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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n 23. 2020

삶은 네트워크다

어제 서울의 낮 기온이 35.4도까지 치솟는 폭염으로 1958년이래 62년 만에 6월 최고 기온을 기록했답니다. 해뜨기 전에 출근하여 해지고 나서 퇴근하고 낮동안은 냉방이 잘 되는 건물 내에서 근무하는 행운을 얻은 덕에 밖이 그렇게 더웠는지 뉴스를 보고 알았다는 --- 낮에 잠시 은행에 갔다 오느라 나갔을 때 숨을 턱 막히게 하는 바깥공기의 묵직함이 엄슴해왔지만 그렇게 더운 기온의 에너지를 머금고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3분도 안 되는 잠깐의 시간 동안 바깥 기온에 노출된 덕에 미처 고온의 에너지를 느끼지 못했던 탓입니다.


오늘도 높은 기온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어제의 기온을 뛰어넘을까요? 이 고온의 날씨는 지속될까요? 남쪽에서 장마가 북상 중이라 하니 곧 사그라들까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연현상도 인과로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입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인간이 만들어 놓고 스스로 한탄하고 걱정하고 있는 형국조차도 그 인과의 네트워크 속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다는 것입니다. 더위를 탓하기 전에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전기용품 하나, 플러그 하나 빼는 노력까지도 온도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면 저 더위조차 내 편의와 편리와 맞바꾼 현상임을 알게 됩니다.


결국 삶은 자체가 네트워크이고 관계입니다. 가족도 네트워크이며 친구도 네트워크이고 회사도 네트워크 속에서 존속합니다. 생존하고 있다는 자체가 사실은 네트워크입니다. 물과 공기와의 연결 속에 살아남을 수 있고 지구의 자전과 공전 속에 만들어진 환경과 또한 연결된 네트워크의 구성원입니다. 네트워크는 바로 우주 만물의 기본 원리였던 것입니다.


근래에 와서 인문학적으로 통합을 이야기하고 통섭을 들먹이며 컬래버레이션이 어떻다는 둥 융합을 이야기하지만 이미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존재들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개념을 정의하고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 마치 새로운 것인 양 적용하고 있지만 자연은 그 자체가 융합이고 통합인 네트워크였던 것입니다. 특히 인간의 문화적 네트워크는 7만 년 전 농업혁명으로 모여 살기 이전의 삶에서부터 형성된 사회 구성의 근본이었습니다.  인간이 사자 호랑이의 밥이었던 시절,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공동체의 힘을 갖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 이유로 가족이 뭉치고 씨족이 뭉쳐 힘을 형성했습니다. 농업혁명으로 사회 단위가 커지면서 이 네트워크는 역시 힘으로 작용합니다. 더 많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권력과 부를 쥘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성단위가 민족을 너머 국가로까지 확대되어도 네트워크의 본질은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큰 놈이 이기는 약육강식의 네트워크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습니다.


현재의 우리 사회를 들여다봐도 네트워크의 힘은 여전히 맹위를 떨칩니다. 어떻게든 네트워크를 확장하려고 합니다. 고향 모임, 초등학교 모임, 고등학교 모임, 대학모임, 사회에서 만난 모임, 동네 모임 등등 모든 사회 양태의 모습에는 네트워크를 확장하려는 본질이 깔려있습니다. 바로 생존에 대한 강한 욕구의 발로입니다. 네트워크를 넗혀 놓으면 생존의 확률이 훨씬 커진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시간이 투여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회의 네트워크는 그냥 자연의 섭리처럼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네트워크에 있어서는 말입니다. 바로 서로 간의 이해 득실이 네트워크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네트워크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네트워크의 본질을 뛰어넘는 희생이 발현되면 그 네트워크는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구성원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성원 간의 끈끈한 우애와 우정들이 에피소드처럼 네트워크에 새겨지게 됩니다. 역사가 됩니다. 교훈이 됩니다. 결국 삼 아남을 수 있는 확률을 높인 것입니다.


근원을 추적하면 끝이 보입니다. 네트워크의 끝을 보면 텔로미어의 끝 가닥처럼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눈치채게 됩니다. 줄어들지 않고 노쇠하지 않는 정자의 생명력이 텔로머라이제를 만들어 텔로미어의 줄어듬을 

막고 있는 것처럼 네트워크의 붕괴를 막기 위한 노력들이 송골송골 맺혀있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체는 정자의 방출처럼 반드시 분가하는 것이 자연의 진화 원리였다는 것조차 알아내고 나면 네트워크는 또 다른 이합집산으로 거듭날 것임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네트워크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100년의 시간에서 벌써 절반을 넘게 써버렸으니 이젠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만이 남은 삶의 생존을 보장하는 길임은 자명합니다. 이 글의 연속도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일 수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네트워크로 얽히고 그 네트워크를 짜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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