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다 때가 있더라"
참으로 그러하다.
연령대별로 잘할 수 있는 것들이 따로 있다. 그 나이 때에 반드시 경험해봐야 하는 숙명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나이 들었다고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적정한 때보다 기능이 떨어져 분별력이 달라진다는 소리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 잘할 수 있는 것이 있고 30-40대에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며 소위 꼰대로 치부되는 60대 이상의 세대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때를 거슬러 무언가를 하게 되면 어색해짐을 알아챌 수 있다.
요즘은 대학생시절, 해외로 배낭여행 안 가본 학생이 거의 없을 정도지만 시대별로는 꿈의 도전이자 부러움의 대상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은 다들 추억하고 있겠지만, 돈보다는 시간이 많았던 청춘들은 방학을 이용하여 머리 위까지 오는 배낭 하나 매고 싼 항공편을 이용해 돌고 돌아 여행을 시작했다. 물론 다음 학기의 등록금을 위해 한여름 땡볕 공사판에서 등짐 지는 친구들도 있어 한가로이 배낭여행을 입에 올리는 것이 불경스러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여 돈을 모으고 자기의 이상을 찾아 과감히 떠났던 많은 청춘들에 박수를 보냈었다. 배낭여행은 학생의 특권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이라는 곳에 취업을 하는 순간, 시간과 돈에 엮이게 된다. 가고 싶어도 갈 시간 내기가 만만치 않다.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고 집에 있는 식구들을 염려해야 한다. 그렇게 세월의 격랑에 휩쓸려 나이 들어간다.
그래서 세계 유명 배낭여행 성지를 가보면 50대 넘은 꼰대들이 배낭매고 오는 경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간혹 50-60대 나이 먹은 배낭여행족을 만났다면 그 사람은 분명 직장을 그만두고 생애 전환 시기를 맞아 길을 나선 경우가 100% 일터다.
나이가 들면 여행의 패턴도 바뀌어 간다. 아니 이미 배낭여행의 경험과 온갖 여행 자료의 검색을 통해 해보고 싶은 여행들을 체험해 봤기에 슬슬 편하게 여행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나만해도 그렇다. 아이들 크면서 지금까지 20년 넘게 매년 해외를 한두 차례 씩 다녔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그렇게 막무가내로 다녔는지 겁이 덜컹 날 지경이다. 그동안 패키지여행을 따라다닌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모든 여행 일정과 항공편 및 지상교통, 호텔 예약 등은 오로지 내가 해내야 할 숙제였다. 여행 떠나기 전에 자료 찾고 예약하고 하는 과정이 행복이고 즐거움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가끔 할 때 이야기다. 매년 20년 넘게 여행가이드처럼 이 일을 하다 보면 지겹게 된다. 큰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이 대부분 예약과정을 큰애가 도맡아 했지만 말이다.
그냥 여행사 패키지 따라가면 속편 할 텐데, 호텔 한 군데 예약할 때도 온갖 글로벌 예약사이트를 다 뒤지고 지상교통 편과의 거리도 고려하여 기차나 버스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지 등도 염두에 둬야 한다. 네 식구가 움직이니 엑스트라 베드를 쓸 수 있는 객실이 있는지, 아니면 커넥팅룸으로 예약을 하면 가격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등등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이야 해외 호텔 예약쯤은 여러 글로벌 예약사이트를 뒤져 쉽게 고를 수 있지만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인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예약대행업체에 전화하거나 찾아가서 의뢰하고 바우처 받고 했어야 했다.
편안한 여행을 위해서는 적절한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찾아 동행할 것을 강추한다. 오라고 하면 가면 되고 먹으라고 하면 먹으면 되고 데려다주고 재워주고 놀게 해 주고 안전하게 돌봐주기까지 하고 관광지 도슨트까지 해줘서 따로 공부할 필요도 없는데 돈이 조금 더 든다고 한들 기꺼이 지불해야 할 비용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편한 여행이 어디에 있는가? 괜히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버스 타고 움직이며 말 섞어야 하고 몰려다닌다는 둥, 쇼핑과 기념품점만 끌고 다닌다는 둥 폄하할 필요가 없다. 여행 상품을 잘 고르거나 돈을 조금 더 쓰면 럭셔리 여행도 가능하다.
올해 여름도 이번주 토요일 시작으로 다음 주까지 휴가를 내고 태국을 갈 예정이다. 아이들은 3주 전에 동유럽 조지아를 지들끼리 다녀오고 우리랑은 안 간단다. 이미 아이들이 가족여행을 안 따라온 지가 2년째다. 안 따라온다고 섭섭하거나 하진 않다. 그러려니 한다. 4월에 라스베이거스를 온 가족이 같이 갔으니 1년에 한 번이면 족하다고 안위한다. 그래서 이번 여름휴가 여행의 모든 예약은 또다시 내가 도맡아 하게 됐다. 온갖 글로벌 예약 사이트를 뒤져 호텔을 예약하고 현지 섬에서 소일할 해양스포츠 예약까지 마쳤다. 도시를 오갈 픽업서비스도 신청했다. 오늘은 여행자 보험을 들고 환전을 조금 하려고 온라인 환전신청을 할 요량이다.
나는 돈을 조금 더 쓰더라도 편안하게 패키지여행 따라다니고 싶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