 꿈을 버려라. 직장의 울타리를 넘어선 순간, 바깥은 생존을 걱정해야하는 전쟁터이자 지옥이다.


어깨에 붙였던 계급장 떼고 다이다이로 붙어야 하는데, 어떤 싸움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가? 전문 기술직을 가지고 있는 몇몇을 뺀 넥타이부대 출신들은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문서 기안에는 도가 텄다고? 엑셀 파일로 실적 관리하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그건 속해있는 회사에서나 통하는 수단일 뿐이다. 퇴직하는 순간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잔기술일 뿐이고 대부분의 퇴직자들이 모두 보유한 가장 평범한 기술일 뿐이다. 아니 기술이라고 할 수 도 없다. 요즘은 그 정도 문서작업은 AI 프로그램을 돌리면 된다. 세상 변한 줄 자기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퇴직을 앞두고 보니 결국 해답은 '사람이다'라고 외친다. 과연 그럴까?


해답에 가깝긴 하다. 어차피 사람이 모여사는 공동체 구조이니 인맥이 최고의 자산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하지만 인맥도 내가 힘이 있고 빽이 있고 봐주고 관리할 수 있을 때 이야기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나오는 순간, 탄탄할 것 같은 인맥은 무주공산으로 바뀔 가능성이 더 크다. 전관예우는 바라지도 마라. 가장 찌질한 것이 후배들 불편하게 하고 피곤하게 하는 거다. 


퇴직과 동시에 전화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정해져 있음을 동물적 감각으로 섬찟하게 깨닫는다. 휴대폰 연락처를 계속 뒤로 넘겨보지만 멈춰지는 사람의 이름 찾기가 쉽지 않다. 전화라도 해볼까 멈짓멈짓하는 사람의 이름이 있지만 감히 멈추지 못한다. 그렇게 휴대폰 연락처 맨 뒤까지 넘어간다.


"소주라도 한 잔 하자고 그럴까? 아니 지금 바쁘겠지. 괜히 전화해서 불편하게 할 필요는 없지. 다음에 조금 한가해지면 보자고 하지 뭐"


이렇게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6개월 가고 1년 지나가고 그나마 가끔 얼굴이라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사라져 간다. 아니 스스로 그물망을 치고 거름망을 이중 삼중으로 치고 나면 걸려드는 사람이 가물에 콩 나듯 남아있게 된다. 스스로의 자격지심에 갇혀 대인기피증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퇴직하면 남는 게 시간이라 여유가 넘쳐날 것 같지만, 여유가 초조가 되고 불안이 되면 시간은 멈춰있는 감옥이 된다. 시간이 많으니 가고 싶을 때 해외여행도 떠나고, 먹고 싶은 거 먹으러 반나절 넘게 운전해서 갈 용기도 있을 것 같지만 언감생심 한두 번 하고 한두 달 하면 끝날 것임도 직감한다. 놀아도 노는 게 아니고 여행하며 돌아다닌다고 다녀도 보는 게 보는 게 아니다. 그저 멍하니 적막강산에 초점 없는 시선을 던질 뿐이다. 시간만 죽이고 우울증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역시 예의주시해야 한다. 이를 어쩔 것인가?


이 정도 고민하는 것도 행복한 고민이라고 한다. 회사에서 정년 퇴직할 때까지 다닌 것도 희귀종이라고 부러워한다. "사업해 봐라. 월급 받고 다닐 때가 가장 해피했음을 알게 된다"라는 귀띔을 듣는다.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맞이할 것인가? 5개월 남짓밖에 안 남았는데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면 준비가 전혀 안된 것이다. 안일하게 안주하고 있을 뿐이다. 평상심으로 안주하고 있을 때는 나름대로 꼼수와 대안을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 처절하고 다급하게 생각하지 않을 어떤 장치들을 고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연금이 됐든 꼬불쳐둔 비상금이 됐든 주식이 됐든, 삼시세끼 삼식이를 하며 근근히라도 버틸 수 있는 비빌 언덕이 있기에 퇴직 이후의 삶을 설렁설렁 추론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다가올 일상을 시간단위로 촘촘히 짜는 프로젝트 태세에 들어가야 한다. 정해진 시한부 시간이 있기에 시간표 짜기도 오히려 쉽다.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일정표를 만드는 것이다. 계획하고 있는 일을 위해 정보를 취득할 사람들과의 약속을 잡고 또 거기에 맞는 자료를 수집하는 시간들을 편성하고 틈틈이 건강 관리를 위한 운동의 시간표도 겹치게 놔봐야 한다. 그리고 퇴직 이후 혼자 해결해야 할 세금 내는 법까지도 공부하고 실습을 해봐야 한다. 


새로운 삶의 방식에 잘 적응하도록 세팅을 잘 짜야한다. 정해져 있다, 유한하다는 것은 삶에 긴장감을 준다. 그렇게 맞이하고 부딪치고 버텨내는 것, 그것을 산다고 한다. 닥쳐올 것이 정해져 있는데 무감각해서 가만히 있는다는 것만큼 무기력한 것은 없다. 적절히 대응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너무 잘하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 노력은 지금까지 해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길을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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