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틈 같은 게 없었다. 그렇다고 원망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자꾸만 미워하게 된다.
내가 보내온 지난여름을 떠올리면 왠지 내 마음도 시큰해지곤 했다. 무해한 미소를 지으며 가파른 언덕 위를 가로지르던 모습은 내가 다신 가질 수 없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추운 달을 지나 봄이 온 것 같다는 느낌을 생경한 지는 오래였지만 여전히 마음은 복잡하다. 온 신경을 압박하는 생각의 무게들을 끌어안으면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끔 감게 된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만 외친다. 우리의 이름을 잊지 않게 해달라고. 그렇게 며칠 밤을 애원했는지도 모른 채로 다음 날 아침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겨룰 수 있을 만큼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속수무책 없이 흘러만 가는 날들에 전전긍긍하며 살아갈 뿐이었겠지.
아마도 난 거의 매일이 맨몸으로 전쟁터에 내던져진 기분이었을 거다. 모든 게 처음이라는 이유로 서투른 행동을 반복하기 일쑤였고 그러한 서툶에서 따라오는 선명한 회의감은 그림자처럼 나를 매일매일 따라다녔다.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면 몇 번이고 되뇌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지 말자. 모든 것을 주려고 하지 말자.
그렇게 되뇌어야만 그 환상을 깼을 때 조금 덜 괴로울 거라고, 헤어 나오고 싶을 때 벗어나지 못해도 덜 고통스러울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내셨던 숨, 빠르게 변화하는 목소리의 높낮이, 수십 번 깜빡이는 눈꺼풀의 속도마저도 알 겨를이 없다. 온 마음이 어두워진 나를 이끌고 다음 날의 온전한 나를 기약하며 잠에 드는 것밖에는.
우리는 작은 기류에도 흔들렸고 자주 무너졌다. 그럴 때면 자라나는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잘라낼 수 있는 마음을 얻고 싶었다.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한 초조함보다, 그것을 얻어내기 위한 앞선 기다림이 더 필요했다.