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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08. 2024

정년퇴직, 따져보니 해피엔딩이었다

내 일이 되었다 - 정년퇴직 백서 22

정년퇴직 백서의 마지막을 쓰려고 한다. 스물두 번이나 썼으니 그래도 꽤 쓴 듯하고 이젠 지겹다는 독자들도 계신다.


"그래서 어떻다는 건데?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그저 그래? 도대체 뭐야?"라고 닦달하는 분도 계시니 어떻게든 결말을 내야 할 타이밍인 것만은 분명하다.


10월 말 정년퇴직을 앞뒤로 거의 매일(주말과 여행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날그날의 심정의 변화와 상태 그리고 닥쳐올 환경의 변화를 예상하며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를 있는 그대로 썼다. 심지어 연금 수입과 지출의 명세서까지 적시해 봤다. 


사실 정년퇴직에 대한 단상을 매일 정리하는 것은 '나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나와서 홀로서기를 하는데 주어진 조건들을 어떤 확률로 나에게 맞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정리하는 것이었으며 걱정을 걱정하지 않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그래도 정년퇴직은 해피앤딩임에 분명하다는 것이다. 물론 나의 경우는 그렇다는 것이다. 정년퇴직을 한 많은 다른 동료들을 봐도 천차만별이다. 퇴직해서 좋다는 사람?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나이에 우리 현실이 그렇다. 그나마 나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안분지족(安分自足)하며 노후를 버틸만한 정도로는 살 수 있을 듯하다. 욕심부리지 않고 적응하면 밥 먹기 위해 다시 일자리를 찾지 않아도 될 정도는 된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름 정년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준비를 해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다고 철저히 많이 준비한 것은 아니다. 작지만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지켜내고 거기에 맞게 생활의 그림을 그려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35년 직장생활의 전공을 퇴직 후에도 활용하기 위해 코로나 기간에 언론정보대학원도 다니며 석사학위도 땄다. 전 과목 A+로 수석 졸업(summa cum laude)도 했다. 가장 큰 도움은 와이프가 학교라는 직장을 다니고 있기에 이렇게 만족이니, 해피엔딩이니 주절댈 수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염장 지르는 소리일 수 있으나 그만큼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결과일 수 있으니 너무 나무라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백수의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자가 아니고 시간이다. 어떻게 시간을 쓰느냐에 따라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세프의 도구로 쓰일 수 도 있고 소를 잡는 백정의 도구로 쓸 수 도 있다. 바로 멋있게 늙는 꼰대가 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기본은 자신감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가고 그냥 집에서 뒹굴거리고 싶으면 소파에 발라당 누워있어도 된다. 이런 생활을 위해 평생을 준비하고 돈 도 꼬불쳐두고 연금도 부어둔 거다.


이제부터는 신체 건강한 놈이 장땡이다. 하루 스케줄에서 피트니스센터에 가는 시간은 항상 배정해놓아야 한다.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병행하며 관리를 해야 한다. 종합비타민제도 꼭 챙겨 먹고 삼겹살도 먹어야 한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 그것이 생명이자 살아있다는 원천이다.


그렇다고 신체만 건강해서는 무식해 보인다. 머리 희끗희끗한데 근육만 빵빵하게 나와있으면 없어 보인다. 근육 잘 갖췄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신 건강도 챙겨야 한다.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치매의 위기를 맞겠지만 최대한 늦추어 맞이할 수 있으면 최선일 것이다. 내가 아는 선배님 한 분은 걸어 다니시면서 휴대폰을 이용해 일본어 공부를 하신다. 잊지 않기 위해 단어를 확인하고 중얼거리며 각인시킨다. 최고의 치매퇴치법이 아닐 수 없다.


공부는 퇴직 후에 최고의 시간 보내기다. "나이 들어 무슨 공부? 한번 듣고 뒤돌아서면 까먹는데? 괜히 머리 아프게 책상에 앉아있지 말고 그냥 산에나 가!"라고 자책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10년 넘게 자연과학 공부를 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zoom으로 하는 온라인 강좌와 봄가을로 일요일마다 오프라인 강의에도 참가한다. 공부의 목적은 뚜렷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공부하는지를 확실히 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 달 이상 공부할 수 없다.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분야, 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어 들춰보지 못했던 것을 찾아야 한다. 자기가 뭘 하고 싶었는지는 금방 알 수 있다. 


"궁금한 게 없다고? 하고 싶은 공부가 없다고?"

그렇다면 할 수 없다. 공부가 안되면 몸이라도 건강해야 하니 부지런히 움직여라. 산에도 가고 조깅도 하고 하다못해 집에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라도 해라. 그게 살아남는 법이다.


은퇴 이후의 삶이 살만한지 아닌지는 준비를 해왔는지 아닌지에 달렸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준비의 시간을 뒤로 더 미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연금 제도가 잘 되어 있는 서구 몇몇 나라에서는 퇴직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고 하지만 우리는 언감생심이다. 국민연금 이외에 별도로 자기가 준비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는 사회구조다.


아직 정년퇴직이 멀다고 방관하는 자 있으면 준비에 나서야 하고 퇴직을 맞이한 자는 어떻게 자금을 나눠 써야 하는지 꼼꼼히 설계를 해야 한다.


삶은 복합적이다. 어떤 한 요인과 변수만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밥만 먹고 살 수 도 없고 일만 하고 살 수 도 없다. 적절한 조화와 균형, 이것은 삶의 마지막 고개를 넘는 시간에도 유효한 자연의 법칙이다. 그래도 60년을 버티며 생존해 왔는데 남은 시간은 해피엔딩으로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내일의 밝은 태양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해 오늘 이 시간 자체를 감사히 맞이할 일이다. 행복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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