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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혜원 Jan 27. 2020

우거진 숲의 천막

일간 연재

 서로로 엉켜진 보슬비가 쏟아지고 자욱한 안개가 내 머리 위 수면을 뒤덮었다.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고, 허전한 이불 위에 쓰러지듯 눕는 단계가 습관처럼 몸에 배어든지도 꽤 됐다. 바람의 차가움, 안개에 가려져 어두워진 햇빛의 조명,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보슬비까지. 내게 필요하지 않는 감정들이 몸에 뒤덮던 그날이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다짜고짜 책상 구석에 있는 캔들을 집어 들고 촛대에 뜨거운 상냥을 갖다 댔다. 서늘하던 공기는 온대 간대 사라지곤 멍만 때렸다. 이런 날은 좀 쉬어야지, 내게도 틈을 줘야지 하다가도, 사그라들었다고 생각했던 강박이 그곳을 비집고 들어온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두려움조차도 쉬이 떨쳐낼 수 없는 그 어지간한 성격은 여전했다. 지나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잡생각이 부쩍 늘던 사이 불안도 두려움도 더 켜졌다. 손길이 가지 않는 잡동사니처럼 필요 없는 감정들이 눈에 보이게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가끔은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고, 날씨처럼 쉽게 변하는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던 것 같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무료한 건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처럼 쉴 순 없을까 생각했다. 몸과 정신은 잠시 쉬어가도 좋다고 말했지만 난 또 노트북 앞에 앉이 글 쓰는 일을 시작하고 말았다. 솟구치는 감정은 그러해도 글을 쓰고 싶은 욕구는 감정도, 그 무엇도 나를 막아설 순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오늘만큼은 약한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 하고 다짐했던 거겠지.

무언가를 얻어낼수록 내가 도전했던 용기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내가 처음 글을 쓰고, 이 세상에 처음 책을 내놓았을 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는 내게 책 하나 쓴 것 가지고 유난을 떤다는 듯이 비아냥거렸다. 사실 그런 것쯤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도 주춤거렸던 이유는 무언가를 손에 쥐기 위해 용기 냈던 나의 노력이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니게 돼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땐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았던 한마디 중에 하나였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말로 인해 더 열심히 살아왔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기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느 날의 나에게 더 많은 발판을 놓아주기도 했고, 어느 날의 나에게 무너짐의 연속을 안겨주기도 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바쁘게 내셔야 했던 숨, 무언가를 이렇게 애틋하게 여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했던 나의 도전들. 그러한 결과를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 수없이 부딪혀야 했고, 수백 번 넘어져야 했던 나의 노력들까지.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가차 없이 버리는 사람처럼 어렵게 손에 쥔 애틋한 노력들을 나를 시기하는 사람들로 인해 하마터면 쉽게 놓아줄 뻔했다.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지금의 나에게 정말 미안해졌다. 그런 것쯤은 스치는 것까지만 해도 됐었는데, 굳이 깊게 담아둘 필요는 없었는데. 픽 웃음만 나왔다. 오늘도 여전히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난 그들이 아닌 또 나를 탓하고만 있었으니까.

부정적인 것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결국 숨을 참아야 했다. 그들 사이에서 자라고 싹을 트기 위해서는 숨소리도 내지 않아야 했다. 평온한 숨을 쉬는 것을 바라는 것도, 감히 그럴 수도 없었지만. 결국 인간은 남의 도전을 탐내고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시기하곤 했으니까. 숨을 쉬지 못해 목구멍을 조이는 순간에도 결코 티를 낼 수 없었다. 그것마저 들켜버린다면 난 그들의 눈독에도 들일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는 것보다 더 악착같이 살아야, 온몸이 가루가 되듯 살아야 존재를 알아주는 곳이었노라.

삶은 언젠가 모든 것들이 피폐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현재의 불안에 가라앉지 않기 위해 가쁜 숨만 내시며 애만 써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또 나를 탓할지 모르고, 아무 죄 없는 계절만 탓하면서 살지도 모른다. 몸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글조차도 쓰고 싶지 않을지도, 자꾸만 존재를 부정하게 만드는 것들을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나를 위한 것일까, 그들을 위한 것일까 아직도 섞갈리지만 오만함이 가득한 이 세계에서 오직 내가 용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무렴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언젠가 나를 도망쳐도, 아프게 해도, 외롭게 해도. 그럼에도 내쉬고 싶었던 새벽의 외로운 사투를 아무도 알아주지 못해도, 내가 꾸려놓은 우주가 존재하기까지 온몸이 가루가 되도록 애썼다는 것을 알아주지 못해도.

너무 간절하지 않아도 좋아, 너무 애쓰지 않아도 좋아, 너무 탓하지 않아도 좋아, 새벽의 자욱한 안개들을 다시 건네줘도 좋아, 그곳에서 너만 도망쳐도 좋아. 혹시 모르잖아, 그때쯤이면 알게 될 수도 있잖아. 네가 살기 위해서 울부짖었던 것들이 너를 얼마나 바라보고 있었는지, 네가 얼마나 평화로운 새벽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네가 꾸려놓은 우주가 잿빛이 아닌 좋아하는 보랏빛이 될 수도 있는 곳이었는지. 가끔은 내려놓고 바라보기만 해도 좋을 때가 있어. 그러다 보면 언젠가 걸어가는 그 길 속에 네가 바라고 바라던 숲의 천막을 발견하게 될 거야. 우산 없이 걸어온 너의 고된 길을 고스란히 알아줄 숲의 천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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