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잔인한 2월 24일
세상은 불공평하기 그지없지만 어떻게 보면 또 그렇게 공평할 수 없다. 시간! 누구에게라도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이란 것.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월요일, 금요일, 일요일, 크리스마스, 12월 31일, 1월 1일. 적어도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어디든지 똑같이 주어지는 게 바로 이 시간이다. 그리고 2022년 2월 22일. 2라는 숫자가 이렇게 겹치려면 200년을 다시 기다리지 않는 한 오지 않을 터이니 행운이 가득한 날 임이 분명했다.
누구는 전 세계를 강타한 코가네 그 몹쓸 전염병에 2년씩 미뤄뒀던 결혼식을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누구는 내 아기가 이 세상의 빛을 보는, 사실은 병원 천장의 빛이지만, 제왕절개 일로 택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보다는 외롭지 않은 둘이라는 숫자가 절절이 겹치는 이 날, 다른 꿍꿍이를 가진 사람이 또 있었으니 그건 러시아에 사는 푸틴이라는 사람이었다. 그곳은 매우 추운 곳으로 사시사철 얼음이 얼지 않는 항구를 찾아보기 힘들고, 사람들은 얼음물에서 발가벗고 수영하기도 하고 곰과 레프트 훅 라이트 훅 하며 싸우는 매서운 곳이다. 이 나라를 이끄는 사람이 푸틴인데, 그 사람을 실제 대면해 본 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특히나 코로나라는 무시무시한 병사가 러시아를 포함한 전 지구를 강타한 후 말이다. 그 춥고 추운 시베리아 발 소식에는 그가 2022년 2월 22일을 유럽 쪽을 향한 이웃 나라인 우크라이나에 본 때를 보여줄 날로 정했다고 하였다. 이렇게 만인의 축하를 받을 일도 만인이 비탄을 쏟아낼 일도 시간 앞에서 공평한 것이다. 가능하다면 수도꼭지를 잠그듯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 시간은 미리 잠가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향한 미사일은 24일에 발사되기 시작하였다. 2월 22일이라는 날짜에 이 전쟁이 시작되지 않도록 어떤 일이 있었다는 생각에 약간의 안도감이 든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1914년 12월 25일, 이 세상의 창조주라는 예수의 생일을 기리기 위한 날, 크리스마스에 전쟁을 치르던 양진영도 잠시 총구를 내리고 휴전을 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2022년 2월 22일도 공격용 미사일을 발사하기에는 적합한 날짜는 아니었다. 그보다 2년 여전, 정체불명의 한 감기 바이러스가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며 전 세계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2022년 이웃 국가에 미사일이 날아가고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2월 24일, 봄햇살이 드리우던 평화롭던 한 나라의 수도에 미사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 전부터 이를 감지한 뉴스들이 넘실대고 있었다. 언제나 위험을 일찍 감지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보통은 과민한 사람들로 분류되는 이들은 오히려 그 위험한 사태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운이 없는 쪽일까. 인류는 지나간 역사 속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전쟁이란 것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거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런 순진함을 비웃듯 2022년에 전쟁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만약 인터넷이나 언론이 통제되어 있다면 그 실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지나갔을지도 모른 다. 언론과 표현이 통제되어 있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벌어질 일들. 사실 지금도 어디에선가 2022년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추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덮어두고 마주하지 않아야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것일까 아니면 그러한 현실을 직시하고서 상대적으로 나은 삶에 안도하고 인생을 최대한 아름답게 살아내야 하는 것일까. 알면 알수록 골치가 아픈 끔찍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뉴스를 매일 보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갤러리에서 나온 그녀는 작년 9월에 멈춘 달력에서 나온 메시지를 보고 난 후, 기뻤다. 갤러리에서 나온 후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함이 생겨나고 있었다. 나는 여기 왜 있는 것일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 알 수 없는 표정의 남자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래서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답도 없이 우주를 떠돌고 있을 때, 이 집 안의 또 다른 생명체인 호루라기가 그녀 옆을 도도하고 느리게 걸어갔다.
'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니?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야-옹'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하듯 호루라기가 소리를 내었다. 그동안 이 집에서 해가 뜨고 지고, 구름이 모이고 흩어지고, 비가 흩뿌려지고 멈추고, 안개에 시야가 뿌연 듯하다가 걷히고, 나뭇잎에 이슬이 맺히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대자연은 부지런하게 본연의 할 일을 스케줄대로 해내고 있었다. 나 또한 그러한 대자연의 일부일까. 마치 해가 지고 뜨듯 그녀도 규칙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그 대자연이란 시스템의 일부가 된 것 같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 종이…' 그녀는 몸을 돌려 크림색 커피 머신 옆에 그동안 차곡히 쌓인 아슬아슬한 커피잔 탑으로 걸어갔다. 커피잔을 싱크대로 옮기며 물로 헹궈 식기세척기 안에 다시 쌓았다. 마지막 커피잔 탑을 옮기려 할 때쯤 그 종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집의 평면도. 물이 묻은 손가락으로 종이를 들자 물이 번지며 평면도가 번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다급히 키친타월을 한 장 뜯어내 살짝 눌러 물기를 제거해주었다. 1/3 정도 지워졌지만 그래도 봐줄 만했다. 여기가 내가 자는 곳이고, 커피를 내리는 라운지가 여기 있고, 녹색 체어가 있는 창문이 이곳이고 아 호루라기가 앉아있던 거실이 여기구나. 그런데 그곳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컸다. 눈을 크게 뜨고 호루라기를 처음 봤을 때 솜뭉치처럼 늘어져있던 거실의 한 구석으로 걸어갔다. 이봐, 분명히 벽이 막혀있는데 왜 종이에는 동그란 공간이 더 있을까. 손을 뻗어 벽을 짚으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바닥이 천장으로 뒤집어지고 그녀의 몸이 미끄럼틀을 타듯 쭈욱 미끄러져 내려갔다.
...
(다음 편에 이어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