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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리 Oct 24. 2022

갤러리에서 나온 여자

7. 수영장

 푸 하 푸 하 푸 하


 주말 오후 핀첼리 로드 한 쇼핑센터에 위치한 수영장의 풍경은 마치 다양한 인간상을 모아놓은 듯 하다. 모든 연령별 사회 구성원들이 큰 풀 안에 함께 몸을 담그고 각자의 방식대로 놀고 있다. 눈에 꼭 밀착되어 맞는 물안경을 쓰고 먹이를 찾아다니는 상어처럼 쉼 없이 왕복으로 물살을 가르는 Fast Lane, 어린아이들이나 아기를 안은 부모들이 군데군데 놀멍 쉬멍 수영을 배우는 Family Lane, 그 사이로 약간은 애매한 구분을 가진 Slow와 Medium Lane이 있다. 머리에 딱 달라붙는 수영모와 눈에 짝 달라붙는 수영 안경을 쓴 사람이 대략 Fast Lane으로 간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게 치열하게 수영을 할 사람이 아니라면 과연 Medium과 Slow Lane 중 어디로 가야 할지 항상 헷갈리곤 하였다. 보통은 큰 차이가 없는 듯한 속도로 수영하는 두 줄. 하지만 오늘은 아주 극명하게 갈린 참이었다. Lane의 정중앙에서 물살을 느긋하게 가르며 걷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움직임이 불편한 한 여성이 전문 치료사로 보이는 사람과 휠체어를 타고 들어와 막 Slow Lane으로 아주 천천히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담 구분이 아주 쉬워졌다. Medium Lane에는 상어보다 천천히 수영할 모든 사람이 가면 되었다. 다행히 주말에는 아이들이 많이 와서 그런지 오히려 성인들은 덜 오는 편이어서 Medium Lane에도 3명 정도만이 수영과 유영 사이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Medium Lane에서 마침 한 사람이 나가고 한 여성이 새로이 들어오는 참이었다. 그녀는 딱 적당하게 느긋하면서도 안정되게 수영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반대로 물 밖으로 머리가 나올 때마다 반짝이는 그녀의 파란 수경 너머의 두 눈은 사방의 모든 것을 아주 빠르게 스캔하고 있었다. 70대로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그녀의 몸이나 움직임은 조금 많이 느리게 움직이는 젊은 여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군살 없는 몸에 허리와 어깨가 반듯하게 펴져 있고 근육이 적당히 있어서 같은 연령대의 노인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몇 바퀴를 돈 후 나오는 그녀는 아는 사람을 만났는지 눈썹을 추켜올리며 인사를 나누고 수경을 천천히 벗어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기포들이 보글보글 솟아오르는 따뜻한 자쿠지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입은 광택이 살짝 도는 검정 수영복 위로 작은 기포들이 우글우글 달라붙었다가 뽁뽁뽁뽁 사라지길 반복하였다.


 '자기, 요즘 안 보이던데 잘 지냈어?'


 '고마워, 잘 있었지. 자기도 좋아 보이네. 크리스티나 줌바 하고 온 거야?'


 '말도 마, 줌바 수업 선생님 바뀌고 다음 주부터 다시 시작해. 크리스티나가 전쟁 터지고 폴란드에 자원봉사 지원해서 갔잖아. 미리 좀 알려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됐다네'


 '아... 저런, 폴란드에서 온 줄 알았는데'


 '아니야, 나도 그런지 알았지 뭐. 우크라이나 사람이었던 거야. 가족들이 거기 있으니까 전쟁 나고 여기서 웃고 춤추고 하는 게 웃는 게 아니었던 거지.' 


 마침 타이머가 끝난 자쿠지의 기포가 멈추고 조용해졌다. 


 샬롯이 눈을 찡긋찡긋 하며 신호를 보내더니 자쿠지 바깥쪽에 있던 동그란 버튼을 눌러 다시 기포를 만들었다. 


 '아, 난 이제 가야겠네. 오랜만에 반가웠어.' 

 '나도 같이 가, 나도 배달 올 시간이 됐는데 깜박했네' 


 평일 아쿠아빅 수업에 가끔 오는 한 러시아인 남성이었다. 자쿠지 밖으로 나간 샬롯과 캐런은 나중에 탈의실에서 그녀를 만나 왜 그렇게 자리를 급히 떴는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궁금한 것은 물어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용감한 샬롯이 며칠 전 아쿠아빅 수업이 끝나고 자쿠지 안에서 그 러시아인 남성에게 전쟁에 대해서 물어봤다는 것이다. 그 남성은 망설임 없이 푸틴과 그 특별군사작전을 지지하는 요점의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안 그래도 작고 더운 자쿠지 안은 불편하고 답답한 더운 공기만이 흘렀다고 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 본인이 없었던 것이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항상 그렇듯 시답잖은 수다를 이십여분 더 한 후 그녀들은 이제 진짜로 가야겠다며 인사를 하였다. 진짜로 가야 한다고 번갈아가며 3번이나 말을 한 터여서 이제 제발 좀 가라고 말할 지경이 될 때쯤이었다. 그녀는 살짝 한숨을 쉬며 그녀의 캐비닛으로 걸어갔다. 천천히 옷을 갈아입고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말리고 가방 속에 깊숙이 들어있던 휴대폰을 꺼내 이메일을 확인하였다. 


'마담 우, 

주문하신 모든 작품을 설치하였습니다. 더 도와드릴 일은 없나요?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세요.'


그녀는 거울을 보며 분홍빛의 립스틱을 발랐다. 이제는 그 집으로 움직여야 할 때가 되었다.






...




(다음 편에 이어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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