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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라 Mar 11. 2017

반디와의 10년

3. 새로운 경험들


3. 새로운 경험들 (2)


  일본에서의 3박 4일은 새로운 환경과 낯선 곳 에서의 자유로움이 있었지만 미스양에게 맡기고 온 반디 때문에 온전히 즐겁지는 못했다. 미스양은 피터의 사무실에 있는 직원으로 반디를 예뻐했다. 

여행을 떠난다고 하자 자진해서 돌보아 주겠다고 나섰으며 반디와 지낼 시간들에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 반디도 평소 미스양을 좋아했으므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두고 오던 날 불안함을 눈에 띄게 드러내던 생각이 자꾸 났다. 왠지 잘 있지 못 할 것 같은 예감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사실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미스양의 원룸으로 반디를 찾으러 갔다. 반디는 1미터가 넘게 연이은 점프를 하며 우리를 반겼다. 이모에게 안겨 몸부림을 치며 거의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내는 반디를 흥분에서 진정 시키는 것은 좀 오래 걸렸다. 미스양은 반디를 돌보는데 어려움이 많았는지 얼굴이 까칠해 있었다. 힘들었어요 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예뻐서 괜찮아요 라고 덧붙였다. 

우리가 떠나고 나서 지금까지 반디는 버림받은 애처럼 풀이 죽어 힘없이 살았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가 나간 출입구인 현관에 앉아 아무리 불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단다. 잠도 거기서 자고 사료뿐 아니라 간식도 잘 먹지 않았으며 보다 못한 미스양이 소세지를 주자 그것만 겨우 받아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밤에는 내내 낑낑 앓는 소리를 냈다니 봐주는 사람의 고충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런 반디를 돌보느라 힘들었을 미스양 보다 먹지도 못할 만큼의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4일 동안 문 앞에 앉아 있었던 반디가 가여웠다. 혹여 우리가 자기를 버렸을까봐 얼마나 불안에 떨었을까 하는 상상에서는 가슴에 돌처럼 미안함이 들어앉았다. 

생각해보니 반디가 유기견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 기억은 절대로 잊을 수 없다. 내가 그걸 어찌 모를까. 잠시 앉아 커피를 마시는 동안 반디는 이모의 무릎에서 내려가지 않았고 집에 가려고 일어서자 재빠르게 현관으로 달려가 나갈 태세를 취했다.

  그리움이란 것, 보고픔이란 것, 그건 다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거의 본능에 가까운 감정이다. 우리가 일본에서 반디를 보고 싶어했던 것 보다 혼자 남은 반디가 겪어야 했던 그리움과 보고픔의 시간들이 더 컸을 것이다.

이제는 반디만 두고 여행은 못할 것 같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모두 약속하거나 예측 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적으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반디는 집에 오자마자 사료를 먹고 간식도 먹고 물도 벌컥 벌컥 들이켰다. 반디의 눈에서는 생기가 넘쳤다. 그리고 들쩍지근한 일본음식이 아닌 김이 풀풀나는 고슬고슬한 밥을 해서 김치와 볶은 고추장, 달걀 후라이 만으로 저녁을 먹은 우리 눈도 생기가 넘쳤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에 들어가 여독을 풀기 위해 이른 잠에 빠졌다. 반디는 이모와 피터 사이에서 코를 골며 깊이 잠들었다. 그동안 깊은 잠을 못 잤던게다. 가끔 몸을 떨며 숨을 길게 내 쉬는 폼이 편안함에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고단한 객지생활에서 돌아온 것처럼.

  그로부터 얼마간 반디는 약간의 후유증이 있었다. 우리가 어디를 가려는 기미가 보이면 먼저 현관 앞에 나가 초조한 눈빛으로 기다렸다. 반디에게 나흘간의 경험은 후유증의 유효기간이 지난 후에도 습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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