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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리 Oct 10. 2022

갤러리에서 나온 여자

6. 화면조정시간

 '슈욱----탁'


 세 명은 한 번에 족히 앉을 수 있을만한 둥글고 큰 터키색 소파 위로 그녀가 떨어졌다. 그리고 등 뒤로 호루라기의 소리가 들려왔다. 


 야-옹, 야-옹 


 하지만 호루라기의 발톱이 대리석을 촵촵 밟으며 움직이는 소리마저도 이내 멀어져 갔다. 여기는 어디인가. 다갈색 벽돌이 둘러진 방, 마치 와인 셀러 같기도 한 곳에 한 벽면에는 동그란 구멍이 나있고 그 구멍으로 그녀가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리고 그녀가 떨어진 지점에는 터키색 벨벳 원형 소파가 있었다. 그녀가 떨어지며 소파 위에 놓여있던 20여 개의 쿠션들이 반동으로 하늘로 조금 붕 떴다가 몇 개는 바닥으로 떨어져 널브러져 있었다. 소파 가장자리에 어떻게든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살구색 쿠션 중 하나가 톡 하고 마저 떨어졌다. 막 떨어진 쿠션을 주워 안았다.


 그녀의 움직임을 감지한 천장의 오렌지색 등의 센서가 뚝딱 거리며 켜졌다. 왼쪽 벽면으로 회색 캐비닛들이 시체 안치실처럼 꼭 닫힌 채 열 맞춰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크림색의 나무 테이블과 황토색 가죽 의자가 놓여 있었다. 테이블 중앙에는 광택이 도는 낮은 은빛 박스가 있었다. 그 안에는 검고 깊은 가느다란 선들이 격자모양으로 다시 작은 네모난 칸들을 분리하고 있었다. 그녀가 허리를 살짝 굽혀 무엇인지 보려고 했을 때 하나의 정사각형이 뽁 하고 수직으로 튀어나왔다. 너무 놀라서 고양이처럼 등을 둥글게 접은 채로 하늘로 튕겨져 나갈 뻔했다. 품에 안고 있던 쿠션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리려는 찰나 그녀가 떨어진 소파 뒷 쪽의 하얀 벽면을 향하여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기둥이 45도로 굽혀지며 스크린을 띄었다.


 무언가 뿌옇게 펄럭거리는 화면이 보였다. 알록달록한 화면 조정 시간처럼 아무것도 흘러나오진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무언가가 시작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퍽퍽하고 목이 메는 듯한 시간이 흘러갔다. 그녀는 곧 그것이 하얀 스카프로 바닷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하얀 스카프가 바람에 나풀거릴 때마다 그 너머로 파랗게 반짝거리는 바닷물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 이 장면 어디서 보았더라... 그녀의 복잡한 머릿속을 헤집고 무엇인가가 떠오를 것 같았다. 그 순간 스카프가 바람에 날아가고 웬 남자가 뚜벅뚜벅 화면 앞으로 나오더니 열 걸음쯤 날아가 모래에 떨어진 마치 바닷가 속의 미역처럼 흐물거리는 스카프를 천천히 집어 올렸다. 


 툭 툭 툭, 모래를 느리게 털어내고, 팡하고 빠르게 한 번 털었다. 긴 베이지색 레인코트를 걸쳐 입은 남자의 몸짓은 슬로모션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꽤 우아하기도 하였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오른쪽을 쳐다보며 손을 살짝 들어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는 오른 대각선 방향의 화면으로 다가오며 사라졌다가 잠시 뒤 화면이 치-익 하고 꺼졌다. 스크린을 띄우던 긴 정사각형의 프로젝트는 뽀욕하고 수직으로 머리를 틀어 다시 격자모양의 박스 속으로 들어갔다. 스크린이 꺼졌다. 박스 속 또 다른 네모난 칸이 또 튀어나와 무언가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지만 입을 꾹 닫은 채 조개처럼 미동도 않고 있었다. 저 안에 죽어서 상한 조갯살이 들어있을지 혹은 귀한 진주라도 들어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가 그 방에 갇힌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 머리 위로 호루라기가 탁 탁 탁 걸어가는 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조금 더 둔탁한 발걸음들이 규칙적으로 오고 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무언가 쿵쾅 거리기도 했다. 혹시 그녀가 들어온 구멍으로 누군가가 내려오지는 않을까 하고 귀를 기울여 보았다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소파를 이동시켜보려 하였지만 그녀가 온 힘을 다해 밀어도 소파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그녀를 놀리듯 360도로 뱅글뱅글 돌며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던 쿠션마저 모두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녀가 힘이 부족한 것인지 소파가 바닥에 붙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소파를 옮기는 것을 포기하고 그녀가 떨어져 내려온 구멍에서 떨어진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거실에서 조금 떨어진 게 아닐까. 멍하니 있는 그녀의 눈에 책상 정면 모서리에 조금은 음영이 다른 네모난 곳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네모나게 깎여져 가까이서는 보기 힘들었던 숨겨진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An easy-peasy way out in your back'라는 글귀가 보였다. 그녀가 몸을 휙 돌리자 규칙적으로 쌓아 올려진 벽돌들을 가로지르는 직사각형문 모양으로 노란빛이 반짝하고 위에서 아래로 훑고 지나갔다. 세상에 이렇게 알아보기 힘든 출구를 Easy-peasy라고 하는가 하며 어이가 없었지만 그 벽을 노려보며 조금씩 가까이 다가갔다. 그 사이 머리 위에서 들리는 소리가 완전히 멈춘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두려웠던 마음은 사라지고 주저 없이 벽돌벽에 두 손을 데고 밀어내었다. 


 스으윽 문이 아주 부드럽게 열리고 있었다. 아... 


 그것은 벽돌이 아니라 양 옆의 벽돌 질감 그대로 그려놓은 나무문이었다. 그녀의 손에서 오일 페인트의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문이 열리자 주황빛 센서등이 켜지고 계단과 그 끝에 손잡이가 달린 정사각형 출구가 보였다.  








....


감사합니다. 다음 이야기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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