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졸쪼 Jan 18. 2018

절대 잠을 포기하지 말 것

오늘 무슨 꿈을 꾸셨는지? 나는 오늘 정말 끝내주는 꿈을 꿨다. 요즘 굉장히 잘나가는 모 가수가 나왔는데 꿈속에서 우리는 연인이었다. 노노. 그 생각 스톱.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꿈이 아닙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우리는 갓 시작한 연인 관계였다. 사귀기로 한 다음 처음 본 설정? 연인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서 함성이라도 지르고 싶어 하는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약속 장소에서 만나 이동하는데 별다른 말도 없이 그가 히죽히죽 웃는다. 속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그 말들을 다 하기에는 뭔가 조심스러운 느낌. 커피숍에 마주 앉아 날 보고 마냥 웃는데 “왜 웃어?” 하고 물어보니 대답도 않고 시선을 떨군다. 손을 잡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손톱만 톡톡 건드리고, 상체를 한껏 앞으로 기울여서는 케이크를 오물거리는 내 입 모양을 관찰한다. 별 생각 없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니 괜히 나도 긴장이 된다. 뭐야, 이 쑥스러움.



“카톡!”



젠장. 눈을 뜨니 내 방 천장이 보인다. 아냐, 난 다시 잠들어야 한다고! 혹 다른 꿈으로 이어질까 봐 급히 눈을 감았다.



“카톡! 카톡! 카톡! 카톡!”



망했다. 소리 없는 ‘아오!’를 방출하며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오늘 약속이 있었다. 일어나야지.(보고 있나 조 모 씨?)



친구를 만나러 약속 장소로 나서는데 아침에 꾼 꿈이 아른아른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나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기뻐하는 사람을 본 게 얼마 만인가. 커피가 나오든 말든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는 시선. 뭔가 닿고 싶어 안달 난다는 몸짓. 미세먼지를 뚫고 친구와 만나는데 매캐한 공기와는 달리 기분은 상쾌하다! 밥도 맛있고, 커피도 죽이고, 대화도 너무 재밌다. 한 시간이 넘는 귀가길도 흥겹다. 꿈속에서 뭔가가 충전된 걸까. 내 안에서 뭔가가 찰랑이는 느낌.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고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밖에 나가 보면 ‘누가 봐도 주인공’은 따로 있고 정작 주인공이어야 하는 나는 지나가는 사람 1, 상사에게 보고서를 까이는 부하직원 3, 비를 맞으며 달려가는 행인, 술 취한 여자, 이런 역할만 줄줄이 클리어 중이다. 정말 내 삶의 주인공이 나라면, 그게 정말로 정말로 사실이라면 나는 도대체 언제쯤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일까?



3n년간 살아오면서 내가 주인공이었던 순간은 손에 꼽을 만하다. 물론 나는 그 순간들을 순수하게 기뻐했고 그것들을 가져다준 모두에게 감사했으나 12시를 넘긴 신데렐라처럼 나는 이내 이 세상의 조연으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꿈속에서의 나는 언제나 주연이었다. 부모님에게 혼난 날도, 시험을 망친 날도, 내가 저지른 실수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날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호러와 스릴러 속 주인공인 적도 많았지만) 그것을 보상해주기라도 하듯 꿈은 때때로 근사한 이벤트를 기획해 낮아진 나의 자존감을 확실히 복구해주었다. 그리고 그런 꿈을 꾼 날이면 전날 나를 괴롭히던 잡념들은 한결 떨쳐내고는 알게 모르게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곤 했다. 꿈이란 아주 가끔 내가 삶의 주인공임을 느끼게 해주는 아주 소소한 이벤트였다.



내가 꼬꼬마 시절 작업했던 소설 《세상을 버리기로 한 날 밤》에서 이런 부분이 나온다. 주인공 마르코스는 세계적인 발레리나이자 인생의 벗이었던 어머니를 잃는다. 마르코스는 어머니를 잃었는데도 세상이 그대로라는 점에 크게 좌절하고, 그렇다면 자신의 세상이라도 바꾸겠다고 결심해 잠을 영원히 앗아가줄 주사를 맞기로 결심한다.



이 소설의 배경은 현대를 기반으로 한 SF인 듯했는데, 이 잠을 자지 않는 주사가 유행이었다. 이 주사가 발명된 이후 사람들은 누가 이 주사를 맞겠느냐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자신의 연인을 감시하고 싶거나 한밤중에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 주사를 많이 맞았다. 그리고 마르코스가 그 주사를 맞으려는 찰나, 그는 직장 상사의 전화를 받고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자신의 오랜 벗이었던 화방 주인이자 지금은 꿈을 파는 가게 주인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잠을 포기한 이들이 모두 침대를 내다 팔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침대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아주 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 위에서 사랑을 하기도 하고 눈을 뜬 채로 휴식을 취하기도 하며 그냥 드러누워 있기도 하고 그 위에서 살기도 하고…… 오히려 여느 때보다도 더 많은 침대가 팔려나갔다.

“부디 당신은 잠을 포기하지 마세요. 저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안 좋은 일들을 많이 봐왔죠. 그런 일들을 저지른 사람들은 꿈꾸기를 동경해요.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보낸 하루를 지워줄 수 있는 뭔가를 간절히 원하죠. 그들이 끔찍한 하루를 보내고 얼마나 좌절하는지 모를 거예요. 당신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것들로만 가득한 날들도 있죠. 그런 날애 대해 말하려면 끝이 없어요. 밤과 낮이 별 차이도 없고요. 단지 몇 시간뿐이라도, 그들은 화를 내고,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하며, 현실과의 단절을 원해요. 여기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꿈을 찾으려고 오는 게 아니에요. 그저 그런 하루와 한 달의 순간들이 잠시라도 곁에서 사라지길 바랄 뿐이죠. 당신은 절대 그러지 마세요.”



나는 원래도 잠과 꿈을 좋아했는데 이 책을 작업한 이후 이 둘을 훨씬 사랑하게 되었다. 꿈과 잠이란 내가 삶의 주인공임을 느끼게 해주는 아주 소소한 이벤트이자 나의 안 좋은 기분을 단절해줄 구세주였으므로.



그나저나 오늘은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오늘 밤 폰은 에어플레인모드다.




오늘 카톡 소리에 눈을 떠 처음 본 풍경. 꿈속 로맨스고 뭐고 현실은 이토록 삭막하단 말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책 대기소가 있습니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